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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가수 정홍란이 지난 1일 신년행사에서 부른 노래가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의 ‘핑거팁’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유튜브 채널 캡처) 2023.01.17
[*]이재훈 에디터 = 북한 가수가 부른 노래가 K팝 그룹의 음악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북한 내 K팝의 위상이 변화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지난 1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통생통사 강동완 TV’에 북한이 지난달 31일 오후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연 신년경축 대공연에서 K팝 걸그룹 ‘여자친구’의 노래를 표절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K팝에 빠진 새 세대를 위한 북한의 표절곡? 왜 북한은 남한 걸그룹 노래를 따라 했을까’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가수 정홍란이 부른 ‘우리를 부러워하라’가 여자친구의 ‘핑거팁’ 일부분을 베꼈다고 지적했다.
‘우리를 부러워하라’는 북한 체제 선전용 유튜브 채널 ‘삼지연(samjiyon)’에 약 10일 전 올라온 3분14초가량의 영상을 통해 소개됐다. 문제가 된 부분은 ‘세상이여 부러워 하라 / 우리를 부러워 하라 / 원수님의 그 믿음 속에 / 충신이 된 우리 인민을’이라는 구절 직후 간주 부분이다. 댄서들이 춤을 추는 구간인데 ‘핑거팁’의 전주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나왔다.
강 교수는 “전문 음악인에게 의뢰해 두 곡을 비교해봤더니 두 곡이 똑같은 음이름(pitch names)으로 표현됐다. 표절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핑거팁’은 여자친구가 2017년 3월에 발표한 네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곡이다. 당차고 주체적인 소녀들의 사랑방식을 노래했다. 펑키한 디스코 장르에 록과 브라스 사운드를 가미한 댄스곡이다.
[*] 강 교수가 정홍란 ‘우리를 부러워하라’와 여자친구의 ‘핑거팁’의 음이름을 비교하고 있다. 2023.01.17. (사진 = 강 교수 유튜브 채널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런데 ‘우리를 부러워하라’ 원곡은 청봉악단이 부른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곡을 하면서 ‘핑거팁’과 유사해진 것이다. ‘김정은의 음악정치’ 등을 펴낸 강 교수는 북한이 왜 지금 남한 걸그룹 노래를 표절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답은 지금 북한 음악계에서 불고 있는 리메이크 바람”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20년 12월 한국 문화 등의 유입을 막기 위해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제정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가장 유명한 노래에 (K팝) 걸그룹의 노래를 넣어서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롭고 놀랍다”는 게 강 교수의 반응이다.
강 교수는 “지난해 9월9일 9·9절(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공연 때 가수 김유경과 정홍란이 노래를 남한의 R&B 발라드 풍으로 편곡해 불렀는데 (국무위원장인) 김정은이 ‘역사적 공연’이며 ‘아주 멋진 편곡’의 획기적인 변화라고 말했다”면서 이번 신년경축 대공연에서도 여러 곡들이 다 편곡이 됐다. 단속 통제만 할 수 없으니까 주체적인 변형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 노래보다 더 수준 높은 곡을 만들라고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 유명 노래에 남한 걸그룹의 노래를 넣어 굉장히 익숙한 음악처럼 (들리게) 의도한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북한 젊은이들이 남한 노래에 빠져 드는 이유는 노랫말에서 사랑을 다루기 때문인데 리듬, 박자를 표절한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좋아하고 열광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리메이크, 편곡 바람이 어디까지 갈지 주목된다”고 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간 K팝이 최전방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주요 심리전 수단의 선봉 역을 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2016년 1~8월 ‘대북확성기를 통해 방송된 한국가요 현황’ 톱10에 여자친구의 히트곡 ‘오늘부터 우리는’과 ‘시간을 달려서’ 두 곡이 포함돼 있었다. 여자친구의 곡들은 듣는 이들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측면이 크다. 아련하고 서정적인데 ‘꺾이지 않은 마음’을 가미해 ‘격정 아련’이라는 용어까지 탄생시킨 팀이다.
과거 북한과 관계에 온기가 감돌 때 양 측 예술단이 주로 콘서트를 통해 문화 교류를 했는데 그 가운데 아이돌도 상당수 포함돼 왔다.
[평양=뉴시스]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3일 오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북남 예술인들의 련환공연무대 우리는 하나’에서 레드벨벳이 열창하고 있다. 2018.04.03.
1999년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에 ‘젝스키스’와 ‘핑클’,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기념 통일음악회’에 ‘신화’와 ‘베이비복스’가 출연했다.
당시 핑클은 발라드 ‘나의 왕자님께’, 댄스그룹인 젝스키스 역시 비교적 차분한 ‘예감’을 불렀다. 신화와 베이비복스는 보다 강렬한 ‘퍼펙트 맨’과 ‘우연’을 각각 불렀지만 남한 무대에 비해 차분한 정서를 유지했다.
이후 양 측의 교류가 뜸했고 13년 만인 2018년 열린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 ‘레드벨벳’이 K팝 아이돌 그룹 중 유일하게 포함돼 화제가 됐다. 레드벨벳은 개성 강한 퍼포먼스와 화려한 댄스, R&B를 오가는 팀 콘셉트가 매력적이다. 당시 이 두 색깔을 각각 대변하는 ‘빨간 맛’과 ‘배드보이’를 불러 주목 받았다.
사실 2010년대 초반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K팝 열풍은 폐쇄적인 북한마저 파고들었다. 당시 ‘소녀시대’와 ‘빅뱅’의 노래와 춤이 유행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방송이 담긴 DVD 등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유통되면서 한류가 확산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K팝 아이돌 춤을 배운다는 설까지 등장했다.
그러자 당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평안북도가 자본주의의 날라리판이 됐다”며 K팝을 비롯한 남한 풍의 자본주의 문화 유입을 차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면서, 현송월 단장이 이끈 모란봉악단이 전자음악을 도입하는 등 좀 더 개방적이 됐지만 K팝과 한국 드라마는 여전히 음성적으로 유통돼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전에 대해 조선중앙TV가 보도할 때도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개막식 공연에서 월드컵 공식 주제가 ‘드리머스’를 불렀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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