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정우성은 진화한다 | 뉴스

by Idol Univ

정우성

배우 정우성은 인터뷰 내내 이정재를 ‘월드 스타’라고 칭하며 높였다. 14년 만의 칸영화제 초청이 “친구를 잘 둔 덕분”이라며 자신을 낮추는 겸양을 보이기도 했다. 정우성은 ‘감독 이정재’에 대한 존경과 ‘배우 이정재’에 대한 신뢰, 그리고 ‘친구 이정재’를 향한 자부심을 모두 보였다.

배우가 감독에게 대해 존경과 예의를 표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우성과 이정재의 관계는 단순히 배우와 감독 사이로 보기엔 그 범위가 좁다. 그도 그럴 것이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23년 전 영화 ‘태양은 없다'(1999)로 만나 절친이 됐고,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동반 성장했다.

이정재는 지난해 ‘오징어 게임’으로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과거 해외 진출만 하면 으레 따라붙던 이름만 ‘월드 스타’가 아니다. 이정재가 주연을 맡은 ‘오징어 게임’은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가장 성공한 드라마였고, 이정재는 그 작품에서의 활약으로 미국 배우 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의 남우주연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사인 세례를 받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그 콧대 높은 미국 대중문화계에서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이 모든 게 계획된 여정은 아니었으나 배우 이정재로 정점을 찍은 이후의 ‘넥스트 스텝’은 감독 데뷔였다. 그의 첫 영화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와 김정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

헌트

감독 이정재의 픽(Pick)은 정우성이었다. 이정재는 시나리오를 쓰며 ‘김정도’ 역할에 정우성을 일찌감치 염두에 뒀다. 단순히 친구라서가 아니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 속 인물을 현실로 구현해줄 최적의 배우가 정우성이기 때문이었다.

정우성은 몇 차례 ‘헌트’의 출연을 고사했으나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전세계 영화인 앞에서 첫 선을 보였다. 스포트라이트의 대부분이 이정재에게로 향했다. 스타 배우의 감독 도전, 준수한 완성도라는 화제성에 힘입은 결과였다.

정우성은 그런 친구의 행보를 옆에서 지켜보며 기꺼이 박수쳤고, 어느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다. 너도 나도 잘났다고 하는 연예계에서 일말의 질투없이 동료의 성공에 박수를 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우성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21일 오전(현지시간)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 팔레 드 페스티벌 인터뷰룸에서 만난 정우성은 “(이)정재 씨가 감독으로서 고독한 시간을 보낸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기에 ‘헌트’의 공식 상영이 끝난 후 꼭 안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정우성 이정재

정우성은 ‘헌트’가 정우성과 이정재의 ’23년의 재회’로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하기 전 가장 고민했던 지점도 개인사적 의미를 넘어 영화적 가치까지 획득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재고였다.

“어느 정도 준비했지만 ‘드디어 작품으로 다시 만났어!’하고 우리끼리만 즐기면 안되지 않나.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그때서야 우리의 23년 만의 조우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정재 감독은 누구보다 배우 정우성을 잘 알고 있기에 어느 영화보다 멋지게 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정재는 정우성이 시나리오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알아서 연기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오랫동안 옆에서 봐온 정우성을 ‘정도’에 투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저는 그것을 수용했다. 굳이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요?’라고 묻지도 않았다. 그러면 나 스스로 정도에게 다가가는 게 선입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도 내게 뭘 제시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시나리오를 해석한 대로 연기했으면 하셨다”

헌트

‘헌트’는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을 관통한 주요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며 시대의 비극 안에서 신념 때문에 갈등하는 두 인물을 다룬다.

정우성은 군에 오랫동안 몸담았다가 안기부로 갓 들어온 팀장 ‘김정도’로 분했다. 자기만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원칙주의자다.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또 다른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대립각을 세운다.

자신이 연기한 김정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 비밀을 품고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때때로 날이 선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근데 그 날섬은 자기가 품고 있는 비밀에 대한 긴장감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긴장감은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관객들도 그것을 느끼며 영화를 즐기길 바랐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시대극 출연이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우성은 “스파이 물이지 않나. 한반도에서 스파이물은 어느 시대로 갈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에 놓느냐에 대한 선택의 지점일 뿐이지 시대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정우성은 속을 알 수 없는 ‘김정도’ 역할을 맡아 고도의 심리전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줬다. 뿐만 아니라 동물적 감각의 액션신을 대부분 대역 없이 소화하며 첩보 액션 영화의 볼거리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육탄전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액션은 물리적 체력의 저하로 긴 시간을 촬영하지 않아도 바로 지친다. 단, 정신적 체력은 서로의 경험과 경력이 있다 보니 과거보다 좀 더 좋아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액션은 총을 이용한다던가 사운드를 이용한다던가 외부에서 도와주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심리 연기는 배우 스스로가 해내야 하는 것이기에 그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고 답했다.

