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두 편이 모두 수상의 영예를 누리는 의미있는 결과를 낳았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이 28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발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렸다.
코로나19를 딛고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한국 영화가 대거 초청받아 달라진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까지 받으며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것도 중요한 촉매제가 됐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잘 만들어진 한국 영화들이 칸의 문을 다시 한 번 두드렸다. 수상의 영광이 따라온 건 필연적 결과기도 했다.
◆ ‘국민배우’ 송강호, 7번 도전 끝에 ‘칸의 총아’로
수상의 포문을 연 건 ‘국민배우’ 송강호였다. 송강호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브로커’는 황금종려상 수상에 빛나는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첫 번째 한국 영화. 베이비 박스로 만난 피한방울 안 섞인 남남들이 유사 가족의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드라마다. 이 작품에서 송강호는 세탁소를 운영하며 브로커로 일하는 상현으로 분해 특유의 페이소스 짙은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23일 칸에서 공개된 직후 영화에 대한 평이 엇갈리며 수상 전망이 밝지 않았으나 극에서 중심을 잡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휴머니즘을 생생하게 구현한 송강호는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수상 직후 송강호는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이주영, 배두나 배우에게 깊은 감사와 이 영광을 같이 나누고 싶다. (제작사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 (배급사) CJ 관계자 여러분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며 수상의 기쁨을 동료들과 나눴다.
또한 “저희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같이 왔다. 큰 선물이 된 것 같아 기쁘고 이 트로피에 영광과 영원한 사랑을 바친다”고 감격에 찬 소감을 전했다.
받을 사람이 받은 결과였다. 송강호는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배우다. 그는 일찌감치 칸영화제와 인연을 맺어왔다. 2006년 ‘괴물'(감독 봉준호)로 칸영화제를 처음 방문한 이래 ‘밀양'(감독 이창동),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 ‘박쥐'(감독 박찬욱), ‘기생충'(감독 봉준호), ‘비상선언'(감독 한재림) 등으로 칸영화제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하며 영화제에 기여했다.
칸영화제는 송강호가 칸을 찾을 때마다 애정과 예우를 보이며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임을 잊지 않았다. ‘브로커’로 다시 한번 칸을 찾은 송강호를 이번에는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국 배우가 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은 2007년 ‘밀양’의 전도연 이후 두 번째이며, 남자배우로는 송강호가 처음이다.
◆ ‘칸느 박’의 위엄…심사위원 대상→심사위원상→감독상
‘원조 칸 스타’ 박찬욱 감독도 올해 영화제에서 의미있는 순간을 맞았다. 신작 ‘헤어질 결심’으로 6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찬욱은 감독상을 받으며 커리어에 역사적인 페이지를 장식했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멜로와 수사물을 혼합한 영화로 박찬욱 감독의 개성이 강하게 투영된 수작이다.
이 작품은 올해 영화제에 초청된 21편의 영화 중 평단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으며 황금종려상 수상도 점쳐졌지만 심사위원들은 ‘한국의 영화 거장’에게 감독상을 수여하며 그의 영화 세계와 철학에 대한 경외를 표했다.
박찬욱 감독은 수상 후 무대에서 “코비드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 인류가 국경을 높이 올릴 때도 있었지만 하나의 단일한 공포와 근심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라며 코로나19 시대의 암흑기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러면서 “영화도 극장에 손님이 끊어지는 일을 겪었지만 그만큼 영화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질병을 이겨낼 희망과 힘을 가진 것처럼 우리 영화, 영화인들도 영화관을 지키면서 영화를 영원히 지켜내리라 믿습니다”라고 끝나지 않을 시네마의 위력과 위대함을 강조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박해일, 탕웨이 이 두 사람에게 보내는 저의 사랑은 무어라 말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영화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 그룹의 이미경 부회장, 영화의 각본을 쓴 정서경 작가를 비롯한 우리 ‘헤어질 결심’의 모든 식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 임권택부터 시작된 ‘칸의 역사’…韓 영화, 본상 7개 다 모았다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인해 한국 영화는 칸영화제에서 본상 7개 트로피를 모두 모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 영화는 지난 100년간 비약적 발전을 이뤄왔지만 세계 영화 무대의 기준으로 볼 때는 변방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세계 3대 영화제 중 가장 명성이 높은 칸영화제에 잇따라 수상에 성공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전세계에 높이기 시작했다.
칸영화제와 한국 영화와의 수상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임권택 감독은 ‘취화선’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해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2004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2007년에는 영화 ‘밀양’으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2009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다시 한 번 칸영화제에 초청돼 심사위원상을 받았으며, 2010년엔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올해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과 송강호의 남우주연상까지 추가돼 한국 영화는 20년 사이에 칸영화제 본상 7개를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한국 영화 두 편이 경쟁 부문에 진출에 모두 본상 수상에 성공한 것은 최초의 일이다.
칸영화제에서의 수상 결과가 그 나라의 영화와 영화인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는 아니지만, 영화의 본고장이자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에서 국적도 언어도 다른 우리 영화가 고유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박수칠만한 성과다.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