20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입속의 혀 : 유괴범과 꼭두각시들’이라는 부제로 1980년에 일어난 한 아이의 납치 사건을 조명했다.
1980년 11월 13일 밤 8시 마포구의 한 가정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 시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아들 우진이. 이에 어머니는 아들의 전화인 줄 알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처음 듣는 목소리.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아들 우진이를 수원에 감금해두고 있다며 아들을 찾고 싶으면 4천만 원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놀란 어머니가 마음을 진정할 겨를 없이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겁에 질린 아들 우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 납치범은 우진이의 아버지 때문에 철창신세를 졌다며 빨리 돈을 준비하라고 했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은 급히 신고를 했고, 경찰은 아이의 안전을 위해 극비리에 수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상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유괴된 아이는 또래보다 키도 큰 중학교 1학년 남학생. 형사들은 처음 보는 중학생 유괴에 아이가 납치된 날의 행적부터 되짚었다. 이날 우진이는 서점에 들렀다가 우체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후 버스정류장에서 학교 체육선생님을 만날 계획이었으나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서점에서는 우진이가 목격됐으나 우체국에서 우진이를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백주대낮 대로변에서 사라져 버린 우진이. 그러나 우진이가 납치되는 것을 본 목격자는 1명도 없었다. 이에 경찰은 범인이 면식범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의 아버지에 원한이 있을 만한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까지 탐문을 시작했다.
반드시 범인이 다시 전화를 걸어올 것이라 믿었던 경찰들은 감청 장치를 하고 범인의 전화를 기다렸다. 납치 이틀째 드디어 전화가 걸려왔는데 처음 전화를 걸어왔던 30, 40대 남성의 목소리가 아닌 앳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들만 무사히 보내달라는 부모들에게 범인은 우진이의 목소리를 다시 들려줬다. 우진이는 “이분들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아니면 저는 죽어요”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너무 짧은 통화 시간에 전화 추적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추적을 하더라도 모두 공중전화였다.
납치 사흘째, 전화가 아닌 편지가 날아왔다. 범인은 우진이의 누나를 돈가방 전달책으로 지목했다. 이에 우진이의 누나는 엄마와 함께 돈가방을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범인은 약속 시간, 약속 장소로 전화를 걸어와 약속 장소를 갑자기 바꾸었다. 경찰이 잠복 중이던 상황에 누나는 혼자 이동할 수 없어 범인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갔고, 이에 범인은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실의에 빠진 가족들만큼이나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우진이 학교의 선생님들과 친구들. 우진이는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함에도 누구보다 밝고 씩씩한 아이였다. 이에 많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특히 우진이가 납치된 날 우진이를 만날 약속을 했던 체육선생님은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사는 한 달을 넘겼고, 범인이 보낸 협박 편지에서 지문을 찾아냈다. 당시 지문 대조는 일일이 자료와 자료를 대조해야만 했다.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해 며칠이고 지문을 대조해 무려 200만 명의 지문과 증거 지문을 대조했다. 그러나 지문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
이후 범인은 다시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하지만 범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것도 모자라 연락까지 끊어버렸다.
사건 발생 4개월, 대통령까지 나서 우진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이에 전담 요원만 322명, 동원된 경찰은 무려 2만 3천여 명에 달했다. 단일 사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공개 수사가 진행됐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우진이의 무사귀환을 빌었던 것. 그러나 수사는 진척 없이 또 시간만 흘러갔다.
이에 당시 수사 반장들은 우진이를 납치한 범인을 못 잡으면 경찰을 그만둔다는 각오로 다시 수사에 매달렸다. 납치 당일부터 모든 것을 재검토했다.
우진이가 순순히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이 누굴까 생각하던 중 납치 당일 우진이와 약속을 했던 체육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러나 당시 높았던 교권과 명문대 출신에 금수저 집안의 자제에 남부러울 것 없는 선생님을 의심하고 수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수사반장들은 수사를 진행했다. 체육선생님은 당일 우진이를 기다리다가 대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이동했다고 했으나 그가 출석만 하고 귀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의 알리바이에 2시간의 공백이 생긴 것.
이에 형사들은 그를 추궁했다. 그러자 그는 “여자와 여관에 있었다”라며 외도 때문에 당일 행적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사들은 그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가 함께 있었다는 여성을 만났다.
그런데 체육선생이 만났다는 그 여성은 신촌의 한 술집에서 일하는 홍 양. 그런데 그 여성은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였던 것. 또한 체육선생과 홍 양은 무려 사제지간으로 드러나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체육선생인 주영형 선생은 우진이의 학교로 오기 전 여자중학교에서 근무했던 것. 그리고 당시 홍 양을 만나 연인 관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보통의 외도가 아님에 형사들은 곧바로 해당 여중으로 가서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얼마 후 형사들은 충격적인 첩보를 들었다. 한 시민이 우연히 주운 해당 여중의 학생 일기에서 충격적인 내용이 포착된 것. 주 선생은 중학생인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것이었다. 특히 이 학생은 앞서 만났던 홍 양이 아닌 다른 학생이었다.
이를 포착한 시민은 교육청에 이 사실을 고발하고 학교에 항의했다. 이에 학교에서는 급히 상황 파악을 했고, 이 학생 말고도 수많은 학생들이 주 선생과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교 측은 주 선생을 추궁했다. 그러자 주 선생은 “말도 안 된다. 아이들이 장난을 친 거다. 내가 애들한테 너무 잘해준 것 같다”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그리고 소문에 오르내린 아이들은 입을 닫고 선생님의 이야기가 모두 맞다고 했다.
