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겔과 밴드: 독자적 서사의 인디 씬

by Idol Univ

[*] 밴드 ‘실리카겔(Silica Gel)’은 K팝 시대에 써진 ‘밴드 영웅담’의 주인공이 아니다. 국내 밴드 신(scene)이 독자적인 서사를 갖고 있음을 증거한다.

최근 실리카겔이 대형 K팝 시상식 ‘멜론 뮤직 어워드 2023(MMA 2023)’에서 ‘베스트 뮤직 스타일’을 받은 건 그 징표의 근거다. 더 특기할 만한 지점은 K팝 아이돌의 화려한 무대로 가득찼던 이 시상식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국내 첫 K팝 아레나 공연장’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자신들의 대표곡 ‘틱 택 톡(Tik Tak Tok)’과 ‘노 페인(NO PAIN)’을 선보일 때, 실리카겔 네 멤버의 합주는 일사불란한 K팝 아이돌 군무 못지 않은 역동성과 정교함을 자랑했다.

김한주의 그르렁거리는 보컬, 김춘추의 영리한 기타, 최웅희의 믿음직한 베이스, 김건재의 강철 같은 드럼의 합은 K팝 세계 속에서 표류하지 않고, 질주하는 청춘의 ‘최단 거리’를 보여주듯 직진했다.

이 무대만으로도 실리카겔의 진가는 확인되지만, 그 깊이를 더 체험하려면 단독 콘서트를 가야 한다. 지난달 10~1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파워 앙드레(POWER ANDRE) 99’는 그 증험(證驗)의 현장이었다.

‘온 블랙(On Black)’을 시작으로 이달 중 발매 예정인 정규 2집 ‘파워 앙드레 99’의 트랙리스트를 세트리스트로 바꿔 순서대로 모두 들려주는 이례적 전경이 펼쳐졌다. 특히 이번 2집엔 현재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선 찾아보기 힘든 물량인 18곡이 실린다. 타이틀곡 중 하나인 ‘Apex’의 폭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무대 가운데 자리한 직육면체 형상의 탑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눈 같은 조명들은 쉴 새 없이 희번득거렸다.

그런데 압도적인 에너지에도 이 콘서트에서 처음 공개된 곡들은 의미를 확정하지 않았다. 덕분에 청자들은 현장에서 자유롭게 해석하며 즐겼다. 이 과정 자체가 서사화되면서 실리카겔 멤버들 그리고 팬들 모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밴드의 언어를 듣는 즉시 청자들이 ‘재서술’하는 방식은 창조적인 해석의 하나다.

과감하게 추측하면, 실리카겔의 정규 2집은 스튜디오가 아닌 이 콘서트 현장에서 완성됐다. 팬들의 열기와 피드백이 앨범의 포장이 돼 ‘과연 이것이 앨범의 완성일까’라는 멤버들의 의심에 확신을 줬을 것이다.

실리카겔은 ‘새롭고 용감한 사운드를 만드는 밴드’라는 수식을 앞세운다. 그 불굴의 용기는 자기 해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잠재된 가능성을 더 끌어내는 건 연대와 공존에 있다는 걸 실리카겔은 라이브 현장에서 입증한다. 밴드로는 이례적으로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팬덤을 무섭게 불리고 있는 이 팀은 무엇보다 생존 투쟁 앞에서 절규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탐닉하는 사운드와 노랫말을 지닌 실리카겔은 연약한 우리를 잠시나마 무장하게 만든다. 정규 2집은 이들에게나 팬들에게나 분명 분기점이다.
◎아이돌 유니버스 realpape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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