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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프로듀싱 계약 조기 종료 두고 한편에선 우려도 나와
[*]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 2022.09.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재훈 에디터 = ‘K팝 대부’ 이수만(70)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너무 산술적인 것에만 치중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식시장 등과 연관돼 받는 돈과 관련 절대적 액수에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K팝 성장 서사 등 문화적인 부분은 간과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SM은 최근 ‘라이크 기획’과 프로듀싱 계약 조기 종료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라이크기획은 SM 창업주이기도 한 이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회사다.
앞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등은 SM과 라이크기획이 프로듀싱 계약을 맺고 관련 매출의 일정 비율을 인세로 주고 받는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해왔다.
일부에선 이 점을 들어 ‘창업자 리스크’를 강조했다. 또 이 프로듀서와 SM의 프로듀싱 계약 조기 종료 검토 소식 이후 SM 주가가 잠깐 상승한 걸 두고 반색하는 분위기도 나왔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 프로듀서가 SM을 떠나는 것이 진짜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프로듀서는 K팝의 아버지로 통한다. 현재 한류의 선봉이 된 K팝 아이돌 형태의 전형을 만들었다. SM은 이 프로듀서가 1989년 설립한 SM기획을 모태로 1995년 창립했다. 1996년 데뷔해 국내 아이돌 그룹의 기반을 닦은 H.O.T를 시작으로 S.E.S, 신화,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f(x), 엑소, 레드벨벳까지 톱 아이돌 그룹들을 배출했다.
이런 인기 아이돌이 탄생하는데 이 프로듀서는 제작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멤버의 영입이 자유롭고 그 수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 특징인 NCT, 메타버스 개념을 도입한 에스파(aespa)가 최근 대세로 떠오르는 데도 이 프로듀서의 앞선 혜안이 돋보였다는 평이다. NCT의 유닛인 NCT 드림과 NCT 127은 국내 콘서트업계 꿈의 무대인 올림픽주경기장 무대에 각각 섰거나 오를 예정이다.
SM은 그간 급여 형태가 아닌 프로듀싱 노하우 활용에 대한 명목으로 이 프로듀서에게 로열티를 지급해왔다. 그는 SM으로부터 급여, 상여, 차량 등의 복리후생을 제공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 2022.09.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자신의 창작활동에 대한 로열티를 받는 건 업계를 위한 포석이다. 후배 프로듀서들도 산업 내에서 인정 받고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신념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이수만 프로듀서의 프로듀싱 로열티 수입 총액은 약 1500억원이다. 연평균 70억원, 세후로는 대략 35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특정 산업 분야의 창시자에게 주어진 소득으로 따지자면, 국내외 유사 사례에서 많지 않은 금액이다.
특히 이 프로듀서가 근래 프로듀싱한 NCT·에스파가 SM 매출에 큰 몫을 차지하게 된 걸 떠올리면 절대 과하지 않다.
2016년 SM의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은 2021억원, 영업이익은 161억원이었다. 2016·2020년 각각 NCT·에스파가 데뷔하고 지난해 NCT의 음반 판매량이 1000만장을 돌파하면서 SM 매출액은 4172억원, 영업이익 741억원이었다. 5년 전과 비교해 매출액은 2배 이상, 영업이익은 4배 이상 증가했다.
여전히 이 프로듀서의 손 끝에서 탄생한 새로운 스타들이 회사의 매출액과 이익을 크게 늘린 셈이다. 그에 따라 로열티 지급 또한 비례해서 증가했는데, 2배가량이 늘었다.
이 프로듀서는 프로듀싱 노하우를 SM에 제공하고, SM은 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 프로듀서와 SM의 계약이 맺어졌다. 이러한 계약의 본질로 볼 때 수익에 연동되지 않는 급여나 상여 지급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관련 매출액의 일정 요율로 지급되는 로열티가 성격상 맞다.
[*] SMCU. 2022.09.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에 따라 창작의 영역에 속한 프로듀서의 역할을 단지 비용의 문제로 해석하는 일부 목소리가 오히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프로듀서는 현역 가수 출신이다. 1971년 백순진과 함께 포크 듀오 ‘4월과5월’의 음반을 녹음했다. 하지만 음반 녹음 직후 건강 문제로 팀에서 빠졌다. 이듬해 해당 앨범이 나왔고, 이 프로듀서는 목소리로 먼저 데뷔했다. 1972년 나온 양희은 ‘고운노래모음’ 2집에 코러스로 목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 농대 그룹 사운드 ‘샌드 페블스’ 2대 멤버(1972), 록 그룹 ‘들개들’ 베이스 주자(1974)로 활동했다.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 MC를 맡은 후 사회자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1980년엔 하드록 밴드 ‘이수만과 365일’을 결성한 뒤 1집을 내놓았는데 선구적인 하드록 사운드를 선보였다. 밴드 마니아들 사이에서 필청하는 음반이다.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노스리지 대학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는 귀국해 홍종화·곽영준과 컴퓨터 음악, 즉 미디 기반의 프로젝트 밴드 ‘CPU’를 결성했다. 하지만 너무 앞서갔던 음악이라 호응을 얻지 못했다. 1989년 역시 앞서가는 음반으로 평가 받는 ‘뉴 에이지’를 끝으로 그는 더 이상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MTV의 부흥을 보고 비디오 시대를 예견한 이 프로듀서는 이후 음반 제작자로 변신했다. 특유의 강렬한 음악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에스엠피(SMP)'(SM Music Performance)라는 장르 탄생의 출발이었다.
