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전설의 타이거 헌터 – 78년 만의 귀환’이라는 부제로 홍범도 장군에 대해 조명했다.
지난 2021년 한 대학교의 연구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가의 시신을 찾아달라는 것. 특히 시신은 국내가 아닌 카자흐스탄에 있었고, 시신이 확실히 있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어려움이 예상됐다.
그럼에도 교수는 부탁을 받고 카자흐스탄으로 날아갔다.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 그의 시신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고 3일이 지나 모두가 포기하려던 그때 땅속에서 비닐에 싸인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이 발견된 그 순간 현장의 이들은 벅찬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다고. 그렇다면 이들이 찾아 나선 시신은 누구일까?
시신의 주인공은 카자흐스탄의 한 마을 극장 수위. 그런데 사실 그는 부캐가 있었다. 전설의 총잡이라 불리는 호랑이 잡는 포수, 타이거 헌터.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1895년 10월 한양의 경복궁으로 향했다. 그날 경복궁에는 총칼을 든 일본군과 자객들이 떼 지어 들어왔고 이들은 조선의 국모 명성왕후를 시해한다. 그리고 이 소식에 분개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27세의 홍범도였다.
호랑이 포수였던 그는 이제부터는 호랑이가 아닌 왜놈을 잡는다며 동료 포수들과 함께 의병대를 구성했다. 그리고 이들은 60전 60승 불패 신화를 써갔다. 하지만 홍범도는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을 수 없었다. 아내와 아들을 연이어 잃었던 것.
홍범도는 의병들을 모아 군대 조직으로 재편했고, 그렇게 대한독립군 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대한독립군은 군사력 세계 3위 일본과 맞붙어 싸운 첫 전투인 봉오 통 전투에서 완승을 거뒀다. 이에 우리 민족들은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졌고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이 싸운 청산리 대첩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들의 승리 뒤에는 이들에게 음식이며 돈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민초들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도운 사람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독립군. 독립군이 물고기라면 민초들은 물이 되어 물과 물고기의 완벽한 협력이 전투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이에 일본은 참지 않았다. 물고기가 놀 수 있는 물을 없애기 위해 민초들을 탄압하며 잔인하게 학살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3천700명 학살당한 이 사건은 간도 참변. 이 사건으로 홍범도 장군은 하나 남아있던 혈육 둘째 아들까지 떠나보냈다.
모든 가족을 다 잃은 홍범도 장군은 자취를 감추고 1년 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간도 참변 이후 러시아로 피신한 그에게 러시아는 혁명군을 도와주면 조선 독립투쟁에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 이에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로 망명했다. 그리고 그가 쓴 망명 신청서에 망명 목적에는 조선 독립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적혀있었다.
그토록 조국의 독립만을 바랐던 홍범도 장군. 하지만 러시아는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홍범도 장군은 군복을 벗고 농부가 되었다. 고려인 1세대 중심에 그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937년 러시아는 일본인을 닮은 고려인들 사이에 일본 첩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고려인들을 열차에 태워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렇게 고려인들은 10년을 가꾼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40여 일을 달리는 지옥 열차에서 500여 명의 고려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렇게 도착한 카자흐스탄은 허허벌판이었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수는 17만여 명.
우리 민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황무지 개간에 매달려 결국 황무지를 농지로 만들었다. 그렇게 카자흐스탄에 적응을 하며 살던 어느 날 한 부부가 홍범도 장군을 찾아왔다. 고려인들을 위해 세운 고려극장의 수위를 맡아달라는 것.
이에 홍범도 장군은 흔쾌히 수락했고, 그런 그에게 부부는 그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보자며 그의 지난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거기서 탄생한 것이 홍범도 일지이며 그것을 토대로 의병들이라는 연극이 만들어졌다.
연극은 대성공했고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의 셀럽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43년 홍범도 장군은 75세의 나이로 평생 독립에 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내가 죽고 우리나라가 해방된다면 꼭 나를 조국에 데려가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 아슈 등으로 그의 유언인 지켜지지 않았고, 지난 2021년 드디어 그의 유해를 찾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간 것이다.
78년을 묻혀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아마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거야 라는 바람이 기적을 만든 것이 아닐까?
21년 8월 유해를 송환하기 위한 송환식이 진행됐고, 그의 유해는 공군의 호위를 받으며 드디어 조국으로 돌아왔다. 78년 만의 영웅 귀환인 셈. 그리고 국가는 홍범도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의병들과 민초들의 희생으로 인해 현재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며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는 가르침을 다시 새겼다.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