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국과수서 보관했던 남자 머리, 300명 넘게 죽인 사이비 교주의 정체

by Idol Univ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1일 방송된
‘꼬꼬무- 죽음의 동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주령, 모델 이현이, 가수 박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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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과수에 보관된 사람 머리

때는 2001년, 서울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무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어. 전화를 건 사람은 “대원님의 머리를 돌려줘! 대원님 머리 당장 내놓으라고!”라며 이상한 소리를 했어. 이런 전화가 한 달 가까이 매일 이어졌고, 국과수 내에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어. 그 ‘대원님’의 머리가 포르말린 병에 담겨 보관돼 있다더라, 지하 부검실에서 누가 그걸 봤다더라, 하는 괴담이 이어졌어.

놀라운 건, 이게 괴담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거야. 실제로 국과수에는 어떤 남자의 머리가 보관돼 있었어. 당시 사진을 보여줄게. 충격적일 수 있으니, 심신미약인 사람은 잠시 눈을 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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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에는 실제로 한 남성의 두상이 포르말린 병에 담아 보존돼 있었어. 이 남자가 누구길래, 대체 ‘대원님’이 뭐하던 사람이길래 그의 머리를 보존한 걸까.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였대. 그래서 그 뇌를 연구하려고 머리를 보관했다는 거야. 얼마나 악랄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줄게.

그가 범행을 저지른 현장부터 살펴볼까. 여기는 경기도 동두천시 마차산에 있는 한 동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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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안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감돌아.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 지금은 당시 범행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뭔가를 캐내려 동굴벽을 정으로 쳐낸 자국이 보여. 이 근방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어.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마차산 올라갈 때는 무섭다. 뭐가 나올 거 같고.”

“아기들 업고 금반지 끼고 그런 사람들이 (산에) 많이 올라갔다더라. 근데 가는 것만 봤지, 내려가는 건 못 봤다고 한다.”

“날씨가 침침하고 비 올 것 같으면, 그렇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더라.”

-인근 동네 주민들

이 동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인근 주민들이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을까. 이 동굴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건 지금으로부터 85년 전인 1937년이야.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

▲ 300구가 넘는 시신의 발견

당시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 동굴 근방에 구덩이를 팠어. “여기 있습니다!”, “여기도요!” 하며 난리가 났어. 파는 곳마다 여기저기서 시체가 쏟아져나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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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구덩이에는 8명의 시신이 뒤엉켜있고, 어떤 구덩이에는 갓난아이를 업은 엄마의 시신이 있었어. 이렇게 발견된 시체가 무려 40구. 전부 살해 후 암매장 됐어. 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였을까? 범인의 사진을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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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이름은 이경득. 이 사람 혼자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고, 공범들이 있어. 이 사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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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명을 포함해 살인에 가담한 사람이 무려 18명이야.

이건 시작에 불과했어. 살인 암매장이 더 있었어. 동굴이 있던 동두천을 시작으로, 경기도 양평, 양주, 연천, 서울 등 전국 수십 곳에서 시신들이 발견됐어. 살해 방법을 보면, 대부분 교살 후 암매장했고, 산 사람을 생매장 하기도 했어. 이렇게 전국에서 발견된 시신이 무려 300구가 넘어. 그 중에 영유아가 77명, 아동이 32명, 노인 16명이었어.

이경득은 166명을 죽였고, 다른 공범들은 각자 169명, 16명, 35명을 죽인 것으로 조사됐어. 이 범죄자들이 두 세명씩 짝을 지어 살인을 했대. 한마디로 ‘살인집단’이야. 이들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걸까?

이들은 법정에서 살인 이유를 묻자 하나같이 “대원님이 죽이라고 해서”, “대원님이 시켜서”라고 말했어. 이들에게 살인을 지시한 ‘대원님’, 그는 대체 누구인 걸까.

▲ 백백교의 대원님, 교주 전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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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대(大)에 근원 원(源), 세상의 근원이 되는 큰 어른이란 뜻이야. 대원님의 본명은 전용해. ‘백백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야. 백백교는 ‘한 사람의 흰색으로 천하를 희게 한다’는 의미래. 그 ‘한 사람’이 바로 교주 전용해 인거야.

교주 전용해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어. 그 이유는, 그가 얼굴을 가리고 다녔기 때문이야. 그의 눈을 마주 보는 사람은 눈이 멀 수 있대. 그래서 신도들이 눈이 멀까봐, 교주 전용해는 이렇게 하고 다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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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고 다니니 교주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거지. 게다가 신통력도 대단했대. 신도의 신상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 맞췄고, 한 번은 신도들이 마당에 엎드려 기도를 할 때 전용해가 “천벌을 받는 자,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니라”고 말한 후 정말 한 사람이 그대로 엎드린 채로 죽었대. 이걸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신도들은 전용해에 대한 믿음이 더 굳건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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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전용해의 신통력은 모두 조작된 것이었어. 전용해가 처음 본 사람의 신상을 꿰뚫어 본 건, 방에 종이로 만든 간이벽을 만들어 그 너머에서 몰래 대화를 엿듣고, 그걸 토대로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연기한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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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도하다가 쓰러져 죽은 신도는? 그 사람은 천벌을 받은 게 아니라, 교주가 심복들을 시켜 신도들이 바닥에 엎드려 기도할 때 뒤에서 줄로 목을 감아 죽인 거야. 하지만 감쪽같이 속은 신도들은 전용해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져. 대원님의 말이라면 뭐든 했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질렀어.

