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 11발의 총성, 그 후에 발견된 11구의 시신…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by Idol Univ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8일 방송된
‘꼬꼬무-검은 돌고래와 불청객’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가수 선미, 배우 이기우, 방송인 홍석천이 출연했습니다. (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강릉 앞바다에 떠오른 검은 돌고래

때는 1996년 10월 22일 저녁, 표민정(가명) 씨는 친구들과 있다가 집에서 삐삐 연락을 받았어.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 목소리가 떨려. 엄마가 “종욱이가 없어졌대”라고 말했어. 군대에 간 남동생이 사라졌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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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종욱 일병, 당시 21세였어. 부대 옆 산에 작업을 나갔다가 혼자 감쪽같이 사라졌대. 군부대에서 바로 조사에 들어갔는데, 사라진 게 아니라 탈영했다는 거야. 관물대에서 여자친구들한테 쓴 편지가 나왔다며, 여자 문제가 복잡한 걸 봐서 탈영한 거 같으니 연락이 오면 자기들한테 보내달래. 가족들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어.

그날부터 온 가족이 나서서 실종된 표 일병을 찾아 산을 뒤졌어. 부대에서는 가족의 말을 믿지 않고, “어디 숨길 생각 하지 말고 자수시키라”는 연락이 계속 와. 도대체 표 일병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96년 9월 18일 새벽 0시 강원도 강릉. 택시기사 이 씨는 손님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어.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고속도로 갓길에 웬 남자 두 명이 있어. 고속도로는 사람들이 걸어 다닐 리가 없잖아. 잘 봤더니, 군복을 입었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택시기사는 손님을 내려드리고, 다시 남자들을 발견한 인근 도로로 돌아갔어. 내려서 살펴보는데. 어? 이게 무슨 소리지? 음산한 기계음 같은 소리가 계속 울려. 중간중간 사람의 비명소리가 섞여 있어. 온 신경을 집중해서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어. 바다야. 해변에서 한 20m쯤 떨어진 바다 위에 빨간 불빛이 반짝거려. 그리고 검은 연기도 막 피어오르고 있어.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데 시커먼 괴물체 같은 게 물에 떠 있어. 마치 검은 돌고래 같아. 그 괴물체, 직접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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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이야. 택시기사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어.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어. 적의 침투가 확실할 때 발령하는 군 최고 경계 및 전투태세야. 북한 잠수함이 내려왔다는 거야. 바로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해군 특수부대 UDT 대원들이 출동했어. 근데 잠수함 안에 적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만약에 들어갔다가 적과 마주치면 어떡해. UDT 대원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어. 바로 그때,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자원하는 사람이 있었어. 유병호 상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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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 장치가 있거나 부상 잔류자가 있다면, 마지막 저항을 하다가 자폭할 것이다. 그럼에도 상부에서는 들어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후배들에게 들어가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누군가는 들어가야 한다면 내가 먼저 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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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상사와 대원들을 태운 보트가 출발했어. 높은 파도를 뚫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잠수함에 도착했어. 잠수함 위로 올라가 출입문을 열었어. 그때, 탄내가 코를 찔러. 대체 뭘 태운거지? 심호흡을 하고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어.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쳐. 본격적으로 내부 수색을 시작했어. 잠수함 내부는 어두컴컴해. 그리고 너무 조용해. 피 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내부 수색을 끝냈어. 잠수함 내에는 사람이 없었어. 대신 어마어마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어. 총은 기본이고, 수류탄이 100개도 넘어. 기관총에 대전차 로켓포까지, 완전 중무장한 잠수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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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 목적을 알아야 하는데, 관련된 자료들이 모두 소각됐어. 자료를 불태워버리느라 잠수함 내부에서 탄내가 났던 거야. 남은 건 이 쪽지 한 장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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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사령관 동지, 전투원 동지. 임무 수행길을 떠나는 전투원들이 서면으로나마 전투적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영웅들은 절대로 죽지 않고 꼭 살아서 승리의 보고를 안고 임무가 실행되어 적화통일의 그날을…”

일종의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 맹세문 같은 거야. 굉장히 위험한 사람들이야. 사라진 무장공비들, 얼른 찾아야지.

