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2일 방송된
‘꼬꼬무-빙고호텔 VIP룸 비밀 캐비닛 1303’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온주완, 가수 미노이, 카라 출신 한승연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스물넷의 탈영병 윤석양
때는 1990년 9월 29일 서울. 박상규 목사는 평소 절친했던 선배 목사에게 부탁을 받았어. 한 청년의 도피 생활을 도와달라는 거야. 박 목사는 고민 끝에 그 부탁을 수락했어.
박 목사가 청년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는 10월 4일,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어. 약속 장소는 서울 시내의 한 건물. 박 목사는 건물 로비에서 기다렸어.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한 남자가 내렸어. 파마 머리의 젊은 남자는 얼굴은 너무 순진하게 생겼는데 어딘가 초조해 보였어. 박 목사는 그 청년을 믿을 만한 옛 스승에게 데리고 가 맡겼어.
이 청년, 정체가 뭘까? 그 사람의 사진을 보여줄게.
이 청년의 이름은 윤석양. 나이는 스물넷이야. 이 순해 보이는 청년의 정체는, 놀랍게도 ‘지명수배자’야. 입대한 지 4개월 만에 탈영해 전국에 수배가 내려져 도망다니고 있어. 지금 이등병 신분이야. 이 탈영병을 목사가 나서서 숨겨주고 있어. 어딘가 좀 이상하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빙고호텔’로 끌려온 윤 이병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7년.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윤석양은 신촌에 있는 독수리다방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어. 15분이 지나자 윤석양은 신문을 접고 일어났고, 이번엔 홍대 앞 다른 다방으로 갔어. 거기서 또 신문을 펼쳐 보기 시작했어. 그때 한 남자가 윤석양한테 다가와 테이블 위에 볼펜을 쓱 굴렸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어. “안녕하세요, 김정수입니다”라고 인사하는 상대방에게 윤석양은 대답했어. “안녕하세요, 최종규입니다” 두 사람 모두,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인사를 나눴어.
윤석양이 최종규라는 가명을 쓴 것처럼, 김정수라고 가짜 이름을 밝힌 사람의 정체는 85학번 대학생 조재은. 신문도 볼펜도, 비밀 접선을 위한 수단이었어. 이들은 모두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이었어. 1987년은 민주화 열기가 절정이었던 만큼, 대학생들에 대한 단속이 엄청 심했던 시절이야. 학교 앞 복사집에 위장 취업한 경찰이 있었고, 서울대 앞에 있던 ‘모비딕’이란 주점은 주인과 직원들이 전부 군인인데 신분을 숨기고 일하며 몰래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대. 이렇게 감시가 심하니,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들도 진짜 이름을 숨기고 은밀하게 만날 수 밖에 없었어. 그래야 혹시 한 사람이 잡혀도, 다른 사람의 정보가 넘어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러다 1990년 5월, 윤석양은 입대했고 강원도 철원에 자대 배치를 받았어. 하루는 열심히 도로 보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지프차 1대가 들어오더니 윤석양한테 타라고 해. 얼떨결에 차에 탔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대공상담소. 간첩 관련 일을 처리하는 보안부대야.
윤석양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들은 “어서 와라 최종규”라고 말했어. 윤석양의 가짜 활동명을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미 다 알고 왔으니,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고 했어. 그를 협박한 이들은 국군 보안사령부의 수사관들. 보안사는 군 내의 정보기관으로, 당시 힘이 어마어마했어.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도 보안사령관 출신이야.
보안사 수사관들은 입대 전에 학생운동을 했던 윤석양을 조사하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같이 운동했던 동료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어. 윤석양이 모른다고 하자, 이들은 다시 그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했어. 용산 서빙고동에 있는 ‘서빙고 분실’이었어. 이곳은 ‘빙고호텔’이라고도 불렸어. 이 건물 안에 VIP실이 있는데, 강도 높은 고문이 필요할 때 데려가던 곳이래. 영화 ‘1987’ 봤어? 거기서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 사망한 곳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지. ‘서빙고 분실’은 그곳과 함께 2대 고문 수사실로 불리며, 없던 죄도 자백하게 만든다는 무서운 곳이야.
▲ 보안사에 결국 모든 걸 털어놓은 젊은 청년
수사관들은 윤 이병을 협박하기 시작했어. 같이 운동하던 박철민 선배가 어디 있냐고 물어. 수사관들은 모른다고 잡아떼던 윤 이병을 홍대 앞 커피숍으로 데려갔어. 거기서 홍대 정문을 바라보다가 철민 선배가 보이면 가리키라고 시켰어. 윤 이병은 철민 선배가 나타나지 않기 간절히 기도했어. 그런데 바로 그때,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어. 박철민 선배가 나타난 거야. “너 봤지? 똑바로 얘기해!” 윤 이병은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려 선배를 가리켰어. 그 순간 수사관들은 선배를 향해 우르르 뛰어갔어. 윤 이병은 완전 넋이 나갔어.
