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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빈 에디터 = 3월 첫 주 개봉 영화 및 최신 개봉작 간단평을 정리했다.
영혼과 몸 모두를 바친 배우…더 웨일(★★★☆)
흔히 좋은 연기를 한 배우를 향해 혼신(渾身)의 연기를 했다는 표현을 쓴다. 가진 모든 걸 쏟아낸 연기라는 얘기일 것이다. ‘더 웨일’에는 혼신(魂神)의 연기가 있다. 영혼은 물론 육체까지 바친 연기라는 의미다. 브렌던 프레이저는 ‘미이라’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배우. 멋진 얼굴, 근육질 몸매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부상과 이혼, 우울증 등을 연달아 겪으며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살이 쪘고, 풍성한 금발 머리칼은 사라졌으며, 자신감도 잃었다. 그랬던 프레이저가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을 만나 자기 인생의 곡절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다시 한 번 배우로서 걸음을 뗐다. 프레이저의 진심이 담긴 연기는 결국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연인을 잃은 고통, 고통으로 인한 폭식, 폭식으로 인해 600파운드(lb)(약 270kg)가 돼버린 몸, 그 몸을 지탱하지 못해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8년 전에 버리고 떠난 딸에게 전화를 건다. 그 이야기가 ‘더 웨일’에 담겼다.
철 지난 유행가…대외비(★★)
이성민·조진웅·김무열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인지 모르는 관객은 없다. 이 세 사람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대외비’는 구미가 당길 정도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 지나치게 익숙하다. 정치인과 조직폭력배가 뒤엉켜 욕망을 내뿜으며 이전투구하고, 검사와 에디터가 등장해 양념을 치는 구도는 코로나 사태 이전 한국영화가 수차례 반복해온 설정과 이야기가 아닌가. 가장 안타까운 건 ‘대외비’의 기시감이 저 좋은 배우들의 연기마저도 뻔해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의도는 알죠, 근데요…멍뭉이(★★)
이 영화를 만든 건 ‘청년경찰'(565만명)의 김주환 감독이다. 두 주연 배우 차태현과 유연석은 영화든 드라마든 골라서 출연할 수 있는 배우이다. ‘멍뭉이’는 이들이 함께하는 작품 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소박하다. 물론 영화를 보면 이들이 왜 이 작품을 함께했는지 그 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그 선한 의도를 떠나 영화만 놓고 본다면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티켓값 1만원은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를 한 달 간 이용하면서 온갖 작품을 볼 수 있는 돈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관객은 냉정해도 너무 냉정하다.
전락을 위한 절정의 연기…TAR 타르(★★★★☆)
‘TAR 타르’는 뛰어난 영화이지만, 도저히 케이트 블란쳇에 관해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블란쳇은 이 영화에서 베를린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자 세계 최고의 지휘자 ‘리디아 타르’를 맡았고, 그의 연기는 천의무봉(天衣無縫)에 가깝다. 블란쳇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인지 말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연기에 관해 어떤 식으로라도 언급하지 않는 건 분명 직무유기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에 앞서 존재하는 연기라는 건 없겠지만, ‘TAR 타르’에서 블란쳇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어떤 연기는 영화를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많은 이들이 블란쳇 최고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블루 재스민’을 꼽을 것이다. 아마도 이 평가는 ‘TAR 타르’를 보고 나면 바뀌어야 한다.
착하고 순진해…카운트(★★)
편파 판정으로 진 선수가 아니라 이긴 선수가 주인공이라는 건 분명 흥미로운 설정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줄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종목이 영화라는 장르와 특히 궁합이 잘 맞는 스포츠인 복싱이라는 것도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가 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야심이 없는 영화 ‘카운트’가 선택한 건 스포츠 코미디다. 이 작품은 분명 무해하다. 착한데다가 귀여운 구석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 영화와 딱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 순진한 영화가 까다롭기로 소문난 요즘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너무 멀리 가버린 마블…앤트맨과 와스프:퀀텀매니아(★★☆)
이제 관객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마블 영화를 계속 볼 것인가, 말 것인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MCU) 페이즈5의 첫 번째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퀀텀매니아’는 고(go)와 스톱(stop)의 기로에 선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25년에 나올 예정인 ‘어벤져스’ 시리즈 5번째 영화 ‘어벤져스:캉 다이너스티’로 가는 길을 연다. 멀티버스·시간·공간·과거·현재·미래·우주 그리고 슈퍼 빌런 ‘캉’까지…이른바 MCU의 ‘멀티버스 사가(saga)’의 키워드가 모두 등장한다. 이 모든 게 대략적으로라도 이해가 되는 관객은 고를 하면 되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스톱하면 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를 찾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났고, 마블은 그때로 돌아갈 마음도 전혀 없어 보인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윤리…다음 소희(★★★★)
겨우 영화 따위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이죽거리는 비관론자들에게 영화 ‘다음 소희’는 영화의 역할에 관해 반박하는 대신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건네는 것 같다. 그 물음은 어쩌면 영화와 무관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이 되길 바랍니까.’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 같은 건 이 말에 없다. 최소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어떤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아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태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역할을 ‘다음 소희’는 영화로서 다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기어코 만드는 건 영화감독으로서 정주리의 책임감으로 보인다.
이런 난장판엔 주님이 계시지 않아…성스러운 거미(★★★☆)
당신이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면, 개탄 속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노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절망하게 될 것이다. ‘성스러운 거미’는 이란 사회에 뿌리 내린 저 너절한 여성 혐오를 직격한다. 신의 뜻을 참칭하며 여성을 살해하는 한 남성의 행태는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 그리고 이 남자를 영웅이라 칭하는 이들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는 그 세계는 얼마나 소름끼치는 곳인가. 그리고 이 성지(聖地)에서 진짜 신성모독을 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알리 아바시 감독은 전작 ‘경계선'(2019)과 정반대 화법으로 이란 사회를 뒤집어 놓는다. 이 문제는 매우 시급하기에 에둘러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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