▲ 11명의 시신, 그리고 생포자

인근 해안도로에서 공비들의 발자국이 발견됐어. 어림 잡아도 10명이 훨씬 넘는 많은 수의 발자국이 보였어. 발자국들은 산 쪽으로 향하고 있었어. 공비들이 바다에서 내륙으로 침투했다는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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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이 소식은 뉴스로 알려졌고, 전국이 공포에 빠졌어. 바로 인근 부대 군인들이 총동원 되고 예비군도 비상 소집됐어.

김남성 중사가 이끄는 수색조도 공비들의 족적을 쫓고 있었어. 산을 수색하려 하는데,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어. 그런데 총성이 좀 특이했어. 무려 11발의 총소리가 한 발 한 발 규칙적이었어. 총성이 난 쪽으로 다가갔는데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났어. 다가갈수록 냄새가 심해져. 바로 그 순간, “으악!” 앞서가던 대원들이 뒤로 나자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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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을 입은 남자 11명이 일렬로 누운 채 죽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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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 처음엔 민간인인 줄 알았다. 머리를 보니까 다 관자놀이를 쏜 거다. 똑 같은 방향으로. 몸을 수색하니까 권총하고 실탄하고 유서 같은 게 나왔다. ‘아 이게 무장공비구나’ 싶었다.” -당시 수색조 김남성 중사

죽은 무장공비들이 남긴 유서에는 “김정일 장군님 죄송합니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국을 위해 몸 바쳐 떠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어. 북한에서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목숨을 끝으라는 ‘자폭 교육’이란 걸 받는대. 지금으로 보면 ‘가스라이팅’인 거지. 심지어 온 가족이 보는 TV 프로그램에서도 자폭 정신을 강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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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1명의 시신에서도 저항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어.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감식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어. 현장에 있던 총에는 탄약흔이 없었어. 이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겠어? 다른 공비들이 자기 동료들을 사살하고 도망갔다는 뜻이야.

북에서 공비가 몇 명이나 내려왔는지 남한에선 모르니까 전부 자살한 것처럼 보이도록 해서 도망갈 시간을 벌려고 한 걸까? 이유가 어찌됐던, 살아있는 무장공비가 더 있다는 거야. 다시 추적이 시작됐어.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신고가 잠수함에서 2km 떨어진 산골 농가에서 접수됐어. 경찰이 바로 출동했지. 경찰이 가보니 젊은 남자 하나가 농장 주인과 대화하고 있는데, 딱 봐도 수상해.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경고하면서 다가갔는데, 남자의 손이 허리춤으로 내려가. 남자가 티셔츠를 드는데 권총 자루가 보였어. 당시 현장에 출동한 최우영 경장은 몸이 먼저 나가 남자가 꺼내려는 권총 자루를 쳤어. 총이 바닥에 떨어졌고, 곧바로 경찰들이 달려들어 팔을 꺾어 제압했어.

북에서 왔다고 순순히 자백한 그는 잠수함의 조타수로 이름은 이광수였어. 그런데 이광수는 무장공비가 몇 명이 더 있는지 말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어. 조사관들은 회유책을 쓰기로 했어. 이광수에게 혹시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있으면 갖다주겠다고 달랬어. 그러자 이광수는 말했어. “내레, 광어회가 먹고 싶습니다.”

갑자기 광어회? 너무 뜬금없는 메뉴지. 당시 이광수가 왜 광어회를 먹고 싶다고 한지 알아? 거기엔 황당한 이유가 숨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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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그 말을 했는가 하면, 이 광어가 고급 어종입니다. 뭘 먹고 싶나 말해봐라 해서, 남조선이 못사는 나라 같은데 광어회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광어회가 먹고 싶다고 그런 말을 했습네다.”

남조선에는 광어회 같은 고급 음식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는 거야. 이광수가 먹을 거를 구하러 산에서 내려왔다가 체포됐는데, 남조선에 집집마다 전화기가 있을지도 몰랐대. 알았으면 산에서 안 내려왔을 거라고. 이들이 북에서 얼마나 남한에 대해 잘못 교육받고 있는지가 드러난 순간이야.

