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여년이 지났지만 잊혀지지 않았다. 요즘처럼 뭐든 쉽게 잊혀지는 사회임에도, 故 장자연 사건은 매년 고인의 기일 때마다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7일 “장자연 사건을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 권고할 2차 사전조사 대상으로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데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고 장자연의 한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고 올라온 청원 글이 무려 23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데에서 기인했다. 과거 정권이 덮은 듯한 미심쩍은 사건을 국민이 두고 보지 않은 결과다.
장자연이 누구였나? 배우를 꿈꾸던 수많은 또래들과 비슷했던, 20대 신인이었다. 하지만 연예계는 신인을 그저 평범한 여자로 살게끔 두지 않았다. 꿈을 볼모로, ‘성접대’ ‘골프 접대’ ‘술접대’ 등 지하 로비 활동을 줄기차게 시켰다. 그 과정에서 장자연은 피폐해져갔고, 의지할 부모 형제조차 없던 그녀는 결국 자살이란 비극적 선택을 했다.
기자 역시 장자연의 죽음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다. 고인의 생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9년 백상예술대상 주최측에 몸담았던 기자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꽃보다 남자’ 속 배우들을 대거 백상예술대상에 초대했다. 레드카펫에서 긴장해 넘어져 ‘꽈당민호’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민호의 모습이 생생하고, 여주인공 구혜선을 괴롭히던 ‘악녀 3인방’으로 주목받은 장자연, 민영원, 국지연이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레드카펫을 밟았던 모습이 선명하다.
세 사람은 백상예술대상이라는 명망 있는 대형 시상식에 초대받은 게 처음이라며 환한 미소로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초대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도 전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꽃길만을 걸을 줄 알았더니 불과 한달도 안되서 주검으로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사망 기사를 쓰면서도 손이 너무나 덜덜 떨렸다. 고인은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는지, 아주 긴 분량의 자필 유서도 남겼다. 누군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랐을 터이다. 하지만 문건에 언급된 ‘조선일보 방사장’은 물론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정말 그대로 끝나는 줄 알고 “역시 유전무죄, 이 사회의 부조리가 그렇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10여년이란 세월이 고인을 놓지 않았다. 매년 이슈가 되는 장자연의 죽음을 보면서 어찌보면 희망의 싹을 보았다. 고인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회 거대 권력에 대항하는 민중, 대중의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힘이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대통령까지 무소불위의 권좌에서 끌어내린 민초다. “언론사주를 오라가라 할 수 없었다”는 과거 수사담당 경찰의 목소리가 KBS와 JTBC를 통해 보도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세상이 되었다.
10년 전엔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는 게 연예 관계자들의 주된 반응이었다. 상전벽해, 10년이 지난 지금은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잊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 이번에도 그냥 덮고 넘어가는지 국민이 지켜볼 것이다. 무언가를 꿈꾸고 희망을 염원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장자연처럼 권력에 부당하게 짓밟히는 일이 더이상은 없어야 한다. 과거사위가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도록 권고했으니 이제 공은 검찰에 넘어갔다. 국민을 또다시 분노케하고 실망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최소 희망의 싹이라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이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