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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새 EP ‘헤븐’ 호평…타이틀곡 ‘세이렌’ 등 확실한 표현력 돋보여
18일 라이브 하우스서 단독 공연
[*] 이바다. 2023.02.15. (사진 = EM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재훈 에디터 = 무뎌지지 않는 양날의 검을 잡거나, 외줄타기를 하거나. 아니, 외줄을 타며 동시에 양날의 검을 휘두르는 격이다. R&B 솔 싱어송라이터 이바다의 노래는 그렇게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격랑의 감정에 휘말리게 하며 매혹한다.
특히 이바다가 최근 발매한 미니앨범 ‘헤븐(Heaven)'(금기)은 잔혹한 감정은 매혹이며, 위험한 것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걸 진리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번 앨범 작업 내내 이바다의 마음은 성할 날이 없었다. 잔혹함과 위험을 앓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바다 본인이 더 건강해져서 감당 가능했다. 실제 이바다는 이제 건강한 삶과 벼랑 끝에 매달려야 하는 예술의 경계를 나눌 수 있는 성숙함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 때 조향(調香)의 취미였던 이바다는 이제 더 이상 향기를 만들지 않는데, 이미 그녀의 삶이 다채로운 향기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의 다섯 번째 트랙이자 마지막 트랙인 ‘다이빙(Diving)’은 침잠하며 이번 음반을 정리하는 동시에 다음 음반을 예고하며 솟구친다. 그건 아일랜드 실존주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떠올리게 한다. ‘피네간의 경야’는 마지막 단어가 ‘더'(The)로 끝나고, 책의 첫 문장은 ‘리버 런(Riverrun)’으로 시작한다. 처음과 끝이 순환하는 맥락이다. 그건 순환하는 삶의 숭고함에 대한 비유다. 이 같은 작법을 일련의 음반 작업에서 시도하는 이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푸른빛 바다의 색깔은 여전하지만 채도와 명도가 점점 낮아져 한없이 깊고 심오한 심해의 바다로 나아가는 그녀의 ‘그라데이션(gradation) 행보’는 위험한 삶에서 매혹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겐 명화(名畫)와 같다.
다음은 최근 서울 용산구 EMA에서 만나 이바다와 나눈 일문일답.
-음반은 2019년 3월 발매한 첫 번째 정규 앨범 ‘디 오션(THE OCEAN)’이후 처음이에요. OST 등의 작업이 아닌 바다 씨의 싱글을 내는 건 작년 3월 ‘배경음악’ 이후 약 11개월 만입니다. 음반 발매가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어요.
“1년 정도 아팠어요. 코로나에 걸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무엇보다 저의 색깔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어서 작업을 신중하게 하면서 늦어졌어요. 그리고 저를 표현하는데 집중했죠.”
-어떤 표현에 집중했나요?
“저는 여러가지 면을 가진 사람인데, 말로는 표현을 잘 못해요. 서투른 부분이 있어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음악적인 부분에선 ‘날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속으로, 즉 에고(ego) 안에서 생각하는 부분들이 직관적으로 표현이 됐으면 했어요. 음악이 ‘무뎌지지 않는 칼’ 같은 부분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이중적인 부분도 표현하고자 했죠. 모두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전 흥미롭거든요. 저 역시 극명하게 갈리는 두 부분을 동시에 갖고 있기도 하고요. 각자 여리고 상처가 있는데 그게 매력적인 날처럼 느껴져요. 위험한 매력이 엄청 무기처럼 보이는 거죠. 그런 부분이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이번 앨범 작업이 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번 음반이 예리하고 날이 서 있기는 하지만 개인의 상처를 후벼파지는 않아서 좋았어요. 오히려 그런 감정이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위로를 줬습니다. 이와 함께 사운드적으로도 업그레이드가 많이 된 거 같아요.