이광수의 눈앞에 광어회를 딱 대령했어. 그러자 이광수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해. 이광수가 밝힌 사건의 내막은 이래. 정찰 임무를 띠고 하루 전날 침투했는데 잠수함이 암초에 걸리는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고 해안가에 갇히는 신세가 됐대. 잠수함에 탄 공비는 총 26명이고. 그럼 이제 공비가 몇 명 남은 거지? 사망 11명, 생포 1명이니, 무려 14명이 남아있어. 빨리 잡아야 해.

▲ 무장공비 총 앞에 쓰러진 우리 청년들

강릉 전 지역에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고, 다음 날 새벽부터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어. 즉시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고 했지만, 항복하는 공비는 단 한 명도 없었어. 이날 하루에만 공비 7명이 사살됐어. 우리 군인도 한 명이 전사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어. 이제 남은 공비는 7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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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무장공비 침투 3일째야. 23세 권오택 상병과 21세 강정영 상병도 산에서 매복 중이었어. 며칠 뒤가 추석이라서 휴가를 나갈 예정이었는데 이 작전에 투입됐어.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은 실탄과 수류탄을 지급받고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 전쟁이 일어나는 건가 불안에 떨었어. 낮에는 온 산을 뒤지며 수색했고 밤에는 참호 안에서 매복했어. 먹을 건 헬기가 공수해주는 주먹밥이 전부였어. 몸이 힘든 것보다도, 공비가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어. 밤이 되면 불빛 하나 없는 첩첩 산중에서 낙엽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눈앞에 있는 나무들이 다 공비로 보이더래.

9월 21일 오후, 권 상병과 강 상병은 산 정상으로 이동했어. 산 정상은 아래보다 훨씬 힘들어. 9월말 강원도 산속, 얼마나 추웠겠어. 오들오들 떨면서 꼬박 밤을 샜어. 어느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때였어.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어.

우리 군인들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리 정해 놓은 ‘암구호’로 서로의 신분을 확인했어. 강 상병은 “비둘기”라고 암구호를 외쳤어. 근데 상대방이 제대로 대답을 못했어. 유심히 쳐다봤는데, 무장공비가 아닌 거 같아. 간첩들은 젊은 사람들이라 교육받았는데, 상대방은 나이가 꽤 있는 어르신이야. 강 상병은 “할아버지 버섯 따러 오셨어요? 여기 입산 금지 구역이에요”라며 안내했어. 바로 그 순간, 강 상병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 알고보니 그 남자는 무장공비였고, 그가 쏜 총에 강 상병이 맞은거야.

권 상병은 엎드리면서 수류탄을 까서 던졌어. 연기가 자욱하고 사방이 고요해. 확인해보니, 그 공비는 사망했어. 문제는 강 상병이야. 권 상병은 강 상병을 들춰 업고 헬기가 있는 산 정상으로 뛰어 올랐어. “정영아 괜찮아? 정영아 살 수 있어. 병원 갈 거니까 좀만 참아” 계속 말을 걸면서. 그런데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어.

같은 시각, 여수에 있는 정영이네 집. 어머니는 아들 휴가 나오면 주려고, 아들이 좋아하는 고들빼기 김치를 만들고 있었어. 그 때 남편이 얼른 TV를 켜보라 했어. 뉴스 속보에 아들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 중이라고 떴어. 부모님은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곧장 서울로 올라 갔어. 부상당해도 살아만 있어라, 그런 마음으로. 하지만 강 상병은 병원으로 후송 중 사망했어. 이날 강 상병을 포함해서 우리 국군 3명이 목숨을 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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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자식을 못 지키고 이렇게 사는가. 그 생각만 하면, 뜬 눈으로 날을 지샐 때가 많다.” -강정영 상병 부모님

그 사이 공비 2명을 사살하고 이제 남은 공비는 5명이야.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어. 산에서 나오질 않아. 우리 군은 아주 특별한 작전을 세웠어. 생포된 이광수를 이용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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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들, 산에서 얼마나 고생합니까? 나는 동지들과 함께 침투한 조타수 이광수입니다. 나는 지금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이 방송을 합니다. 동지들, 북으로 돌아간들 동지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처벌 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삶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버리지 맙시다. 동지들, 결단을 내립시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자수하여 같이 삽시다.” -이광수 육성 방송

생포됐던 이광수가 방송을 하며 자수하라고 설득에 나선 거야. 이 방송이 이 산 저 산 울려퍼졌고, 헬기에서는 전단지도 뿌려졌어. 전단지에는 “난 살아 있으며, 동지들도 투항하면 살 수 있다”는 이광수의 메시지를 적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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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자수한 공비는 한 명도 없었어. 공비 2명이 추가로 발견되긴 했는데 투항을 권유했지만 끝까지 저항했어. 그래서 2명 모두 사살됐어. 이제 남은 공비는 3명이야.

