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 ‘가까이 하고 싶은 그대’ 등 다섯 곡 재해석
예술적 감각 뛰어났던 故 고경민 아베마컬쳐 대표 제안
“서른 살 1월에 찾아온 공황 이겨내고 낸 앨범”
[*] 쏠. (사진 = 아메바컬쳐 제공) 2023.10.01.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이재훈 에디터 = 사람은 이름을 타고난다. 본명이 소리인 가수 쏠(30·SOLE·이소리)이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본능으로 노래를 밀어붙인다. 노래를 듣는 이들로부터 감탄의 충동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최근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어 러브 슈프림(A Love Supreme)’에 실린 다섯 곡이 새롭게 들리는 이유다. 2000년대 국내 인디 신에 새 바람을 일으킨 레게 솔 밴드 ‘김반장과 윈디시티’의 ‘러브 슈프림(Love Supreme)’, 국내 초창기 시티팝으로 재발굴된 나미의 ‘가까이 하고 싶은 그대’, 1990년대 발라드의 새 얼굴인 듀오 ‘패닉’의 ‘기다리다’, 마니아들이 추종하는 모던록 밴드 ‘넬’의 ‘마음을 잃다’, 시대를 풍미한 곡으로 절창들이 즐겨 부른 김건모 ‘아름다운 이별’ 등은 저마다 각자 개성이 강한 곡인데 쏠의 보컬과 만나 다른 결의 생명력을 얻고 리메이크의 불가피함을 받아들이게 한다.
최근 쏠의 온스테이지 무대에 대해 글을 쓴 네이버 문화재단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인 유지성 프리랜서 에디터는 이번 리메이크 앨범에 대해 “곡의 새로운 주인이 되려는 의지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목소리지만 에너지를 안으로 채우듯 부드럽게 노래한다. 단단하고 꽉 찬 발성과 그 틈틈이 어딘가 흐트러진 듯한 자연스러운 보컬”이라고 들었다. 다음은 최근 서울 논현동 아메바컬쳐에서 만난 쏠과 나눈 일문일답.
-가을에 딱 듣기 좋은 앨범이에요. 이때를 염두에 두고 앨범을 발매한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조금 더 빨리 나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편곡 작업이 길어졌어요.”
-리메이크의 중요한 점은 편곡이잖아요.
“처음엔 ‘더 좋게 만들어야 되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원곡들 자체가 명곡이니까 그런 식의 접근은 잘못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밴드 친구들이랑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이 곡들을 표현해 보자’라고 생각했고, 그냥 저희가 가지고 있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면서 작업이 술술술 풀렸죠.”
-앨범 제목이기도 한 김반장과 윈디시티의 ‘러브 슈프림(Love Supreme)’ 리메이크곡을 첫 트랙으로 배치한 게 너무 좋았어요. 솔(Soul)풀한 곡이라 쏠 씨와 잘 어울립니다.
“저희 베이시스트 정용훈 오빠가 제가 꼭 불러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해준 곡이에요. 이 곡이 실린 음반(‘러브 레코드(Love Record)’)이 명반이라 다 리메이크하고 싶었는데 특히 이 ‘러브 슈프림’의 솔직한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내가 예쁘다거나 / 돈이 많은 그런 여잔 아니지만’이라는 부분이 좋았는데, ‘예전에도 이런 가사를 쓰시는 분들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보다 더 솔직한 면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도 있었고요. 원년 멤버(기타 윤갑열·피커션 정상권) 선배님들이 참여해주셔서 더 좋았어요.”
-패닉의 ‘기다리다’가 포함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곡의 잔잔한 느낌을 제가 표현하고 싶었어요. 원곡이 기타 한대랑 코러스 중심으로 들어가 있는데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고요. 그래서 아카펠라 코러스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 썼어요.”
-김건모 씨의 ‘아름다운 이별’은 제일 마지막에 선택된 곡이라고요.
“개인적으로 다섯 곡 중 제일 아쉬움이 남아요. 왜냐면 이별의 절절한 느낌이 강한 곡인데 그 느낌이 잘 표현이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편곡을 할 때 리듬을 넣고 드럼도 넣고 하면서 조금은 더 가벼운 이별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저는 쏠 씨 버전도 더 슬펐어요. 덤덤한 표현이 더 슬플 때가 있잖아요.
[*] 쏠. (사진 = 아메바컬쳐 제공) 2023.10.01.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감사합니다. 다섯 곡이 모두 개성이 엄청나게 강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쏠 씨가 아니었으면, 이 다섯 곡이 한 앨범에 들어가기는 힘들었을 거 같아요. 특히 넬 ‘마음을 잃다’도 포함돼 있는데 넬은 리메이크 승인을 잘 해주지 않은 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음을 잃다’는 제가 진짜 어렸을 때 많이 들었었던 곡이거든요. 노래방에서도 많이 불렀던 곡이라 꼭 리메이크를 하고 싶었어요. 일단 원곡자한테 승인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커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은 거 같아요.
“아빠, 엄마가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어렸을 때부터 아빠 차 안에서 다양한 음악을 엄청 많이 들었죠. 또 중학교 때 아는 언니가 분홍색 MP3 플레이어를 저한테 줬는데, 그 안에 다양한 팝, 제이팝, 우리나라 노래들이 들어 있었어요. 제가 몰랐던 곡이 대부분이라 충격적이었죠. 그걸 들고 다니면서 엄청 들었어요. 지금은 연락이 안 되는 친구의 언니였는데 그걸 왜 제가 줬는지는 모르겠어요. 하하.”