다음 날 수사관들은 윤이병을 다시 불러 책상 위에 학생들 사진이 붙은 학적부를 펼쳐 보였어. “여기서 네가 아는 얼굴 하나씩 짚어봐”. 윤 이병은 사진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집요하게 묻는 수사관들에게, 그냥 아는 대로 다 불었어. 윤 이병은 이미 다 내려놓은, 자포자기 상태였어.
윤석양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 선배들이 잇따라 잡혀왔고, 며칠 후 보안사는 ‘반국가단체를 결성한 불순한 대학조직, 일망타진’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어. 당시 총 48명이 검거됐어. 이에 보안사는 기세등등 축제 분위기였어. 수사관들은 다 승진까지 했대.
이후 보안사는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한 윤석양에 대한 시선을 바꾸었어. 술 한잔 하러 가자며, 서울대 앞 위장주점 ‘모비딕’으로 데려가 술도 사줬대. 당시, 윤 이병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날을 기록하려니 손이 떨린다. 지우려 애써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지워질 수도 없고 지워져서도 안 되는 사실을 지우려 하니까 말이다. 지우는 것이 고통이었으며 지워지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증인이 없으니 보안사가 매도한 거라고 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그러나 증인은 있었다. 나였다. 양심의 소리는 아주 작고 고요하지만, 때로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듣기조차 거북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윤석양 수기 中-
▲ 보안사 캐비닛에서 발견한 1,303명의 신상 기록
이후 보안사는 윤 이병에게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어. 윤 이병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 눈치껏 청소도 하고, 수사관들이 심심할 땐 바둑친구도 해주며 보안사의 일원이 됐어. 그러던 어느 날, 윤 이병에게 보안사가 검거한 운동조직에 대해 보고서를 써보라는 일이 주어졌어. 보고서를 쓰던 윤 이병이 자료가 더 필요하다고 했더니, 2층 분석반으로 가보라고 해. 보안사의 기밀문서를 관리하는 곳이야. 윤 이병이 보안사 기밀에까지 접근하게 된 거야.
분석반 사무실에는 캐비닛이 여러 개 있었어. 며칠 후 분석반 직원이 캐비닛 자료 정리를 도와달라고 해서, 윤 이병은 일을 도왔어. 번호대로 자료를 정리하면 된대. 그런데 자료에서 낯익은 이름들이 포착됐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그 이름 옆에는 번호가 적혀 있어. 김영삼 221번, 김대중 283번, 노무현 295번. 이 번호 뭐야? 하는 순간, 직원이 황급히 자료를 뺏더니 캐비닛을 열쇠로 잠가버렸어.
윤 이병은 속으로 외쳤어. “드디어 찾았다!”
윤 이병이 왜 보안사 일을 하겠다고 했는지 알아? 보안사에서 일을 하며 비밀을 알아내 세상에 알리겠다고 딴 생각을 한거야. 그래야 친구들에 대한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지. 윤 이병은 그날 밤, 몰래 분석반에 다시 들어가 캐비닛을 열었어. 카드마다 사람 이름과 일련번호가 쫙 써있어. 번호가 무려 1,303번까지 있어. 그 안에 1,303명의 신상 기록 카드가 있는 거야. 유명 정치인부터 언론인, 변호사, 종교인, 학생들까지 다양한 이들의 기록이 담겨 있었어. 그리고 카드 옆에는 이들의 모든 정보가 담긴 수십 장의 플로피디스크가 발견됐어. 윤 이병은 이걸 세상에 알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윤 이병은 선택한 방법은, 탈영이었어.
윤 이병은 자료들을 들고 목숨을 건 탈영을 감행했어. 다행히 탈영은 성공했고, 보안사는 발칵 뒤집혔지. 보안사는 윤 이병을 찾기 위해 그의 가족들과 지인들을 압박했어. 윤 이병은 위장을 위해 미용실에 가서 파마부터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어.
▲ 윤석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물타기’로 대응한 정부
탈영 4일째. 윤석양은 지인을 통해 한겨레신문사의 김종구 에디터와 접촉했어. 그리고 김 에디터는 윤석양이 가져온 자료들과 그의 이야기가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직감했어. 김 에디터는 이를 세상에 밝히기 위해 윤 이병의 에디터회견을 준비했어. 특히 그는 지명수배 중인 윤 이병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도움을 청했어.
하지만 보안사의 감시는 KNCC에까지 닿았어. 미행, 도청은 기본이고, 사무실 맞은편 건물에 방을 잡고 지켜보기도 했어. 어떻게 보안사를 따돌릴지 고민하다가, 김종구 에디터와 KNCC는 10월 4일,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기습 에디터회견을 진행하기로 했어. 추석 연휴라 KNCC 사무실이 텅 비게 되자, 보안사는 에디터회견이 없을 거라고 안심하고 빈틈을 보였지. 이때 극소수의 인원이 움직여 윤 이병의 기습 에디터회견을 열었어.
