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300]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by Idol 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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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빈 에디터 = 2월 2주차 개봉 영화 및 최신 개봉작 간단평을 정리했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윤리…다음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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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영화 따위가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 이죽거리는 비관론자들에게 영화 ‘다음 소희’는 영화의 역할에 관해 반박하는 대신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건네는 것 같다. 그 물음은 어쩌면 영화와 무관하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이 되길 바랍니까.’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 같은 건 이 말에 없다. 최소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어떤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아주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 없이 사용해야 한다는 태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역할을 ‘다음 소희’는 영화로서 다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기어코 만드는 건 영화감독으로서 정주리의 책임감으로 보인다.

이런 난장판엔 주님이 계시지 않아…성스러운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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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면, 개탄 속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노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절망하게 될 것이다. ‘성스러운 거미’는 이란 사회에 뿌리 내린 저 너절한 여성 혐오를 직격한다. 신의 뜻을 참칭하며 여성을 살해하는 한 남성의 행태는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 그리고 이 남자를 영웅이라 칭하는 이들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는 그 세계는 얼마나 소름끼치는 곳인가. 그리고 이 성지(聖地)에서 진짜 신성모독을 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알리 아바시 감독은 전작 ‘경계선'(2019)과 정반대 화법으로 이란 사회를 뒤집어 놓는다. 이 문제는 매우 시급하기에 에둘러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도 영화…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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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요악하자면 ‘인생은 짧고 영화는 길다’라고 해야 할까.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새 영화 ‘바빌론’에서 인간들은 몰락해 사라지지만, 영화만큼은 끝까지 살아남았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런 영화를 향한 예찬이며 헌사라고 해야 하나. 글쎄, 그깟 영화라는 꿈 때문에 너무 많이 다치고 너무 자주 아프고 크게 좌절하다 죽어버리고 마는데 그 무슨 어울리지 않는 상찬인가. 그런데 문제는 이 빌어먹을 놈의 영화가 누군가에겐 꿈이었고 사랑이었고 희망이었다는 것이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데 그만큼 열렬히 사모할 수밖에 없단느 얘기다. 말하자면 영화에 관한 영화인 ‘바빌론’은 셔젤 감독이 애(愛)와 증(憎), 미(美)와 추(醜)를 양손에 쥔 채 완성한, 영화 바로 그놈이다.

설득하기 만만찮네…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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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의 성패는 결국 설득력에 달려 있는 것 아니겠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성공일 것이고, 관객의 마음을 열지 못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교섭’은 태생적으로 이 대목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바탕으로 한국인 인질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두 명의 프로페셔널에 관한 이야기인 이 작품은 “외교부의 주요 사명 중 하나는 자국민 보호라고 알고 있다”는 대사 한 마디만 가지고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인질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두 공무원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스타일은 화려한데…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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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일제강점기와 독립 투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영화들과 달리 ‘유령’은 철저히 장르에 집중한다. ‘유령’의 일제강점기는 목숨을 걸고 활동하는 스파이가 존재하는 시간대이고, 일제가 앗아간 조선은 멋진 총기 액션이 허락된 공간이다. 그리고 이때 독립 투사들은 분노와 슬픔에 휩싸여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부유하는 캐릭터에 불과하다. 물론 이건 잘못된 게 전혀 아니다. 이런 영화도 있는 법이니까. 문제는 ‘유령’이 목표로 하는 장르물의 매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전반부 추리극은 정교하지 않고, 그러다보니 후반부 액션극 역시 큰 힘을 받지 못한다. 이하늬와 박소담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은 비슷한 종류의 다른 영화들이 자주 떠오를 정도로 익숙하기도 하다. 

바로 여기, 그 청춘이…더 퍼스트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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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는 청춘의 표상(表象)이다. 겨우 만화책 따위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상찬이라며 인정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건 사실이니까. ‘슬램덩크’는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춘기를 지나온 이들을 언제라도 그때 그 시절로 데려 간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 생활에 절어 있는 이들에게도 강백호의 무모함이 있고, 서태웅의 재능이 있고, 송태섭의 깡다구가 있고, 정대만의 열정이 있고, 채치수의 패기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러니까 그들도 한 때는 북산고 농구부였고, 전국제패를 꿈꿨다고. 아마도 이들에게는 각자 가슴 속에 새겨 둔 ‘슬램덩크’ 명대사가 있을 것이다. 그건 보고 또 봐서 외운 게 아니라 가슴 속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 말들이다. 바로 그 청춘의 ‘슬램덩크’는 이 말 한 마디로 시작됐다. “농구 좋아하세요?”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에 다시 한 번 불을 지른다. 물론 이건 2시간이면 끝나버리는 영화 한 편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 작품은 그저 활활 타오르던 치기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영화 그 이상이다.

◎지오아미 코리아 jb@1.234.21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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