-리메이크 앨범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갖고 계셨던 거예요?
“리메이크 앨범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났었던 건 나얼 선배님의 ‘귀로'(원곡 박선주)였어요. 너무 좋아했던 곡인데 리메이크인 줄 처음엔 몰랐어요. 그걸 알게 된 뒤 ‘언젠가는 리메이크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그러다 고(故) 고경민 아메바컬쳐 대표님이 작년에 ‘리메이크 앨범을 한번 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고 발매를 하게 된 거죠.”
-리메이크 앨범은 가수에게 어떤 도움이 있나요.
“제가 다양한 장르를 듣긴 했지만 직접 나서서 부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앨범을 작업 하면서 밴드 친구들이랑 ‘우리가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죠. 원래 저희가 좋아하지 않던 장르도 포함이 돼 있으니까 그런 풍의 분위기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더 고민해야 했거든요. 장르에 대해 유연해지기도 했고, 음악이라는 게 이렇게 아우를 수 있는 범위가 엄청 넓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다음 앨범 작업에도 영향을 당연히 끼쳤겠네요.
“다음 앨범은 쪽은 90년대부터 2000년대 R&B를 아우르는 앨범을 내고 싶어요. 특정 콘셉트를 정해서 한번 내고 싶어요.”
-아시다시피 국내 대중음악 시장이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어 R&B 같은 다른 장르를 알릴 기회가 적은 거 같아요. 쏠 씨 같은 분들이 있어 명맥이 이어지는 거 같아요. 90년대 같은 경우엔 그래도 균형이 있었는데요. 현재 솔 기반의 여성 솔로 가수로서 여러 고민을 안고 있을 거 같아요.
“제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이 그거예요. 늙어서까지 음악을 하고 싶고 무대에 오르고 싶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열광하기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대중성 측면에서) 부족한 면이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대중들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생각한 노래를 한번 내고,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한번 내고. 그렇게 번갈아가며 음악을 내는 방법을 시도 중이에요. 솔직히 아직까지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주변 친구들과 조그맣게라도 공연을 계속 하려고 하는 이유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걸 위해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쏠. (사진 = 아메바컬쳐 제공) 2023.10.01. photo *재판매 및 DB 금지
-지금까지 행보가 그런 고민에 수렴되네요. MBC TV ‘놀면 뭐하니?’로 결성된 ‘WSG워너비’ 멤버로 활약한 것도 그렇고, 이번 리메이크 앨범도 그렇고요.
“그런 부분에서 아메바컬쳐에 감사해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힘든 부분이 있는데 그걸 잘 조정해주시니까요.”
-‘다이나믹 듀오'(개코·최자) 등이 속한 아메바 컬쳐는 메이저 신(scene)에서 드물게 인디 신 감성도 가지고 가는 회사예요. 절대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고경민 대표님이 예술적인 측면에 대해 굉장한 깊이를 갖고 계신 분이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제가 많이 말했었는데 그 부분을 들어주시고, 엄청 많은 도움을 주셨죠.”
-이번 리메이크 앨범도 쏠 씨의 고민을 반영해 고 대표님이 생각하신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이 앨범 작업을 하면서 노래하는 건 너무 좋았는데 너무 후회도 되는 거예요. 원래도 좋은 곡들을 ‘왜 편곡한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에요. 부담도 크고 너무 힘들었었어요. 근데 정말 제 음악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앨범이 됐어요. 여러모로 저에게 의미가 깊은 앨범이 돼버렸어요.”
-서른이 되면서 좀 달라진 게 있어요.
“저는 좀 있어요. 서른 되기 전에는 ‘미래지향적’으로 살았거든요. 제 미래가 굉장히 궁금해서 미래를 위해서만 살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열심히 살았죠. 작업도 열심히 하고 노는 것도 진짜 열심히 놀고. 그래서 쉬는 날이 없었어요. 하루라도 무엇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거든요. 그런데 올해 초 서른이 되는 시점에 많이 바뀌었어요. 이 순간을 더 즐기려고 노력하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열심히 살았지만 지금을 누리지 못했던 걸 깨달은 거네요.
“자신감이 굉장히 부족했거든요. 무엇을 해도 ‘왜 이렇게 했지’라는 생각만 들고요. 그게 너무 안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금을 살면서 조금 더 만족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싶었죠. 그런 부분이 제겐 큰 변화예요.”
-그런 변화의 이유가 있었나요?
“딱 서른 살이 된 1월2일에 공황이 찾아왔어요. 무슨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 친구들이랑 차를 타고 바닷가에 놀러가고 있는데 그런 증상이 나타난 거예요. 공황과 관련 전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이라 당황했는데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니 그걸 애써 모른 척해왔던 거더라고요. 힘들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계속 그냥 저를 밀어붙인 거죠. 결국 그게 쌓여 터진 거고요. 처음엔 억울했어요.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이후 집에만 있으면서 ‘내가 쉬는 방법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 생각이 굉장한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딱 서른살 1월달에 그런 걸 겪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지금은 극복해서 괜찮아요. 잘 이겨내고 좋아요. 덕분에 좋은 음반도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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