▲ 사이비종교 백백교의 포교법

해가 갈수록 백백교 신도들은 늘어났고, 이를 토대로 전용해는 아예 회사를 차렸어. 금광 사업을 시작한 거야. 시신 수 십구가 발견된 동두천 마차산의 바로 그 동굴을 ‘천원금광’이라 하며, 교주가 신통력으로 금맥을 찾았다고 홍보했어.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왔고, 교주는 동굴로 사람들을 데려가서 요상한 주문을 외웠어.

“백백백 의의의 적적적 감응 감응응 하시읍 숭셩…”

이게 백백교의 주문이래. 이 주문을 외운 후 곡괭이 질을 하니 세상에나, 진짜 금이 나왔어.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대원님”, “신의 아들 만세!”하며 난리가 났어. 백백교가 관리하는 동굴에서 금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졌고, 전국에서 투자하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왔어. 이 때부턴 돈 있는 사람들도 백백교에 빠져들어서 땅문서며 집문서며 다 갖다 바쳤대. 근데, 이 천원금광에서 정말 금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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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속임수였어. 금을 사서 작두에 얇게 썬 후, 그걸 돌에 찧어 여러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동굴 안에 금을 박아둔 거야. 이렇게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 왜 백백교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을까. 그런 의심이 싹트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그것도 교주가 미리 다 계획을 세워둔 거였어.

사이비 종교의 전형적인 포교법 1단계는, ‘고립’이래. 가족도 친구도, 의심의 대화를 나눌 상대를 만들지 않고 철저히 혼자 떨어뜨려 놓는 거야. 백백교 신도가 되면 짐을 싸서 집에서 나와야 했대. 그리고 사회와 단절된 곳에서 신도들끼리 집단생활을 해. 백백교는 전국 50여 곳에 피난처를 지정해 놨어. 이제 곧 심판의 날이 올 것이고, 대원님의 신통력을 받는 피난처에 있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는 거야. 그 피난처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오지에 있었어. 가족이 다같이 백백교에 들어와도, 뿔뿔이 떨어뜨려 놨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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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의심하는 신도가 있다면, 2단계는 ‘공포’야. 의심을 하는 사람을 신도들 앞에서 철저하게 응징하며 공포심을 심어준 거야. 백백교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어. 당시에 나온 신문기사 내용을 소개할게.

“아버지를 찾으러 그의 처 신씨, 장남, 장녀, 이녀, 삼녀 등 7명이 함께 서울에 온 것을 아버지에게 만나게 해주겠다고 꾀어 데리고 가서 한꺼번에 죽인 것을 비롯하여

남편을 찾아온 처, 처를 찾아온 남편이며 아무 죄 없는 어린 자식 등을 차례차례 살해한 사실이 2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보아

백백교가 자기 죄악을 감추고자 가족 몰살 주의로 나가 악한 범행을 계속한 것이 확연하다”

정체가 들통날 거 같으면 가족을 몰살 시킨 거야. 당시에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쓴 논고를 보면, 백백교가 어떤 경우에 사람을 죽였는지 명시돼 있는데 충격적이야.

“자기 명령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돈이 없다고 전용해에게 돈을 안 주었기 때문에,

전용해의 첩에게 추파를 건네었기 때문에,

살인사건을 알고 있는 듯한 의심이 있는 경우에,

먼저 죽인 자의 가족을 살려두면 관헌에 발각될 염려가 있는 경우에,

한 지역에 너무 많은 신도를 두어 발각될 염려가 있는 경우에…”

그렇게 살해된 사람이 300명이 넘었던 거야. 그럼, 이 교주 전용해는 어떻게 잡혔을까?

▲ 마침내 드러난 백백교의 실체

백백교와 전용해의 정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이 있어. 유곤용이란 이름의 청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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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곤용의 집안은 대대로 유복했대. 그런데 언제부턴가 집안 돈이 어디론가 빠져나갔고, 가세가 점점 기울었어. 그 원인은 백백교 때문이었어. 유곤용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대.

“후세에 빚을 남기고 죽게 되어 명목이 없다. 백백교를 믿으며 있는 가산 없는 가산을 긁어 모아 헌성금을 하다 보니 가산을 온통 탕진했을 뿐 아니라, 네 아비는 아직도 저들의 속임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방랑 생활을 하고 있으니. 곤용아 우리 집안에 철천지 한을 안겨준 백백교를 부숴서 네 아비를 건지고 더 이상 가련한 사람들이 백백교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게 해다오.”

유곤용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백백교에 빠져있던 거야. 재산을 다 갖다 바치고, 심지어 아버지는 딸까지 교주한테 바쳤어. 유곤용의 여동생, 당시 나이 18살이었어.

