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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 손정빈 에디터 =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은 그 명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평범한 작품이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현실 인식은 찾아보기 힘들고, 사람과 사람 간 관계에 관한 통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만의 페이소스 또한 느낄 수 없다. 물론 역시 거장의 솜씨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대목은 있다. 원작 만화가 있다고는 하나 특기할 만한 사건 하나 없이도 40~45분 분량의 에피소드 9개를 끌고가는 극본이 놀랍고, 인물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로 감정을 담아내는 연출은 여전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이 고레에다 감독의 이름값을 빌려 일본의 마이코(舞妓)·게이코(芸妓) 문화를 홍보하는 작품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많은 단점있는데도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 관해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세계가 한 폭 더 확장했다고 볼 만한 변화가 일부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움직임은 역시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인 ‘가족’과 관계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를 테면 가족 연구자이자 가족 권위자. 그는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브로커’ 등을 통해 가족의 정체·의미·한계·범위 등을 얘기했으며, 최근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대안 가족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이 대안 가족 영화를 그린 걸작이었다면, 지난해 개봉한 ‘브로커’는 대안 가족에 관한 범작이었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은 겉으로만 보면 가족과는 관련 없는 작품처럼 보인다. 아오모리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스미레’와 ‘키요’가 마이코가 되기 위해 교토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재능을 인정받고 교토 최고의 마이코가 되려는 스미레와 기예(技藝)엔 재능이 없어 마이코 숙소에서 요리를 하게 된 키요의 1년을 그린다. 사춘기 소녀들의 이야기(실제 마이코 문화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차치하고)와 요리를 결합했다는 점에서 언뜻 이 작품은 이른바 ‘성장힐링물’로 볼 구석이 있다. 하지만 에피소드를 하나씩 밟아가다 보면 이 드라마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이야기 중 하나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친구인 스미레와 키요가 자매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 외에도, 마이코 숙소 내 호칭이 모두 가족에게만 부여되는 단어(어머니·언니)를 쓴다는 것, 숙소 내 사람들이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서로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가 돼 간다는 점이 그렇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이 가족에 관한 작품이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눈여겨 봐야할 건 이 드라마가 그간 고레에다 감독이 보여준 대안 가족의 한계를 뚫고나간다는 것이다. ‘어느 가족’과 ‘브로커’가 보여준 대안 가족은 사회가 흔히 가족이라고 부르는 관습적인 형태, 그러니까 아버지·어머니·아들·딸로 구성된 4인 가족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혈연 관계가 아닌 이들이 우연찮게 함께 살게 돼 가족을 이뤘는데도 그 구성은 남성이 아버지, 여성이 어머니 역할을 반드시 맡게 하며 성역할의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는 듯했고, 자녀 구성 역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이상적이라고 주입해온 ‘아들·딸 하나씩’이라는 배분을 피해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랬던 고레에다 감독은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 이르러 오직 여성으로만 구성된 가족을 내세움으로써 대안 가족의 새로운 영역으로 일보 전진한다.
물론 고레에다 감독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여성 구성원으로만 이뤄진 가족을 이미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이들 가족은 어떤 방식으로든 명백히 혈연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대안 가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반면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의 가족은 이전에 어떤 관계도 맺은 적 없던 여성들이 모여 만든 새로운 집단이다. 스미레와 키요는 친자매 같은 사이이긴 하지만, 피를 나누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언니라고 부르는 선배 마이코들 역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남이다. 마이코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 어머니라고 불리는 두 여성 역시 남이다. 이런 가족 구성은 앞서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 영화에서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이다.
더 흥미로운 건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의 가족이 성역할의 편견에서 꽤나 멀리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키요는 이 가족 내에서 자식 역할을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성인 여성의 보살핌을 받기는 하지만 요리를 할 때만큼은 가족 전체를 돌보는 보호자 역할을 한다. 특히 스미레에게 키요는 친구이자 자매이며 부모 같다. 키요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 구성원 역시 부모·자식 또는 엄마·아빠라는 단어로 명확히 구분되는 역할이 없다. 이 가족 안에는 정해진 업무는 있을지 몰라도 고정된 관계 같은 게 없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보다는 가족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애매해 보이기도 하는 희미한 틀 안에서 매일 밥을 함께 먹고 함께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정도의 관계도 이제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결정적으로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는 앞서 언급한 ‘4인 가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인다. 스미레 가족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건 아버지 한 명 뿐이며 그의 어머니는 언급도 되지 않는다. 키요는 할머니와 둘이서 함께 살아온 것으로 보이며, 스미레와 키요의 고향 친구 겐타는 두 소녀가 떠난 뒤 키요의 할머니와 새로운 가족을 이룬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혈연 가족은 모두 사회가 평범하다거나 일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형태를 하고 있지 않다. 이는 고레에다 감독은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서도 여전히 가족에 관해 고민하고 있으며, 자신이 만든 작품 속에서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는 방증이다.
‘어느 가족’ 이후 고레에다 감독이 내놓은 작품들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브로커’는 앞서 만든 영화들의 동어반복처럼 보였고, 이번에 내놓은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은 작품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고레에다 감독이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상에 걸맞게 변화 중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이 그의 작품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고레에다 감독이 어떤 가족영화를 내놓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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