▲ 계속되는 피해, 주검으로 돌아온 동생

어느덧 10월 8일, 무장공비 침투 21일째야. 남은 공비는 아무 소식이 없어. 일부 지역은 입산 금지가 해제되고, 강원도 춘천에서는 전국체전도 열렸어.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나 싶은 그때, 강릉에서 70km 떨어진 평창 시골마을 탑동리에 다시 총성이 울렸어.

마을 주민 유갑렬 씨가 총소리를 듣자마자 경찰에 신고했어. 산에 올라간 친구가 그때까지 내려오지 않고 있었거든. 곧바로 수색이 시작됐어. 유갑렬 씨도 군인들을 따라나섰어. 몇 시간을 헤집고 다니다가 앉아서 좀 쉬려고 하는데, 발 밑이 좀 이상해. 낙엽이 쌓여있는 게 부자연스러워. 조심조심 낙엽을 치웠어. 사람이었어. 같은 마을에 사는 할머니야. 뭐에 맞았는지 머리에 상처가 심했어. 그리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남자 2명의 시신이 또 발견됐어. 산에 갔다는 유갑렬 씨 친구야. 두 사람 모두 총상이야. 공비들이 강릉을 벗어나 평창까지 온 거야.

인근을 수색했지만 공비를 발견하지 못했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달이 바뀌더니 11월 4일이 됐어. 28일 만에 공비 제보가 들어왔는데, 이번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민간인통제구역, 휴전선 근처야. 공비들의 목적지는 북한이라는 거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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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총출동했어. 북으로 못 올라가게 방어선을 구축하고 다시 매복에 들어갔어. 다음 날 새벽 4시, 설악산국립공원 인근 연화동 계곡이야. 군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백두산” 암구호를 외쳤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어둠 속의 남자는 “3대대 선임하사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니까 잠깐 나와봐”라고 말했어. 병사 하나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밖으로 나갔어. 나가서 보니 남자 2명이야. 우리 군복을 입긴 입었는데 철모도 안 쓰고, 결정적으로 총이 우리가 쏘는 총이 아니야. “적이다! 사격!” 총격이 벌어지고, 초병 하나가 부상을 당했어. 이 남자들은 급히 도주했어.

지원을 바란다는 무전을 받고 현장에 703특공연대 박경상 대대장이 도착했어. 발자국을 발견해 랜턴을 켜고 확인하려는데,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다들 황급히 차 뒤로 숨었어. 박경상 대대장은 파편에 맞아 피를 흘렸어. 같이 왔던 오영안 대령이 현장에서 전사했어. 바로 그때 저 앞쪽에서 병사 하나가 총에 맞고 쓰러졌어. 옆에 있던 서형원 대위가 구하려 뛰쳐나갔어. 하지만 서 대위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 그 상태로 날이 밝았어.

지원 병력이 속속 도착하고 사방에서 추격전이 시작됐어. 그렇게 추격 4시간 만에 공비 2명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어. 하지만 우리 군도 오영안 준장, 강민성 병장, 서형원 소령, 3명이 전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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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은 전국에 보도됐어. 그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란 사람이 있어. 맨 처음 얘기했던 군에서 사라진 표종욱 일병 기억나? 산에서 작업 중에 실종됐는데 군에선 탈영했다고 했다는 그 군인. 표 일병의 누나는 뉴스를 보다가, 뭔가를 발견했어. 소름이 쫙 돋았어. 누나가 군대 가기 전에 동생한테 사준 손목시계가 죽은 공비들의 물품 중에 섞여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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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기 전에 동생한테 사준 시계가 있었어요. 그게 일반적인 시계와 달라요. 노란색 테두리의 눈에 띄는 시계를 제가 사줬거든요.” -표종욱 일병 누나

누나가 선물한 이 노란 시계를 공비들이 갖고 있었어. 그리고 다음 날, 부대에서 전화가 걸려왔어. 표 일병이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실종된 장소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낙엽에 덮여 있었는데 속옷만 입은 채였대. 공비들이 표 일병을 살해하고 군복과 물건을 뺏어간 거야.

