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에에올'은 제2의 기생충이 될 수 있을까

by Idol 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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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빈 에디터 = 아카데미에 변화가 감지된 건 2008년이었다. 당시 아카데미는 작품상을 코언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줬다. 이 영화가 걸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고, 코언 형제가 거장이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들의 필모그래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이를 테면 아카데미가 선호하는 대중적 완성도를 가진 영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런데도 아카데미는 작가주의에 입각한 작업을 하며, 굳이 나누자면 할리우드의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코언 형제의 영화에 최고상을 줬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수상은 아카데미가 더 이상 특정 부류 영화에 선을 긋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여겨졌다.

이후 14년 간 아카데미는 작품상에 정치적·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며 오스카를 둘러싼 거의 모든 장벽을 허물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2년 뒤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은 '허트 로커'로 여성 감독 최초 작품상 기록을 썼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4년엔 스티브 매퀸 감독이 흑인 노예의 삶을 그린 '노예 12년'으로 흑인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감독이 됐다. 이듬해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이 작품상을 받아 영미권 감독이 아닌 감독의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첫 번째 사례가 됐다. 2017년 '문라이트'는 흑인 감독이 만든 흑인 성소수자에 관한 영화였고,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는 멕시코 감독이 만든, 장애를 가진 여성이 괴물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였다. 그리고 2020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 최초로, 그리고 아시아 국적을 가진 감독 최초로 작품상을 받았다. 2021년엔 중국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가 만든 '노매드랜드'가, 2022년엔 청각장애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스트리밍 영화 '코다'(애플TV+)가 작품상을 차지했다.

어쩌면 아카데미는 올해 시상식에서도 이른바 '진입 장벽 부숴내기' 작업을 계속 이어갈지도 모르겠다. 올해 이 기조를 이끌고 있는 영화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하 '에브리씽')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The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AMPAS)는 지난 24일 제9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을 발표했는데, '에브리씽'은 작품·감독·각본·여우주연·여우조연(2명)·남우조연·편집·음악·주제가·의상 등 10개 부문에서 11차례 이름을 올리며 최다 후보 지명작이 됐다.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에선 여우주연·남우조연 부문에서 상을 받고, 크리틱스초이스에선 작품·감독 부문에서 상을 받은 '에브리씽'은 오스카에 근접한 영화로 평가받긴 했지만, 예상보다 더 많은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브리씽'은 최근 아카데미가 견지해온 다양성 인정과 소수자 포용을 통한 편견과 관습 타파에 정합(整合)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중국어와 영어가 반반씩 섞여 있고, 말레이시아 배우가 주연을 맡은데다가 백인 배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감독을 비롯한 다수의 스태프가 중국계이기도 하다. 또 할리우드 정통 문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기보다는 B급 정서와 유머를 기반으로 삼은 비주류 영화이다. 물론 '에브리씽'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국 영화인 것은 맞지만, 이같은 국적성을 떼고 봤을 때 미국 영화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브리씽'이 지난해 '코다'처럼 작품 외적인 의미는 풍성할지 몰라도 작품성만 놓고 보면 수준 이하의 영화인 것도 아니다. 이 영화가 남우주연상을 제외한 주요 부문 모두에서 후보에 올랐다는 건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대부분이 최상위 레벨이었다는 방증이다. 마블 영화로 익숙해진 개념인 멀티버스를 재해석한 창의적인 콘셉트, 멀티버스와 슈퍼 히어로를 현실에 발붙여 놓는 정교한 스토리, 참신한 유머와 사려 깊은 메시지, 양쯔충 등 출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 '에브리씽'은 보는 이를 놀래키고 웃기고 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서 극찬을 받았다. 실제로 미국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이 영화는 전문가 점수 95%, 관객 점수 89%를 받았고, 영화 정보 사이트 아이엠디비(IMDB)에선 유저 점수 10점 만점에 9점을 받았다. 또 평론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선 81점을 받으며 필람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

올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10편 중 '에브리씽'의 수상을 위협하는 다른 후보는 '이니셰린의 밴시' '더 파벨만스' 2편으로 압축된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이니셰린의 밴시'는 1920년대 아일랜드의 섬 이니셰린을 배경으로 둘도 없는 친구였던 두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절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맥도나 감독은 이 블랙코미디를 통해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회적 함의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더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영화로 주목받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애리조나에 자리잡은 유태인 이민자 가정을 중심으로 영화감독이 꿈인 소년의 삶을 그려 스필버그 감독의 또 다른 걸작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두 영화 모두 작품의 완성도로 보면 '에브리씽'에 밀릴 게 전혀 없다. 골든글로브에서 '이니셰린의 밴시'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더 파벨만스'는 드라마 부분 작품상을 나눠갖기도 했다. 다만 영화 외적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미들과 함께 놓고 볼 때, 여전히 '에브리씽'이 오스카 작품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영화라는 게 중론이다.

'에브리씽'의 주연 배우 양쯔충(양자경·楊紫瓊)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아시아 국적을 가진 여성 배우가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 양쯔충이 처음이다. 그는 "선배 아시아인 여성 배우들의 어깨를 딛고 이 자리에 섰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며 "(오스카를 품에 안아) 빌어먹을 그 유리천장을 어서 깨버리고 싶다"고 했다. '에브리씽'이 작품상을 받게 되면 오스카의 유리천장은 또 한 번 깨지게 될 것이다. '에브리씽'과 양쯔충이 그 빌어먹을 유리천장을 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는 3월1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오아미 코리아 jb@1.234.21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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