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아이돌’로서의 고난과 휴머니즘: 주인공의 여정

by Idol Univ

이세계아이돌·스텔라이브…2D 가상 아이돌 그룹 인기

“자신 감추기에 오히려 진솔한 모습 보여주는 아이러니”

[*] 그룹 ‘플레이브’. (사진=블래스트 제공) 2024.03.21. *재판매 및 DB 금지

[*] = “내가 버추얼 아이돌을 좋아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너희는 가상세계 뒤에 있지만 그걸로는 가릴 수 없는 더 큰 진심이 내게 와 닿았어!”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 인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발매한 미니 2집 ‘아스테룸 : 134-1(ASTERUM : 134-1)’의 초동(발매 후 일주일 간 판매량)이 56만장을 기록하며 ‘하프 밀리언’이 됐다. 인기 아이돌 그룹도 뚫기 힘든 멜론 ‘톱100’에 진입했다. 이들의 유튜브 구독자수는 61만명을 넘겼다.

심지어 데뷔 약 1년 만인 지난 9일엔 MBC TV ‘쇼! 음악중심’에선 ‘아스테룸 : 134-1’ 타이틀곡 ‘웨이 포 러브(WAY 4 LUV)’로 버추얼 아이돌 그룹 최초로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다. 최근 국내 최대 음원플랫폼 멜론 톱100 1위를 차지한 비비의 ‘밤양갱’,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을 뚫은 걸그룹 ‘르세라핌’의 ‘이지(EASY)’를 제쳤다. 음방 현장에선 팬덤 ‘플리’가 응원법으로 이들을 응원했다.

이들의 인기는 오프라인으로 확장하고 있다. 첫 번째 팬 콘서트 ‘헬로, 아스테룸(Hello, Asterum!)'(4월 13~1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팬클럽 선예매가 지난 19일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진행했는데 예매 시작과 동시에 7만 명이 넘는 팬들이 동시 접속을 하며 10분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플레이브는 MBC 영상미술국 시각특수효과(VFX)팀에 약 20년간 몸 담았던 이성구 대표가 주축이 된 사내 벤처 그룹 ‘블래스트’가 만들었다. 예준, 노아, 밤비, 은호, 하민 등으로 구성됐는데 인공지능(AI) 가수는 아니다. 멤버들 본체가 따로 있는데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가 2월26일 서울 마포구 MBC신사옥 골든마우스홀에서 열린 두 번째 미니앨범 '아스테룸 : 134-1(ASTERUM : 134-1)' 쇼케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블래스트 제공) 2024.03.21.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 버추얼 그룹 플레이브가 2월26일 서울 마포구 MBC신사옥 골든마우스홀에서 열린 두 번째 미니앨범 ‘아스테룸 : 134-1(ASTERUM : 134-1)’ 쇼케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블래스트 제공) 2024.03.21.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을 형상화한 2D 애니메이션 캐릭터만 화면에 등장시킨다. 콘서트도 이 같은 형식으로 치러진다. 앞서 지난해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MBC ‘아이돌 라디오 콘서트’에서도 플레이브는 대형 전광판 속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플리는 열렬히 응원했다. 당시 플리는 5000명가량으로 추산됐다.

플레이브는 1998년 영국에서 결성된 ‘고릴라즈(Gorillaz)’를 떠올리게 한다. 고릴라즈는 1990년대 ‘오아시스’와 함께 브릿팝의 부흥기를 이끈 ‘블러’의 프런트맨인 알반과 만화가 제이미 휴렛이 만든 가상의 4인조 혼성 수퍼밴드다.

푸른색 머리카락의 바짝 마른 보컬로 키보드까지 맡은 2D, 실제로 밴드를 조정하는 괴팍한 베이시스트 머독, 덩치 큰 드러머 러셀, 보컬과 기타를 맡은 오사카 출신의 소녀 누들로 구성된 가상의 이 밴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버추얼 밴드’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고릴라즈는 알반을 비롯 본체로 오프라인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 고릴라즈. (사진 = 워너뮤직 제공) 2024.03.21.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 고릴라즈. (사진 = 워너뮤직 제공) 2024.03.21. *재판매 및 DB 금지

멤버들을 철저하게 가리고 있음에도 플레이브가 인기 급상승 중인 이유는 캐릭터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휴머니즘이다.

플레이브는 멤버 모두가 작사·작곡·안무 그리고 프로듀싱까지 참여하는 ‘자체 제작 아이돌’을 표방한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실력으로 승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아이돌 음악에서 유행하는 ‘이지 리스닝’ 장르를 내세워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고 있기도 하다.

플리는 “선입견 있었는데 걷어졌다. 저 캐릭터들 뒤에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들을 생각하니 뭉클하다. 노래도 너무 좋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최근 부익부빈익빈이 가속화되면서 K팝 업계에 점차 사라지고 있는 ‘고난 서사’가 플레이브에 부여됐다고 보는 업계 관계자들도 많다.

“반복되는 계절의 중간에 있어 / 그토록 바랬던(바랐던) 어둠 속의 빛을 찾고 말았어 / 너에게로 달려가는 이 시공간을 넘어서 / 닿은 이곳은 여섯 번째 / 여름의 시작이었단 걸 / 꿈꿨어”(‘여섯 번째 여름’ 中) 같은 가사엔 버추얼 캐릭터의 상황 설정에서 극에 달할 수 있는 아련함도 배어 있다.

버추얼 아이돌을 준비 중인 업계 관계자는 “플레이브는 버추얼이라 받을 수 있는 편견과 조롱을 서정적으로 승화하면서 오히려 팬덤을 결집시킨 사례”라고 평했다.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플레이브의 인기 요인에 대해 “K팝 특유의 경쟁구도, 자본집약적 성격에서 벗어나 아티스트와 콘텐츠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우선 꼽았다.

[*] 사이버가수 아담. (사진 = 유튜브 캡처) 2024.03.21.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 사이버가수 아담. (사진 = 유튜브 캡처) 2024.03.21. *재판매 및 DB 금지

버추얼 아이돌 인기 요인은 K판 산업의 고도화

전 세계에서 버추얼 인플루언서 원조는 1996년 일본에서 탄생한 사이버 가수 다테 교코를 꼽는다. 비교적 한국도 빨랐다. 사이버 가수 아담이 물꼬를 텄다. 1998년 20만장이 팔린 데뷔 음반 타이틀곡 ‘세상엔 없는 사랑’으로 주목 받았다.

또 당시 아담은 레몬 음료 CF에도 출연했고 한 패션 브랜드는 그가 입은 옷에 자사 로고를 새기기도 했다. “인간이 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라는 비장한 세계관이 설정돼 있던 아담을 소재로 한 소설도 나왔다.

아담의 활약에 힘 입어 2세대 같은 해에 사이버 여성 가수 류시아, 사이다 등도 등장했다. 특히 류시아는 당시 국민회의 서울시장후보로 나온 고건 전 국무총리와 인터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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