[*] 이바다. 2023.02.15. (사진 = EM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전 음반들은 대부분 어쿠스틱 기반이었어요. ‘야몽음인’은 트랩이지만 그 역시 기타는 어쿠스틱을 사용했죠. 사실 제가 좋아하는 건 베이스 같은 리듬 악기예요. 예전부터 베이스 사운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번엔 더욱 베이스 사운드로 중심을 잡고 저다운,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린데 극단적인 표현을 하기에 베이스 사운드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이번 음반은 뇌쇄적인 콘셉트를 내세웠습니다. 금기사항을 어기고 싶고, 그 행위에 희열을 느끼는 인간의 양면성과 아슬아슬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노래했다고 하셨는데 어디서 모티브를 얻은 건가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잖아요. 특히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성인용 SF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러브, 데스+로봇’ 시즌3에서 ‘히바로'(Jibaro)(감독·애니메이터 알베르토 미엘고)를 인상 깊게 봤어요. 그 느낌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가사뿐만 아니라 사운드적으로도요. 뇌쇄적이지만 유동적인 캐릭터들이 나와요. 날이 서 있는 부분도 있고, 망가적인 모습도 있어요. 그런 모습들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노래를 영상 보듯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캐릭터의 어떤 점이 그렇게 와 닿았습니까? (‘히바로’는 이바다가 이번 음반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세이렌(Siren)’과 마찬가지로 소리로 인간을 유혹해 바다에 빠지게 하는 님프(자연의 정령) ‘세이렌’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기사(騎士)만 세이렌의 저주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이 결국 파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세이렌이 자신의 저주에도 죽지 않는 기사를 보고 신기해하며 사랑에 빠지죠. 근데 세이렌의 피부는 금붙이거든요. 기사는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라 그 금을 욕심 낸 거예요. 결국 기사는 세이렌을 죽이고 몸에 있는 걸 다 뜯어가죠. 세이렌은 강에 떨어지고 그 강은 붉은 피로 다 물드는데 기사는 청각을 회복해요. 그리고 부활한 세이렌의 울부짖음을 듣고 죽죠. 그런 캐릭터들의 망가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런 걸 느끼고 만든 제 노래 ‘세이렌’은 곡의 구성이 계속 바뀌어요. 1절은 베이스 반주로만 부르는데 사실 그 부분이 부담스럽긴 했어요. 공연 때는 그런 형식으로 많이 노래했지만 그렇게 음원으로 내는 경우는 많이 없어 걱정을 했거든요. 주변에서 좋다고 해서 자신감을 가졌어요. 2부는 R&B 구성인데 구간마다 악기가 빛나요. 그렇게 하다보니 부분부분 표현이 더 확실하게 나왔죠. 가사 말고도 음악적으로도 ‘세이렌’이 더 표현되길 바랐어요.”
-그래서인지 ‘세이렌’을 듣는 내내 밀물, 썰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금기’는 국내 대중음악에선 잘 다루지 않는 코드입니다.
“전 금기가 판타지, 꿈,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안 좋게 들리기보다 매력적으로 들려요. 양날의 검처럼 느껴지는 거죠. 꿈 꾸거나 욕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수록곡 ‘비너스(Venus)’와 ‘선악과’에서 공통적인 메시지를 찾는다면, 끊어낼 수 없는 관계라고 봐요. 두 곡 다 아슬아슬해서 듣는 동안 외줄타기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단 ‘비너스’는 제가 EAM에 들어가자마자 음원으로 내려고 했던 곡이었어요. 그런데 가창이 너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이 노래는 원테이크로 불러야 매력이 있거든요. 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몰입을 한 채, 정박에 붙지 않는 리듬들을 타면서 불러야 했는데 당시엔 그게 잘 안 됐어요. ‘비너스’는 이미지에 대한 곡이기도 해요. 사람들은 타인을 처음 만났을 때 상대방에 대해 여러 상상을 하잖아요. 그건 판타지라고 생각해요.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닌,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판타지가 되는 거죠. ‘비너스’는 그런 타자화에 대해 ‘정박이 아닌 리듬’으로도 표현하고자 한 노래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을 레이백(Layback·미는 음)으로 불러요. 작업이 즐거웠던 곡이기도 해요.”
[*] 이바다. 2023.02.15. (사진 = EM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입 베어물면 더 달콤해져”라고 노래하는 ‘선악과’는 유혹적이에요.
“‘금기’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표현한 노래예요. 작업하면서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찾아봤거든요. (아담과 하와를 꾀어 원죄를 짓게 하는) ‘뱀이 돼보자’라는 상상을 하면서 쓴 곡입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노래가 이전에 많았다면, 이번엔 뱀 안에 들어가 뱀이 돼서 말을 거는 것처럼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 안에서 연기를 한 거죠.”
-또 다른 수록곡 ‘슬립’의 창법도 독특하면서 매력적이었요.
“가사를 씹듯이 노래하려고 했고 가사를 흘려버리듯이 노래하려고도 했어요. 노래 주인공의 마음이 망가져 버렸는데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았거든요. 1절에선 ‘난 괜찮아’라며 망가진 상황에서도 말을 하려고 하고, 2절에선 아예 힘이 빠져 버린 느낌으로 ‘이미 멸망하고 있으니’라고 노래하죠. 절망을 앓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몸에 상철 내고 / 또 그 상처를 도려내서 / 네게 난 줘’라고 노래하는 거죠. 창법으로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다이빙’이 마지막 트랙에 배치된 이유가 있나요?
