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진(JEAN) 브랜드의 메인 모델들이 저마다 데님으로 상하의를 매치하는 일명 ‘청청 패션’으로 2014 F/W 화보를 선보이는가 하면, 수많은 톱스타들이 공항패션으로 청청 패션을 선택하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1990년대 이후 20여년간 금기시돼 왔던 청청 패션이 다시금 유행하다니, 이제 서랍 속에 쳐박아 놨던 20년 전 청바지를 다시 꺼내봐야 할 때다.
최근 이슈가 된 청청 패션은 단연 고준희와 박해진의 공항패션이다. 고준희는 엉덩이와 허벅지 등 하체를 완벽하게 드러내는 ‘제깅스'(스키니진과 레깅스의 장점을 모아놓은 팬츠)에 데님 셔츠를 매치한 뒤 갈색 벨트로 포인트를 줬다.
박해진은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빈티지한 청바지에, 박시한 청재킷을 매치한 뒤 소매 부분을 롤업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또 두 사람은 호텔을 배경으로 뒤엉킨 섹시한 데님 룩을 연출했다. 퇴폐적이면서도 반항적인 이미지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박지윤이 패션매거진 엘르 화보에서 선보인 청청 패션 역시 “여성스러운 데님 스타일을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할 만하다. 여기저기 올이 풀린 듯한 빈티지한 청조끼에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청반바지 밑부분을 롤업해 연출했다. 흰색 셔츠와 흰색 구두를 매치해 순백의 소녀 감성을 더했다. 신세경의 경우,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잘 살리는 민소매 데님 셔츠에 스트레이트 진을 깔끔하게 입어 세련되면서도 섹시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하지만 20년만에 청청 패션을 다시금 히트시킨 트렌드세터로는 ‘한류 여신’ 전지현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전지현이 패션매거진 하이컷에서 선보인 청청 패션은 마치 모노키니(원피스 수영복과 비키니의 중간 스타일)를 입은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킬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잘록한 허리를 과감히 드러낸 청청 패션을 입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전지현의 포스는 왜 그가 지난 20여년간 ‘청순 섹시’ 스타로 군림해 왔는지 여실히 증명한다. 아마도 그녀로 인해 청청 패션의 부활이 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청은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영원 불멸의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아 왔다. 누구나 옷장 속에 데님 몇벌은 가지고 있을 것이며, 청바지를 리폼해 본 경험도 심심치 않게 있다. 70억 인구의 두 다리를 지배해온 ‘제2의 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현재도 코튼 생산량의 절반 가량이 데님을 만드는 데 쓰여지고 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케 한다.
그렇다면 청바지의 유래는 어디서 왔을까? 흔히 청바지를 ‘JEAN’ 혹은 ‘DENIM’이라고 한다. 우선 청바지는 1848년 캘리포니아 세크라멘토 강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었는데 당시 격렬한 노동에도 견딜 수 있는 질기고 튼튼한 작업복이 필요해 탄생하게 됐다.
그 작업복을 만든 직물이 프랑스 남부 지역의 님(nimes)에서 재배됐는데, 이를 앙드레 일가가 독점하다시피 만들어 팔았다. 프랑스 말로 세르주 드 님(serge de nimes)이라고 불린 이 질긴 직물은 미국인들에 의해 간편히 ‘데님’이라고 불리게 됐다.
‘진’이란 말은 1880년대 제노바 출신 항해사들을 미국인들이 줄여서 ‘진'(Genes)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입고 다니는 데님 소재의 바지를 일컫는 말로 변형되게 됐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데님’은 페브릭, ‘진’은 데님으로 만든 청바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 광부에 의해 19세기 더욱 인기를 끌게 된 작업복 청바지는 후에 미국 목장 경영자들, 즉 카우보이들의 옷으로 더욱 인기를 끌었다. ‘블루진’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고 작업복을 넘어서 휴가복 평상복으로 활용됐다.
특히 1950년대 들어서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 등 섹시 남자 스타의 의상으로 부각되면서 청바지는 거칠고 반항적인 남자들의 옷이라는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이제는 청바지, 청조끼, 청원피스, 청재킷, 청 핫팬츠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질 뿐 아니라, 하이힐에도 어울리는 파티 룩으로도 손색이 없으니 세대와 성별을 불문한 개성의 표현 수단이라 할 만하다.
데님 온 데님, 일명 청청 패션을 센스 입게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 1980년대처럼 무조건 같은 색상의 아이템으로 매치하면 몇년 뒤 하이킥을 차면서 후회할지 모른다. 가장 실패할 확률이 적은 청청 패션은 톤온톤 매치법이다. 깔맞춤식 청청 패션은 완벽한 몸매가 뒷받침되면 무리 없는데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체형에 맞게 청 색깔을 달리해 연출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체 통통족이라면 짙은 블루 혹은 검정 계통의 진을 입고, 상의는 가벼운 하늘색 계열의 청재킷이나 데님 셔츠를 매치하는 식이다. 여기에 여성의 경우 레이스가 달린 소매나, 올이 풀린 프릴 스타일의 데님을 선택하면 한결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길 수 있다. 힙 라인에 자신이 없다면 진 소재의 플레어 스커트가 제격이다.
야외 활동이 많은 요즘 같은 가을에는, 물방울 패턴 등의 패치가 가미된 독특한 데님 셔츠에 쇼트 팬츠, 마이크로미니 팬츠를 매치하면 더욱 활동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청청 패션에 포인트를 주고 싶다면 스냅백 캡, 레더 소재의 벨트나 화려한 뱅글과 신발로 포인트를 주면 세련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이쯤에서 기억 속에서 사라진 추억의 청청 패션을 소환해 보자. 레전드급 한류 스타인 이병헌과 원빈 정우성도 한때 청청 패션으로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어필했던 때가 있었다. 이병헌과 원빈은 의류 화보에서 모델로 나서 청청 패션을 소화했다. 정우성은 90년대말 영화 ‘비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청재킷을 휘날리며 마성의 눈빛을 발산한 바 있다.
이병헌에 앞서 먼저 할리우드에 진출했던 박중훈도 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뱅뱅이라는 청바지 모델로 “젊음의 새 옷을 갈아입자 뱅뱅~”이라는 CM송과 함께 청바지의 아이콘으로 사랑받았다.
김완선 역시, ‘오늘 밤’이라는 노래로 화려하게 등장해 온몸에 타이트하게 들러붙는 진 의상을 입고 도발적인 포즈와 분위기를 선보이곤 했다. 이러한 스타들의 청청 패션에 힘입어 80년대에는 조다쉬, 게스 등의 청바지 브랜드가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미치코런던,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닉스, 스톰, GV2 등이 잇달아 신세대를 사로잡았다. 후에 영화 ‘건축학개론’과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이 브랜드에 대한 에피소드와 청청 패션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원빈 정우성 등의 청청 패션은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 뭔지 보여주는 산 증거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