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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서 킬러 워킹맘 역
고난도 액션 소화하며 새로운 연기 선봬
“안 해봐서 용감하게 했다…맘대로 안 돼”
“촬영 4개월 전 하루 4시간 이상 씩 훈련”
일타스캔들 이어 연타속 홈런 새 전성기
“일약 스타도 아닌데 자존심 상하기도”
“어쨌든 기분 좋은 일 일단 즐기려고 해”
[*] 손정빈 에디터 = “누구도 제 연기를 의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 경력이 이정도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그건 제가 저를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잖아요. 전 아직 안 해본 게 많고 못한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배우 전도연(50)은 도전이라는 단어까지는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다른 걸 할 수 있다고. 그는 연기 확장을 원했다. 이 변화를 함께해줄 젊은 연출가와 스텝을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점에 있는 배우라고 해도 선택을 받지 못하면 원하는 역할을 맡을 수 없는 법. 배우는 태생적으로 수동적이다. 그래서 전도연은 몇 해 전부터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잘 맞을 것 같은 감독을 직접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을 만든 변성현 감독을 만났다. 변 감독이 액션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할 때, 전도연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변 감독은 밖에서는 슈퍼스타이지만 안에서는 너무나 평범한 엄마인 전도연을 보고 ‘워킹맘 킬러’를 착안했다. 그렇게 영화 ‘길복순’이 시작됐다.
“액션영화가 처음인데 어떻게 겁이 안 났겠어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 뿐이었어요. 후회가 안 남는 작품은 없죠.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하고 나면 후회가 조금 있어도 괜찮더라고요.”
‘길복순’은 전설로 불리는 킬러 길복순이 홀로 키우는 고등학생 딸을 생각해 은퇴를 고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화려하기 그지없는 액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길복순이 벌이는 싸움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전도연은 “(액션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으니까 용감하게 했지, 알았으면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마음 같지는 않더라”고 했다. 일부 장면은 대역을 쓰기도 하고 컴퓨터그래픽(CG)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웬만한 액션 장면은 직접 소화했다. 변 감독은 꽤나 많은 부분에서 액션신을 롱테이크로 찍었기 때문에 전도연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 후반부 식당 액션 장면은 한 달 간 촬영하기도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4개월 전부터 액션 연습 시작했어요. 매일 하루에 4시간 이상 했죠. 당연히 웨이트 트레이닝도 했고, 근육질 몸 만들기 위해서 닭가슴살 먹으면서 식단 조절도 했어요. 후회요? 후회할 시간에 연습했어요. 쉬는 시간에도 계속 연습했어요. 제 한계를 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길복순’이 본격적인 액션물이긴 해도 길복순과 딸 길재영의 관계를 공들여 보여준다. 이 영화 러닝타임이 장르에 어울리지 않게 137분이나 되는 건 길복순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그만큼 오래 담아내고 있어서다. 전도연은 액션은 액션대로 하면서 길복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표현해야 했다. 그는 “액션도 버거운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전도연은 킬러의 냉혹과 엄마의 당혹을 함께 그려내며 ‘역시 전도연’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액션과 함께 순간적으로 감정을 담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감독님이 감정 연기를 할 때면 아주 힘든 디렉션을 준 뒤에 제 피드백은 받지 않고 모니터로 도망치듯 가버리시더라고요.(웃음) 그리고 나서는 ‘해낼 줄 알았다’고 말하는 거예요.(웃음) 배우 입장에서는 감독이 요구하면 정말이지 그들이 원하는 걸 다 해내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최고 시청률 17%를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고, ‘길복순’은 지난달 31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공식 시청 시간 순위에서 비영어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두 작품 연속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성과를 냈다. 게다가 드라마에선 여전히 전도연이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을 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영화에선 액션스타가 됐다. ‘너는 내 운명’ ‘밀양’ ‘하녀’로 이어지는 2000년대 필모그래피로 연기 경력 정점에 올랐다가 ‘무뢰한’을 빼면 인상적인 작품이 없었던 2010년대는 전도연에게 꽤나 긴 침체기였다. 이런 그를 두고 많은 이들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고 얘기한다.
“사람들이 마치 제가 눈뜨고 나니까 스타가 된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솔직히 자존심 상했어요. 이번에 시청률 좀 잘 나오고, 흥행 좀 잘 됐다고 제2의 전성기 얘기가 나오니까 좀 그렇더라고요. 아무튼 기분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일단 충분히 즐겨보려고 해요. 그런데 이런 시간이 결국 지나간다는 걸 다들 알잖아요. 전 계속 하던대로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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