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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3년9개월 만인 14일 잠실 실내체육관서 단독 공연
[*] 알렌 워커. 2021.11.26. (사진 = 소니뮤직 제공)
[*]이재훈 에디터 = 연미복 대신에 후드 티를 입고, 포디엄에 오르는 대신 디제잉 기기(믹서) 앞에 서서 오케스트라 단원 대신 전자음과 조명을 지휘하는 그의 이름은 노르웨이 출신 세계적 DJ 겸 프로듀서 앨런 워커(25·Alan Walker·알렌 워커).
워커가 국내에서 3년9개월 만인 14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펼친 단독 공연 ‘워커버스 : 더 투어(WALKERVERSE : THE TOUR)’는 전자음악적 상상력이 어떻게 공연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무대였다.
때로는 휘몰아치고 종종 감성적인 사운드의 흐름에 따라 양팔을 크게 휘젓는 워커는 흡사 지휘자 또는 열광적인 조직의 지도자 같았다.
K팝 아이돌의 화려한 군무가 없어도, 라이브 밴드의 생생한 연주가 없어도 공연은 충분히 뜨거웠고 떼창이 난무했다.
첫곡 ‘얼론’부터 그랬다. 공연장엔 종이가루가 흩날렸고 조명은 고급 실크 이불처럼 객석을 화려하게 뒤덮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운 6000여명은 합창을 했다. 이렇게 이날 공연은 화룡점정을 여러 번 찍었다.
역동적인 ‘타이어드(Tired)’에 이어 금속성 사운드가 돋보이는 ‘낫 유’와 ‘다이아몬드 하트’를 거쳐 일본계 미국 DJ 스티브 아오키와 작업한 ‘아 유 론리’ 그리고 ‘더 드럼’ 등을 연이어 트는 순간, 이건 ‘체험’이라고 단정하게 됐다.
빈틈 없는 사운드와 눈부신 조명으로 청각·시각 정보를 꽉꽉 채운 이날 공연은 그래서 오히려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환희나 감동이 아닌 전압. 그건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는 감전(感電)의 깜냥을 가리킨다. 깜깜한 공간 속에서 모두 다 같이 전기, 아니 전자 음악에 감응할 수 있는 마음 말이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 연대의 중요성과 공동체를 강조하고, 희망을 제시한다”는 워커의 가치관이 이렇게 반영되나 싶었다. 워커 뒤 대형 스크린에선 붉은 배경을 도화지 삼아 계속 원이 그려졌는데, 그건 마치 연대의 징표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이날 공연은 워커의 히트곡이 대거 쏟아져서도 호응을 얻었다. 몽환적인 ‘싱 미 투 슬립’, 얼마 전 내한한 미국 신예 팝스타 세일럼 일리스와 함께 만들고 K팝 4세대 간판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투바투)가 가창에 참여한 ‘PS5’, 드라마틱한 ‘올 폴스 다운’, 감성적인 ‘온 마이 웨이’, 그리고 무게감 있는 ‘다크사이드’까지. 스탠딩석 관객뿐 아니라 지정석의 관객 역시 몸을 쉴 틈이 없었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OST ‘제국의 행진'(The Imperial March)이 짧게 삽입한 뒤 들려준 ‘엔드 오브 타임’에선 별로 가득한 광활한 은하계의 그것이 떠올랐다.
마지막곡은 워커의 대표곡인 ‘페이디드(Faded)’의 변주였다. 객석에서 광적인 합창이 이어졌다. 우리의 감정 전류는 세상의 저항 속에서 제대로 흐르지 못했는데, 워커의 강력한 전압이 그 고여 있던 전류를 방류시켰다. 90분이라는 시간이 광속처럼 흘렀고, 관객들은 막판에 스마트폰 플래시를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화답했다. 이쯤되면 워커는 삶의 전기공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전자음을 이렇게 심리공학적으로 설계할 뮤지션도 드물 테니까.
최근 콘서트장에 가장 세련된 패션 피플들이 이날 공연을 즐겼다. 근사하게 차려 입은 힙스터들이 젊음을 마구 발산했다. 전류의 진동이 더 컸던 이유다. 다시 여름이다. 아니, 다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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