그제야 군에서는 탈영으로 몰아서 죄송하다고 표 일병의 가족한테 사과했어.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야. 정말 기가 막힌 일이 그 뒤에 일어나. 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방송이 나오고 그다음 날, 표 일병의 집에 헌병대에서 전화가 왔어. 그리고는 “표 일병 아직도 연락 없냐. 숨겨도 소용없다. 빨리 자수시켜라”고 말했어. 아무리 착오가 있었다 해도, 이 가족에게는 너무 큰 상처였지.

▲ 살아남은 자들의 여전한 고통

이제 남은 공비는 단 한 명. 그런데 마지막 남은 이 공비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어. 추측컨대, 도주 중에 사망했거나, 아니면 북으로 넘어간 걸로 추정이 돼.

그럼, 대체 이들의 임무는 뭐였을까? 대통령이나 정부 요인을 암살하러 왔다는 설이 있지만, 정보 수집 정찰 중 사고로 잠수함이 좌초됐다는 게 유력한 분석이야. 공비들 소지품에서 카메라가 나왔는데 전부 군부대나 시설을 찍은 사진들이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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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비들이 쓰던 수첩이 발견됐는데, 거기에는 “우리 조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전투를 진행하겠습니다”, “지도원 동지 정말 미안합니다”,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 정말 당신의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등의 글이 쓰여 있었어. 표 일병의 수첩에는 어머니가 너무 그립다며 가족 이야기가 쓰여 있는데, 공비들의 수첩에는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글들이 남겨져 있어. 세뇌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야.

이번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 대해 북한은 뭐라고 했을까? 이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땐, 훈련 중의 잠수함이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라며, 잠수함이랑 승무원들 당장 돌려보내라고, 안 그러면 배로 갚겠다고 협박을 했대. 그러다 사건이 종결된 12월에는 미국이 중재를 해서 공식 사과를 하긴 했어. “막심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잠수함 사건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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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사과하고 거리가 먼 북한이기에, 이 정도만 해도 이례적인 일이었대. 그래서 우리 정부는 이 사과를 받아들이고 무장공비 24명의 유해를 북한으로 넘겨줬어.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 조타수 이광수는 본인의 뜻에 따라 한국에 귀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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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릉 무장공비 사건은 끝인 줄 알았어.

14년이 지난 2010년, 북한이 난데없이 영화 한 편을 공개해. 사살된 무장공비를 자폭 영웅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선전에 이용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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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임무 수행 중 뜻밖에 들이닥친 폭풍에 떠밀려 남쪽으로 흘러가 적들의 포위에 들었을 때, 누구도 명령한 사람은 없었건만 전사들 억세게 틀어쥔 자폭의 수류탄.”

“20여 년 전 온 세상을 놀라게 했던 강릉의 자폭 용사들.”

“용감히 싸우다 희생된 25명 전사들의 영웅적 의거는 오늘도 빛을 뿌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선전 영화 내용 중-

49일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총 27명이 부상을 당하고 18명이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여전히 그날의 고통에 갇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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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작전했던 시기가 오면, 꿈에 나타난다. 총알이 날아온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어. 그다음에 서형원 대위.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고 있더라. 그런 것들이 자고 일어나면 너무 힘들다.” -박경상 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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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탈영이었으면 좋겠다. ‘어디 가서 그냥 우리 연락하지 말고 너 잘 살아라’ 그런 생각도 했다. 동생의 빈자리가 너무 크니까.” -표종욱 상병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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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면, 우리 아들 사진을 보고 ‘엄마 들어왔다’ 그런다. 살아있는 것처럼. 그런 마음을 누가 알겠나”, “미칠 거 같다.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날이 흐리면 흐린 대로 너무 떠오른다. 이건 죽어야 잊을 수 있을 거 같다.” -강정영 병장 부모님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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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전용사 지원] 목숨을 걸고 오늘의 평화를 일궈낸 소년들의 이야기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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