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리스트 수민’으로서 더 다가가고 싶어”
새 EP ‘시치미’ 공개…12월 日서도 발매
엄정화·선우정아 피처링한 ‘옷장’·’인간극장’ 더블타이틀곡
[*]이재훈 = 수민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희귀한 사례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맵시가 근사하고, 프로듀서로서 원근법이 다채롭다.
솔로 음반 ‘유어 홈(Your Home)’은 백화제방의 세련미가 무엇인지 꽃 피워냈고, 프로듀서 슬롬과 합작한 앨범 ‘미니시리즈(MINISERIES)’는 단편극의 상상력을 만개했다. 수민이 작업한,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2집 ‘윙스’에 실린 지민의 솔로곡 ‘라이(Lie)’는 이 팀에 비장한 서사를 더했다.
수민이는 새 EP ‘시치미’로 명실상부 팔방미인이 됐다. 보컬리스트라는 명함이 더 깊게 새겨졌다. 유연하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음색엔 그간 국내 대중음악계가 가보지 못한 영역이 아른거린다.
사실 수민이 그간 발표한 노래들은 ‘곡선의 미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려하고 은유적이었다. 그 돌고 도는 기하학적 원형의 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열광했다. 이번 ‘시치미’에선 그 길을 좀 덜 돌아가면서 공감대의 폭을 넓혔다. 수민이 만든 음악이니, 마냥 쉽지는 않지만 이전보다 좀 더 대중적인 건 사실이다.
수민이 곡선의 미학에 녹여낸 ‘가감 없음’ 덕분이다. 안정기로 접어든 그녀의 삶이 자연스레 반영된 음반 때문이기도 하다. 음악적 변화의 당위성을 예술적 미(美)와 숭고함으로 욕망하는 수민 특유의 수사학이 이번엔 비행기처럼 구름 사이로 높이 떴다, 안정적으로 온기를 갖고 연착륙했다.
‘시치미’는 이렇게 2023년이 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올해의 명반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수민은 역작 앞에서도 그렇지 않다고 ‘시치미’를 뗐다. 다음은 최근 서울 효창동 자택에서 만나 수민과 나눈 일문일답.
-앨범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아요. 우여곡절 끝에 발매하신 앨범인데 소회가 궁금합니다.
“엄청 시원섭섭해요. 애착이 컸던 앨범이에요. 자식이 독립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좋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인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 복잡해요.”
-이달 초 ‘시치미’의 ‘리스닝 세션’에서 작업 중 (음원이 담긴) 하드를 날리셨다고 털어놓으셨잖아요. 예술이라는 게 처음 창작할 당시 분위기, 느낌의 아우라를 복제하기 힘들어서 소환해내기엔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
“사실 그때 고백 못한 게 하나 더 있었는데, 하드가 한 번 더 날라갔었어요. 근네 제가 ENTP거든요. 불안정한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빨리 대책을 마련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죠. 처음 하드가 날라갔을 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두 번째 때는 ‘뭐 어떻게 하겠어.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생각했어요. 다행히 마스터링에 착수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마스터에 참여했던 나잠수 엔지니어분께 부탁을 드려서 공유받고 그걸 뼈대로 해 제 음악을 제가 카피해서 재구성을 했죠. 질을 더 높이기 위해 디테일들을 다시 만들어 나갔습니다. 씁쓸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좋았다’인 것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이번 음반의 믹싱과 마스터링이 너무 좋아요. 질감이 입체적이면서 사운드가 깔끔합니다.
“믹싱은 제가 직접 집행했고 마스터링은 나잠수 엔지니어분께서 해주셨어요. 이번 앨범에선 저의 친절한 모습과 불친절한 모습의 어떤 경계를 좀 부드럽게 만들고 싶었어요. 자극적인 부분들은 조금 더 도드라지게 표현했는데, 진짜 집중했던 부분은 사람들한테 편하게 들릴 수 있는 가사 작법 전체를 다 고려했던 것 같아요. 믹싱은 보컬이 더 잘 들릴 수 있는 방식을 굉장히 고민했죠. 제가 프로듀서 룰도 있어서 그런지 자꾸 저를 프로듀싱하는 습관이 있어요. 프로덕션 위주로 가는 습관이 있어서 보컬로서 녹음을 하지만 프로덕션이 유난히 부각된 음악들을 주로 해왔었다고 느껴지거든요. 근데 이번 앨범에서는 ‘보컬리스트 수민’으로서 조금 더 친근감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에 대해 고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