영화 헌트 스틸컷

정우성은 이정재의 감독 도전에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2014년 단편 영화 ‘킬러 앞에 노인’으로 영화 연출을 시작했고 ‘헌트’보다 앞서 장편영화 ‘보호자’를 완성한 그는 감독 선배이기도 하다.

“배우가 감독을 하는 건 영화인으로서 자연스러운 도전이지만 영화를 잘못 이해하거나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지가 오래됐다고 연출까지 하는거야?’라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배우들의 감독 도전은 어떻게 보면 더 용기가 필요한 지점이 있다. 나야 어릴 때부터 ‘한 작품에서 끝나지 않으리. 도전은 계속된다’는 마음으로 뻔뻔하게 임한 측면이 있다. 이정재 감독도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이 먼저 경험했다고 해서 섣불리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경계했다고 했다. 그는 “(이정재와) 친하다고 해서 의견을 내는 것은 감독의 주제의식을 훼손할 수 있다. 그런 것은 영상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입증이 된다. 그래서 감독을 기다리며 답답해하거나 ‘왜 저걸 못 보지?’ 참견하기 시작하면 영화의 본래 뜻이 오염된다. 옆에서 기다려야 한다”라며 ‘감독 이정재’의 아이덴티티와 개성을 존중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우성은 “(이) 정재씨가 마음대로 하는 게 감독인 줄 알았는데 포기하는 직업이라는 걸 알았다고 하더라. 촬영장에서 계속 포기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파김치가 돼 ‘죽겠다’고 하더라. 겉으로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웰 컴 투 더 헬'(지옥에 온 걸 환영해)라고 외쳤다. 왜냐하면 나도 ‘보호자’ 때 경험을 해봤으니까 고소하더라(웃음)”라고 농을 치기도 했다.

지근거리에서 오랜 기간 바라본 친구 이정재는 어떤 사람일까. 정우성은 “도전 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가 선택했던 작품들에서 어떤 연기를 하는지를 볼 때마다 자극도 받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 역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누구보다 많이 칭찬 해준다”라고 말했다.

또한 가장 많은 사적 시간을 할애한 친구로서 “좋아하는 술 취향도 비슷하다. 예전에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조조영화로 본 뒤 오전부터 엉엉 울면서 낮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작은 사적인 시간을 공유하며 여기까지 왔다”고 술과 영화, 대화로 보다 단단해진 우정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우성은 인터뷰 내내 ‘감독 이정재’, ‘친구 이정재’에 대한 칭찬에 여념이 없었지만, 스스로가 이정재에게 준 영향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겸손을 보였다.

헌트

‘도전’이라는 단어는 이정재만큼이나 정우성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정우성은 배우로서의 작품 선택뿐만 아니라 연출, 제작 등 늘 남보다 앞서 도전적인 선택들을 해왔다. 또한 인기나 이미지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모두들 말리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일, 사회 활동 등에도 앞장 서왔다.

남들보다 앞서 하는 선택은 잘 되면 칭찬을 받지만, 잘 되지 않으면 혹독한 비판이 따른다. 정우성의 선택들도 늘 성공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고, 내가 제안하는 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몰랐지만 당시 그걸 허용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적용해봤더니 나쁘지 않았다. 그런 과정들이 재밌었고, 용기가 생기더라. 그렇게 여기까지 왔던 것 같다”

도전하고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들을 거쳐야 함에도 계속해서 도전하는 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우성은 “감사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애가 세상에 나와서 운이 좋아서 영화배우가 됐다. 현장 사람들이 궁금해서 관찰을 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동료애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정우성

그러나 이런 여정들은 의도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우성은 “나에게 허락되는 것이 있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만 있으면 도전했던 것 같다. 어떤 제작자, 어떤 감독이 되겠다고 비전을 두고 꿈꾼 적은 없다.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투자를 두려움 없이 해왔을 뿐이다. 경험이 쌓였으니 또 다른 작품을 찾아 도전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정우성이라는 배우는 ‘스타의 원형’ 같은 존재감으로 28년을 대중 곁에 있어왔다. 또한 후배들에게 가장 본받고 싶은 선배로 꼽히며 ‘스타들의 스타’로 불리기도 했다.

대중들이 왜 이 배우를 아끼고 사랑할까. 배우들은 왜 그에게서 긍정적 영향을 받는가. 답은 명확하다. 정우성은 28년 동안 크게든 작게든 진화를 거듭하며 대중, 동료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를 증명해왔다.

오로지 영화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살고 있는 듯한 그에게 힘들지 않냐고도 물었다. 돌아온 답은 “피곤한데 제일 재밌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였다. 영화가 삶 자체일 수도 있겠다는 말에 그는 주저 없이 “그렇다”고 말했다.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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