지금은 K팝계 자연스런 흐름이 된 유럽과 문화 교류 시작점도 이 프로듀서가 짚었다. S.E.S가 1998년 발매한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가 예로, 이 프로듀서는 핀란드 작곡가인 리스토(Risto)에게 직접 찾아가 부탁했고 선진적인 사운드를 국내 도입할 수 있었다.
이 프로듀서는 단순히 음반 제작만 하지 않았다. 디즈니가 다양한 세계관을 선보이는 것처럼 일찌감치 SM컬처유니버스(SMCU·SM Culture Universe)의 세계를 그려왔다.
[*] 이수만 생카 현장. 2022.06.18. realpaper7@1.234.219.163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SM은 마블처럼 영웅서사 세계관을 일찌감차 차곡차곡 쌓아왔다. 지난 2000년 3D로 개봉한 1세대 아이돌 그룹 ‘H.O.T.’의 영화 ‘평화의 시대’가 예다. 2200년을 배경으로 H.O.T 멤버들이 지구연방 축구대표팀으로, 은하계 축구대회에서 활약하는 내용이었다. 아시아를 평정한 그룹 ‘동방신기’의 팀명에는 ‘동쪽에서 신이 일어나다’란 뜻을 담았다. 지난 2012년 데뷔한 엑소는 순간이동, 불, 빛, 결빙 등 각 멤버마다 초능력을 부여했다.
‘네오 컬처 테크놀로지(Neo Culture Technology)’의 머리글자 모음을 팀 이름으로 내세운 NCT는 새로운 컬처 테크놀로지(CT·문화기술)로 탄생된 만큼 개방성과 확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슈퍼엠은 SM 소속 보이그룹 멤버들을 묶은 어벤저스 식 유닛이다. 여기에 에스파를 기점으로, 광야(KWANGYA)라는 SM 세계관을 모두 아우르는 온오프라인 플랫폼까지 만드는, K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처럼 이 프로듀서는 창작의 영역을 골고루 경험한 걸 프로듀싱에 녹여내며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왔다.
SM의 현재 성과는 단순히 음악 기획·제작만 기반 삼은 게 아니다. 이 프로듀서의 문화·기술의 결합을 바탕으로 한 미래 전략, 글로벌 시장 진출에 기반해서 이뤄낸 것이다. NCT·에스파까지 성공하면서, SM은 진행하는 일의 90%이상을 성공시킨다는 이야기를 새삼 확인했는데 이와 같은 성공률은 이 프로듀서의 프로듀싱을 근간 삼은 것이 크다.
게다가 최근엔 대중음악 산업이 활발해질 것이라 예고되는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문화 컨설팅까지 해주는 K팝의 얼굴이다.
이런 부분까지 생각한다면, 이 프로듀서가 SM과 K팝에 미치는 영향력은 단순히 돈으로 따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 2022.09.27.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프로듀서가 주도적으로 프로듀싱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도 설정해둔 NCT와 에스파가 한창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가 회사를 떠나게 될 상황이 과연 주주들의 이익 제고에도 도움이 될 지 미지수다.
특히 이 프로듀서는 SM 소속 가수들의 정신적 지주다.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제지간과도 같다. 그의 부재는 단순히 한명의 프로듀서를 잃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최근 일련의 상황과 관련 NCT와 소녀시대 멤버 겸 배우 임윤아가 “이수만 선생님 없는 SM은 상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 이유다.
더구나 K팝 미래 세대 역시 이수만의 가수 현역 시절은 몰라도 그가 K팝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건 다 알고 있다. 이 프로듀서의 일흔한번 째 생일이던 지난 6월19일 ‘슴덕’ 또는 ‘핑크 블러드'(PINKBLOOD)로 통하는 SM 팬들은 성수동 SM 사옥 인근에서 자체적으로 이 프로듀서의 ‘생일 카페'(생카)를 열었고 약 1000명이 넘게 다녀갔다.
현장에서 만난 NCT 팬 시즈니는 이 프로듀서에 대해 “제작자이자 프로듀서. K팝의 대부로 알고 있다. 예전에 가수였다는 얘기를 들기도 했는데 그 시절은 저희가 전혀 모르지만, SM의 뿌리라는 건 잘 안다”고 했다.
누구나 잘 알지만 엔터테인먼트는 기본적으로 위험 산업군이다. 지금과 같은 빌보드 성적과 유튜브 조회수는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 프로듀서 같은 K팝 선구자들이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은 뒤 안착한 결과다.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회사 시스템이 설정돼 있다고 일반 기업처럼 일을 진척시켜나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프로듀서 같은 이들의 안목과 경험 그리고 혜안이 계속 이어져야 가능하다. 이 프로듀서가 후배 프로듀서들의 성장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K팝 업계 관계자들은 이 프로듀서가 없는 SM이 과연 SM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유산을 이어 받을 수 있을 지 의구심을 표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이 프로듀서가 없는 SM이 SMP로 상징되는 고유한 음악과 퍼포먼스의 전통을 계속 이어나갈 지 미지수”라면서 “만약 그렇게 돼 SM의 색깔을 잃고 지금과 같은 동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건 결국 주주는 물론 K팝 업계와 K팝 팬들에게도 큰 손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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