우여곡절 끝에 에디터회견이 시작됐고, 윤석양은 “보안사가 동향 파악 대상자를 분류해 주요 활동을 감시, 매달 동향 관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어. 자신이 목숨 걸고 가지고 나온 자료까지 모두 공개했어. 당시 보안사가 작성한 실제 기밀문서를 보면, 엄청 세밀하게 적혀있어. 언제 어디서 누구랑 밥을 먹었는지, 심지어 자택의 도면까지 그려져 있어. 보안사는 동양 파악 대상자에 요원을 한 명씩 배정해 집중 감시했고 관찰 대상자에 등급을 매겨 분류했어.
보안사가 이렇게 1,303명이나 사찰한 것은 ‘청명계획’의 일환이었어.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 유사시 정부에 반하는 인물을 즉각 검거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지. 에디터회견 다음날,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혔고, 보안사 불법 사찰 규탄 국민대회가 열렸어. 윤석양의 양심선언 3일 만에 국방부 장관이 물러나고 보안사령관도 경질됐어. 그러자 사람들의 눈은 이제 대통령에게 향했어.
에디터회견 8일 만에 국민 앞에 선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어. 영화 ‘범죄와의 전쟁’ 알지? 범죄를 근절시킨다는 대통령의 선언에 따라 전국적으로 조직폭력배들을 소탕한 것. 보안사 사찰을 얘기하는데, 갑자게 웬 범죄와의 전쟁? 일명 ‘물타기’ 작전을 펼친거야. 그날 이후로 TV를 틀면 조폭 검거 소식이 쏟아졌고, 보안사 민간인 사찰사건은 그렇게 잊혀졌어.
그럼 윤 이병은 어떻게 됐을까? 도피 생활이 시작됐어. KNCC 목사님들은 발 벗고 그에게 도움을 줬어. 윤 이병은 일각에서는 양심선언을 한 정의로운 자, 또 다른 곳에서는 변절자로 비쳐졌어. 폭로만 하고 나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러지 않았어.
혼란스러웠던 윤석양은 KNCC의 보호를 거절하고 먼 시골로 내려가서 낮에는 농장 일을 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보냈어. 그래도 고민은 풀리지 않고 더 뒤죽박죽이 되었어.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 날, 지인의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만남을 가진 윤석양. 그런 그 앞에 보안사 수사관이 다가왔어. 보안사 수사관들은 그동안 줄곧 윤석양의 지인들을 미행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윤석양의 도피 생활이 끝났어.
▲ 아담의 곪은 사과
윤석양은 특수근무이탈죄로 2년 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에 수감됐어. 윤석양은 거기에 있으면서, 수감자들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걸 목격했어. 처음 감방에 간 신참들은 엄청 눈치를 보고 고참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그 안에서 시간이 지나 자신이 고참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신참들을 괴롭혀. 같은 사람인데 몇 달 만에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그 모습을 보며 윤석양은 생각한 거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인간이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2년 후 출소한 윤석양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미친 듯 책을 읽었대. 그러던 어느 날 깨달음을 얻었어.
“2003년 여름 밤의 일이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는 어떤 감정을, 오랫동안 응어리졌던 그 감정을, 미음과 증오를 씻어내는 것 같았다” –윤석양 수기 中-
윤석양은 그날부터, 수기를 쓰기 시작했어. 수기의 제목은 ‘아담의 곪은 사과’.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절대 먹지 말라던 선악과를 뱀에 꼬임에 빠져 먹게 되지. 그 뒤에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쫓겨났고, 그때부터 인간에게 고통이 시작됐어. 윤석양은 인간으로서 가장 큰 고통은,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우리 내면에는 선과 악이 뒤엉켜 있고, 그걸 무 자르듯 구별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는 거지. 선악과를 먹으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가 되어버렸지. 그래서 아담이 먹은 과일은 곪은 사과가 아닐까, 생각한 거야.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이중적인 존재다, 서빙고 분실의 나약한 윤석양과 양심선언의 용기를 보여준 윤석양, 둘 다 자신이며 그 어떤 것도 지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
‘꼬꼬무’ 제작진은 최근 윤석양 씨를 만났는데, 방송에 나오는 걸 거절하셨대. 그리고 자신이 했던 양심선언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청년이 살기 위해 한 선택일 뿐’이라며 하셨대.
과거 친구의 밀고로 구속됐던 조재은 씨는 이렇게 말해.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이야길 해주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자기들이 원하는 정보가 나올 때까지 고문을 가할 것이고, 그 종착역은 죽음이거나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나. 그럼 말을 한 내 친구가 잘못한 게 아닌, 그렇게 시킨 권력이 잘못한 거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내 친구를 원망하면 안 된다.”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