유곤용은 반드시 백백교의 실체를 밝히고 교주를 찾아내 작살을 내겠다고 결심했어. 들개처럼 전국을 헤매고 다닌 2년 만에 백백교의 핵심 간부를 만났어. 유곤용은 그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고, 대원님과의 만남 약속까지 잡았어. 아버지와 여동생의 거처도 알아냈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백백교에 빠져있었어. 심지어 여동생은 교주의 첩으로 살고 있었어.

섣불리 행동했다간 목숨이 위험해. 유곤용은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한테 말했어. “아버지 제가 그동안 어리석었습니다. 저도 대원님께 의탁하기로 했습니다”라고. 아버지는 “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구나”라며 아들의 손을 잡고 크게 기뻐했어. 그 순간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드디어 전용해와 만나는 약속이 잡혔어. 1937년 2월 16일 밤. 왕십리에 있는 아버지 집에서 유곤용이 전용해를 기다리고 있었어. 아버지는 “대원님의 얼굴을 절대 쳐다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 잠시후 문이 열리고, 검은 외투에 검은 구두를 신은 남자가 등장했어. 그 뒤를 유곤용의 여동생이 따랐어. 상석에 앉은 전용해는 유곤용에게 “이보게, 자네는 이제 내 처남이 아닌가”라고 껄껄 웃으며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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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유곤용은 소리쳤어. “전용해, 네 이놈! 악마 같은 놈!” 순간 전용해가 품에서 칼을 꺼내려 했고, 유곤용은 전용해의 멱살을 잡아 메다꽂았어. 소리를 듣고 밖에 있던 백백교 간부들이 들어왔고,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어.

정말 다행인건, 파출소가 바로 옆에 있었대. 유곤용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경찰은 현장에서 백백교 간부를 전부 체포했어. 그런데 어라? 전용해가 사라졌어. 혼란을 틈 타 도망친 거야. 경찰은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어. 그런데 문제는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전용해의 머리카락 하나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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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정도가 지난 어느날, 경기도 양평에 전용해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70여명의 검거단이 출동했고, 우거진 숲 속에서 전용해를 발견했어. 그런데 이미 사망한 후였어. 시신을 보니 칼로 목을 그었어. 정황상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여. 근데 얼굴의 일부를 들짐승이 물어 뜯은 상태였어. 그 사람이 전용해인지 확인을 하기 위해 경찰은 전용해의 아들을 불러 시신 확인을 시켰어. 아들은 그 시신이 전용해가 맞다고 했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이 때가 1937년이니, DNA 검사 같은 과학 수사가 없잖아.

이렇게 백백교의 실체는 드디어 만천하에 드러났어.

▲ 되풀이 되는 사이비 종교

당시는 일제 강점기야. 이 백백교 사건을 본 일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본은 오히려 반가워했을 지도 몰라. “이런 말도 안되는 사이비를 믿어? 역시 조선인은 미개한 민족이다. 대일본제국의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라고 이용하기 딱 좋잖아. 당시 신문마다 백백교 사건으로 도배가 됐어. 수사도 엄청 길게 했대. 무려 3년 가까이. 일본이 자기들이 하는 나쁜 짓을 감추고 눈을 돌리려는 수작으로 써먹은 거지. 백백교 사건을 재판할 때도 이례적으로 방청권을 쫙 배포했대.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100장이 넘는 분량의 판결문에는 ‘살해’, ‘사체 유기’란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와. 백백교 간부 14명에게 사형이 선고됐어. 그리고 일본은 교주 전용해의 머리를 포르말린 병에 넣어 영구보관을 시켰어. 범죄자의 두뇌 표본으로 연구하겠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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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런 행동에는 숨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읽혀. ‘조선인은 무지하다. 고로 일본이 다스리는게 마땅하다’는 논리로 마치 전시하듯이, 식민지배 합리화를 위해 두고두고 이용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 전용해의 머리는 돌고돌아 국과수로 넘어와 보관되다가, 지난 2011년에 화장됐어. 이제 역사 속에 영원히 사라진 거지. 그럼 이 백백교, 영원히 사라졌을까?

아니, 그렇지 않아. 오대양 사건, 영생교 신도 살해사건 등 백백교와 꼭 닮은 사이비 종교의 범행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어.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전용해도 자기 아버지한테 배운 거라는 거야. 전용해 아버지 전정운도 ‘백도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어. 백백교와 백도교, 이름만 비슷한 게 아니야. 포교 방법, 방탕한 생활, 심지어 신도를 살해한 것까지 꼭 닮았어. 전정운이 죽고, 아들 셋이 그 뒤를 이어 받았어. 큰아들이 ‘인천교’, 둘째 아들 전용해가 ‘백백교’, 셋째 아들은 ‘도화교’를 만들었어.

이런 사이비 종교가 일제강점기 때 유독 많이 만들어졌대. 일제에 다 빼앗겨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넘쳐났던 시절. 핍박과 고통으로 암울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뭐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을 사이비 종교가 파고 든 거야.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의 절망을 빨아들이며 끈질기게 살아남아 왔어.

백백교를 단지 100년 전 이야기로 생각해도 될까. 지금 우리 곁에는 사이비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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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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