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가 낳은 애국자?…우장춘 박사의 파란만장한 삶

by Idol 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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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16.(사진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공 ) *재판매 및 DB 금지


[*]최윤정 인턴 에디터 = 해방 직후 굶주렸던 대한민국을 살린 농학 박사 우장춘의 업적이 밝혀진다.

16일 오후 10시30분 방송하는 SBS TV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한국 현대 농업기술의 초석을 세운 우장춘의 삶이 조명된다.

1950년 1월, 일본 나가사키현에 위치한 수용소에 한 남자가 제발로 들어온다. 그는 자신이 한국사람이니, 한국으로 강제 추방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그는 일본의 저명한 과학자인 스나가 나가하루였다. 직원이 이를 거부하자 그는 종이로 된 호적 등본을 내민다. 종이에 선명하게 써있는 글자는 ‘우장춘’이라는 이름이었다.

흔히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이로 떠올리는 우장춘은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실 그의 아버지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친일파 우범선이다. 우범선은 체포령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가 일본인과 결혼해 우장춘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아들이 6살이 되던 해, 조선에서 온 자객에 의해 암살 당한다. 

아버지를 잃은 우장춘은 일본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 그는 조선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이유로 대학 입학, 결혼, 직장 등에서 끝없는 차별을 받는다. 심지어 세상을 놀라게 만든 논문 ‘종의 합성’을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 그러나, 좌절과 시련은 우장춘을 더 강하게 만든다. 남들보다 몇 십 배 노력한 끝에 능력을 인정받는다.

결국 우장춘은 50세가 넘은 나이에 일본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살게 된다. 어느 날, 그런 그에게 한국으로부터 하나의 제안이 들어온다. 바로 아사 직전인 한국인의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달라는 것. 그는 ‘매국노의 아들’이라고 비난하는 고국으로 넘어가 식량난을 해결한다.

◎지오아미 코리아 Centiner0913@1.234.21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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