학교와 교육청은 모두 주 선생의 결백을 믿어줬다. 진상조사 없이 속전속결. 이들은 이 사건을 “젊은 미남 교사를 연모하던 사춘기 여중생들의 치기 어린 장난이다”라고 단정 지었다. 시민의 항의가 있었기에 이에 대한 조치를 해야 했던 학교 측은 주 선생을 전근시켰고, 그가 전근한 곳이 바로 우진이의 학교였던 것.
이 소문이 심상찮음을 직감한 경찰들. 이에 경찰들은 주 선생이 여관에 데려간 여학생이 무려 22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 선생은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불러냈고, 이후 그는 “너 선생님 좋아하지? 나도 너랑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어”라며 아이들을 유혹한 후 여관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그리고 “너와 나는 연인, 우리 사이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며 사랑을 세뇌시켰다.
주 선생은 자신의 위치와 권위를 이용해 아이들을 사냥한 전형적인 포식자, 파렴치한 미성년자 성범죄자였던 것이다.
그의 알리바이를 주장했던 홍 양. 그는 사실 주 선생에 의해 세뇌되어 조작된 기억으로 그의 알리바이를 주장한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경찰은 주 선생을 소환했다.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의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품고 있었다. 특히 그는 “가장 높은 선이 가장 잔인한 악으로 뒤바뀌었다는 걸 알게 될 거다”라며 뻔뻔한 이야기를 해 듣는 이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태도에 경찰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그가 진짜 자살을 할까 봐. 또한 학교 측에서는 거세게 그의 수사를 반대하며 항의했고, 경찰 윗선에서도 브레이크를 걸었다.
고민이 깊어가던 그때 형사들은 국과수 김정길 검사관과 함께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우진이가 납치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주 선생이 거짓말 탐지기 앞으로 소환된 것. 하지만 주 선생의 발뺌은 계속됐다.
이에 형사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우진이가 납치 당일 끼고 나갔던 새 장갑을 섞어 9켤레의 장갑을 보여주고 그를 추궁한 것. 그 장갑은 새 장갑이었기 때문에 그 장갑을 본 사람은 엄마와 우진이, 범인 셋뿐이었기 때문에 그가 범인이라면 반드시 반응을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거짓말탐지기 분석 결과 주 선생이 유괴범일 가능성은 97.3%.
범인이 맞다고 확신한 형사들은 그와 최후의 담판을 지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가짜 알리바이를 주입시켰던 홍 양을 데려왔다. 1박 2일 만에 입을 연 주 선생. 그는 “더 이상 빠져나갈 데가 없네요. 제가 우진이를 납치했습니다”라고 자백했다.
우진이가 어디있냐는 물음에 그는 입을 닫았다. 결국 우진이는 경기도 가평의 북한강변에서 발견됐다. 땅속에 암매장된 채로.
이에 당시 수사반장은 “그가 자백하는 걸 정말 가슴 아픈 심정으로 들었다. 자기를 제일 잘 돌봐주는 선생이 만나자고 하는데 어딘들 못 가겠냐. 아주 기뻐서 갔는데 그렇게 된 거다”라며 가슴 아파했다.
우진이가 납치된 지 1년 17일만, 383일 만에 가족들 곁으로 돌아온 것. 경찰은 우진이가 납치 당일 혹은 다음 날 사망으로 추정했다. 전화 목소리는 녹음해두고 후에 들려준 것이라는 것.
우진이를 납치한 주 선생의 범행 동기는 돈 때문이었다. 1천800만 원 상당의 노름빚이 있던 그는 그 빚을 갚겠다고 자신의 학생을 유괴하고, 자신만 살겠다고 또 다른 제자들을 이용했던 것. 주 선생의 공범이었던 여성은 주 선생의 제자 17살 이 양. 편지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양이 미성년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양은 중2 때 주 선생을 만나 연인 아닌 연인 관계를 유지했고, 그가 시키는 것은 뭐든 했던 것이다.
주 선생이 잡히기 얼마 전 자살 시도를 한 이 양. 그의 자살 시도 이유는 주 선생의 지시 때문이었다. 주 선생은 동반자살을 빙자해 이 양을 자살하게 해서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것이다.
얼마 후 치러진 우진이의 장례. 그리고 3년 후 또 하나의 장례가 치러졌다. 우진이의 어머니가 우진이 곁으로 갔던 것. 아들을 그렇게 보내고 무너지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체포된 주영형은 양심의 가책은 조금도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주영형은 “난 묶어놨을 뿐인데 우진이가 죽어 있었다”라며 살인죄가 아닌 유기치사죄를 적용해달라고 읍소했다. 또한 그는 재판에서 “저는 전과도 없고 교사 생활도 열심히 해왔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말라는 말이 있다. 부디 저를 선처해달라”라고 했다.
그러나 1심, 2심, 3심 모두 사형이 선고됐고 8개월 후 사형이 집행됐다. 그리고 공범 이 양은 단기 3년형, 장기 5년형을 받아 최대 5년을 넘지 않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이에 당시에도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교육계에 질타가 쏟아지며 제자와 교사의 불륜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교육계가 택한 재발 방지 대책은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순결 교육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듣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우진이 어머니는 “그가 뉘우치고 종교에 귀의하면 어떤 자비로운 신이 그를 용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용서해선 안 된다. 사회가 그를 벌하지 않으면 사회 자체가 죄인이 된다. 우리 사회는 과연 그를 벌할 능력이 있는가”라며 수많은 시그널이 있었음에도 그의 범죄를 막지 못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말을 전했다.
또한 가장 믿었던 사람의 길고 길었던 눈속임에 속았던 이들을 보며 우리 스스로는 권위나 선입견에 눈멀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에일리는 “나에게 가장 권위 있는 자는 나여야만 한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나의 중심을 잡는 사람은 다른 누구가 아닌 나여야 한다”라고 말해 모두의 공감을 자아냈다.
(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