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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가상 세계서 버추얼 캐릭터로 프로젝트 걸그룹 결성하는 프로그램
“‘법규'(손가락 욕)·탈주 등 돌발 행동에 오히려 매력”
[*] ‘소녀 리버스’ 손수정 PD. 2023.03.02. (사진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재훈 에디터 = 사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버추얼 걸그룹 데뷔 서바이벌 ‘소녀 리버스(RE:VERSE)’는 ‘덕후’들의 잔치로 끝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컸다.
일반 대중에겐 진입장벽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전현직 K팝 걸그룹 멤버 30인이 현실에서 정체를 꽁꽁 숨긴 채 버추얼 캐릭터로 다시 태어나 가상의 세계에서 재데뷔를 하기 위해 격돌하는 형식은, 아이돌·게임 문화에 경도된 이들이 아니면 접근하기 어렵게 여겨졌다.
‘소녀 리버스’의 손수정·조주연 PD가 ‘소녀 리버스’ 첫 촬영 때부터 “무조건 친숙하게”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이유다. 두 PD는 MBC에 몸 담았을 때부터 ‘마리텔’ ‘편애중계’ 등 생소한 설정을 친밀하게 풀어낸 솜씨가 있다. 카카오로 옮긴 뒤 연출한 ‘맛집의 옆집’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온라인으로 만난 손 PD는 “‘소녀 리버스’에 참여한 30명 각자에게 서사를 부여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돌 본인이 캐릭터에 몰입하면, 시청자분들도 역시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소녀 리버스’ 속 가상의 세계는 ‘W’라 부른다. 이 속에서 활약하는 버추얼 캐릭터는 ‘소녀V’라 명명했다. 소녀V들은 저마다 각자의 캐릭터 이름을 갖는다. 현실 멤버들이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이름을 붙였다.
작년 4월부터 제작진이 아이돌과 오랜 시간 인터뷰하며 함께 서사를 구축해왔다. 머리 모양, 눈 색깔, 신장, 체중까지 구체적인 부분까지 의논해 데이터를 쌓아가며 캐릭터를 잡아갔다. 여자 아이돌 마니아인 손 PD, 한 때 아이돌을 ‘빨아본’ 조 PD라 아이돌·아이돌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이미 높았다.
[*] ‘소녀 리버스’ 조주연 PD. 2023.03.02. (사진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손 PD는 “현실에서 실제로 자신이 못했던 부분, 나로서 진짜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전부 하고 갔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다른 이들도 본인을 선입견 없이 온전히 ‘나’라는 존재로 바라봐주는 게 느껴졌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특히 가상 공간이라는 특징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표현과 소통이 가능했다. 프로그램 기획의 출발도 코로나19로 소통하지 못하던 때에 메타버스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창조하는 Z세대들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아이돌 숫자는 점차 늘어나는데 저마다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적다는 점도 프로그램 론칭에 한몫했다. 방송 형식 역시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OTT·인터넷 산업 위주로 전환되는 시점이라 과감한 도전도 필요했다.
이런 점은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아이돌 사회에도 반영된 ‘계급장 문화’를 타파해줬다. 아이돌 업계에선 데뷔 연차에 따라 위계질서가 확실해 선배나 후배들이 서로에게 접근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소녀 리버스’ 세계에선 서로의 관계가 수평적이다.
조 PD는 “해당 캐릭터의 본체를 모르기 때문에 서로 반말을 해요. 섭외 미팅에선 같은 그룹 멤버끼리도 언니의 경우하면 존댓말을 사용했거든요. 낯을 가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이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했어요. ‘계급장 떼고’ 서로 매력을 뽐낼 수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고 웃었다.
[*] ‘소녀 리버스’ 무너. 2023.03.02. (사진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다 같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도 ‘선배님’이 아닌 캐릭터의 이름으로 편하게 얘기할 정도로 ‘서로 경계가 없어졌구나’ 싶어서 뿌듯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촬영이 편하다(?) 보니 돌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첫 촬영 당시 ‘무너’가 ‘법규'(손가락 욕)을 날린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행동이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우리끼리 재밌게 놀아도 되는 잔치구나”(손수정 PD)라는 걸 인식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많은 소녀들이 자신을 내려놓은 채 스스럼없이 행동하게끔”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김세레나’는 등급 판정에서 최하 등급인 ‘브론즈’를 받자 현장을 탈주하는 풍경을 연출했다. 현실 오디션에선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장면이었다. 이런 폭주조차 매력으로 느껴지게 하는 게 ‘W’의 힘이다.
‘소녀 리버스’는 오는 6일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게 되는 그룹에 포함되는 최종 캐릭터 다섯 명을 공개한다. 이전까지 소멸(탈락)하면 캐릭터의 본체를 공개했는데, 이들 다섯 명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5월 초에 이 그룹의 데뷔곡을 공개한다.
사실 ‘소녀리버스’는 새로운 형식이지만 그 구성 요소는 새롭지 않다는 시선이 많았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걸그룹 ‘에스파’ 세계관에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KBS 2TV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 그리고 탈락 전까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MBC TV ‘복면가왕’ 등을 결합시킨 콘셉트이기 때문이다.
[*] ‘소녀 리버스’. 2023.03.02. (사진 =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울러 이미 2018년 가상의 걸그룹 ‘K/DA’가 선보여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온라인 게임 ‘LoL’ 속 4명의 여성 캐릭터 카이사, 이블린, 아리, 아칼리로 구성된 이 팀은 K팝 걸그룹 ‘(여자)아이들’ 미연과 소연 그리고 매디슨 비어, 자이라 번스 등 실제 가수들이 보컬을 맡았었다.
그런데 ‘소녀 리버스’는 예상을 뛰어넘는 캐릭터의 매력과 상상 이상의 몰입도로 고유성을 확보했다. 미국 유력 신문 뉴욕타임스는 한국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조명한 기사에서 ‘소녀 리버스’에 대해 “이것이 메타버스 속 엔터테인먼트의 미래이며, 모든 기술에 대한 세계의 시험장인 한국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이 아이돌 본체의 아날로그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사용됐고, 제작진이 그렇게 사용하려고 노력한 점이 인상 깊다. 대중에게 익숙한 캐릭터 ‘펭수’를 MC이자 멘토로 내세워 분위기를 끌어올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손 PD는 “끼가 많지만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들이 더 많이 조명되기를 바랐어요. 정체가 공개된 아이돌의 향후 활동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저 역시 ‘소녀 리버스’를 통해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무너졌고 새로운 매력을 발견 했거든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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