“모든 게 다 끝난 것일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어서 끝에 배치했어요. 앨범에 실린 트랙마다 다른 색깔의 금기를 표현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다른 색깔의 금기를 표현하고 싶었던 트랙이에요. 제목 ‘다이빙’은 사랑에 빠지는 ‘다이빙’이 될 수 있고, 자신이 떨어져서 없어지는 ‘다이빙’일 수도 있어요. 빠지는 것 자체도 금기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너의 동공은 태양’ 등 곡의 가사는 예뻐요. 그런데 그 사람을 내 세상으로 만드는 것도 금기라고 표현하고 싶었죠. 끝에는 끝인 것처럼 피아노 솔로를 반주로 허밍을 하잖아요. 그것조차도 철저하게 계산을 하면서 한 작업이에요. 피아노는 휘몰아쳐서도 안 됐고 차분하게 연주해서도 안 됐죠. 마이너, 메이저를 계속 오가며 연주를 해야 해서 피아노 치는 친구(이석원)도 초반엔 힘들어 했어요. 그런 부분으로 금기를 표현하고 싶었죠. 또 마지막 트랙이지만, 다음 앨범에서 또 다른 음악으로 시작이 된다는 예고도 담고 싶었습니다.”
-지난 코로나19는 수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줬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다 씨에게 정말 안타까울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커리어 면에서 한창 치고 나갈 수 있는 타이밍이었잖아요.
“일단 몸이 안 좋으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몸 관리, 체력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요. 물론 음악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고요. 사실 코로나 이전까지 쉬지 않고 달려와 ‘번 아웃’이 왔던 거 같아요. 쉬는 기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러면서도 아픈데 계속 노래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커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어요. 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해졌죠.”
-작년 말에 엠넷 ‘아티스탁 게임: 가수가 주식이 되는 서바이벌’에 출연했던 경험은 어땠습니까?
[*] 이바다. 2023.02.15. (사진 = EM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래 전 집 밖으로 잘 안 나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아티스탁 게임’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 좋았어요. 다른 아티스트들이랑 처음 만나서 같이 교류하는 게 너무 재밌었죠. 다 친해졌거든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영감을 얻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예전보다 더 밝고 더 건강해진 거 같아요. 특히 음악은 앓고 만든 게 확 느껴지는데 실제 바다 씨 삶은 그렇지 않았네요. 실제 삶의 방식과 예술 작업방식을 분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거 같아요. 그래서 삶도 음악도 더 건강해 보입니다.
“맞아요. 정신적으로도 더 좋아졌어요.(웃음)”
-이번 EP 발매를 기념해 오는 18일 오후 6시 노들섬 라이브 하우스에서 단독 공연도 여시죠.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4년 만에 관람객들과 마주하는 자리인데요.
“신곡을 편곡 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어요. 원하는 만큼의 직관적인 표현을 음악에 녹여낼 수 있게 노력했거든요. 전 공연에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압도감을 주는 음악’, 또 다른 한가지는 ‘매혹시키는 음악’이에요. 특히 매혹은 ‘슬픔의 감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동요되는 거니까요. 이 두 가지를 이번에 완벽하게 구현하고 싶어요. 물론 재지(Zazzy)한 부분도 있고 록적인 부분도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들도 더 확실히 들려드리고 싶어요.”
-예전에 조향 작업이 취미였잖아요. 요즘도 조향 작업을 많이 하나요?
“요새는 잘 안해요. 향수도 잘 안 뿌리고 다녀요.”
-그건 바다 씨 삶 자체에 향기가 나서 그런 거 아닌가요? 삶의 다양성을 아우른 듯한 매혹적인 향기가 나요.
“그렇다면 좋죠. 하하. 예전엔 작업을 할 때도, 하고 나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지금은 많은 분들과 같이 만들어가요. 음악작업 뿐 아니라 사진 작업, 뮤직비디오 작업 그리고 라이브 작업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신다는 걸 알죠. 그래서 매번 그랬든 작업에 모든 걸 쏟아붓지만 예전보다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렇게 삶에선 부드러운 표현이 많아졌죠. 하지만 음악에선 계속 더 날이 선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오아미 코리아 realpaper7@1.234.219.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