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아이디어로 시작된 걸그룹 도전
아이돌·트로트 양분화 K팝계 신선한 바람
4개월 준비 끝 데뷔…향후 활동 이어져
그룹 골든걸스가 지난 1일 KBS 2TV 음악프로그램 ‘뮤직뱅크’에서 데뷔 무대를 펼쳤다. (사진=KBS 2TV 제공) 2023.12.09.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추승현 = KBS 2TV 예능물 ‘골든걸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혹자는 여성 예능 열풍으로 보기도 하고, 흔한 가수 데뷔 도전기 포맷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어느 시선으로 바라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능으로만 끝내기에는 가수 인순이(66)·박미경(58)·이은미(57)·신효범(57)의 무대는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애초에 그룹 골든걸스는 KBS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이 80년대 솔풀(soulful)한 보컬들로 이뤄진 걸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직접 KBS를 찾았다. 캐스팅도 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촬영을 시작했고 성공적으로 데뷔까지 치렀다.
화제성은 자연스러웠다. 가요계 베테랑들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에 버벅이는 모습은 과연 신선했다. 디바들의 관계성, 박진영이 자기주장 강한 누나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모습 등 예능적 요소가 더해지며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를 찍었다. 이는 올해 KBS 금요일 심야 예능 중 최고 시청률이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12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 순위에서는 2위까지 올랐다.
가수 박진영이 그룹 골든걸스 디렉팅을 하는 모습. (사진=KBS 2TV ‘골든걸스’ 제공) 2023.12.09.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화제성에 비해 데뷔곡 ‘원 라스트 타임(One Last Time)’의 반응은 미미한 편이다. 지난 1일 발매 직후 멜론 음원차트 핫100에 올랐으나 오래 머무르진 못했다. 그러나 음원차트 지분이 팬덤이 탄탄한 아이돌, 트로트 가수들에게 넘어간 지 오래니 성공의 지표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이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아이돌이 아니었다. 박진영은 골든걸스를 론칭하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한국 최초의 그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작발표회에서 K팝 가요계가 아이돌과 트로트 시장으로만 양분화되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5세대 걸그룹’이라는 의미에서 아이돌 활동과 견주어지지만, 음악 스타일과 방향성은 아이돌이 초점이 아니다. 앞서 트와이스, 아이브, 뉴진스 등 K팝 대표 걸그룹들의 무대를 커버하면서 관심 이끌었기에, ‘원 라스트 타임’이 아쉽다는 평도 따른다. 하지만 골든걸스 기획은 네 멤버를 요즘 스타일에 껴 맞추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이들의 도전은 유의미하다. 평균 경력 38년의 네 디바는 하모니를 맞추기 위해 성량을 줄이고, 하나처럼 보이기 위해 군무를 춘다. 경력은 많아도 걸그룹 경험은 없어 피나는 연습 끝에 이룬 성과다. 이들은 지난 8월부터 팀을 결성해 합숙까지 했다. 생경한 도전 앞에서 의심했던 멤버들도 데뷔 쇼케이스를 마치고 의미를 되새겼다. 이은미는 “신선함이 저를 생동감 있게 만들었듯이 제가 여러분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크다”고 했다.
그룹 골든걸스가 숙소에서 신인상 각오를 다지는 모습. (사진=KBS 2TV ‘골든걸스’ 제공) 2023.12.09.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데뷔가 끝은 아니다. 12부작인 이 프로그램의 5회에서 데뷔 쇼케이스가 공개됐다. 박진영은 지난 8일 방송된 6회에서 향후 활동 방향을 공개했다. 이른 바 ‘대세’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박진영은 골든걸스의 팬덤을 확장하기 위해 취약층을 먼저 공략하고, 기본 팬을 강화한 다음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10~20대가 주로 시청하는 음악방송 KBS 2TV ‘뮤직뱅크’에 출연하고, 후배들과 댄스 챌린지까지 했다. 코엑스에서 게릴라 콘서트와 팬사인회를 진행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7일에는 ‘2023 뮤직뱅크 글로벌 페스티벌’ 참석 차 일본으로 출국했다.
박진영의 청사진은 대세가 된 골드걸스의 콘서트가 매진되는 것이다. 골든걸스는 가요시상식 신인상, 빌보드 차트 진입 같은 원대한 꿈도 있다.
가요계 관계자는 “박진영의 도전이 대단하다”고 봤다. “베테랑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성적 한계가 있다.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처럼 레전드를 표현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들의 활용법이 색다르다”며 “골든걸스 멤버들은 이미 충분히 실력이 입증됐기 때문에 박진영이 디렉팅을 하면서도 가르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 분위기라 새롭다. 프로들끼리 모였기 때문에 일방적이기 보다 주고받는 게 잘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어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도전인 건 분명하다. 골든걸스가 K팝이 갖고 있던 음악적 갈증을 해소해줬다”고 짚었다.
◎아이돌 유니버스 chuc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