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 ‘꼬꼬무’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빙고호텔 비밀 캐비닛 속 진실은?

by Idol Univ

윤석양 이병이 밝히고자 한 진실은?

12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빙고호텔 VIP룸 – 비밀 캐비닛 1303’이라는 부제로 한 청년의 그날을 조명했다.

1990년 9월 박상규 목사는 평소 절친했던 한 선배 목사에게 부탁을 받았다. 한 청년의 도피 생활을 도와달라는 것. 이에 박 목사는 긴 고민을 했고, 고민 끝에 이를 수락했다. 도피 생활 중인 청년은 24살의 윤석양. 그는 탈영한 지명수배자였다.

군 입대 전 운동권이었던 윤석양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지프차를 타고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대공상담소. 이곳은 간첩 관련 일을 처리하는 보안부대였다.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들은 윤석양의 활동명인 최종규를 언급하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협박했다. 그를 협박하는 이들은 국군 보안사령부의 수사관들. 당시 힘이 어마어마했던 보안사령부는 전두환, 노태우 등이 소속되었던 곳이었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윤석양에게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에 대해 캐물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자 용산의 서빙고에 위치한 한 건물로 데려갔다. 이곳은 서빙고 분실 보안사 대공처 6과였고 일명 빙고호텔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빙고호텔은 없던 죄도 자백하게 만든다는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2대 고문 수사실로 불리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수사관들은 윤석양에게 협박을 거듭했고, 이에 윤석양은 함께 운동했던 동료들에 대한 정보를 다 털어놓았다.

이에 그와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 선배들이 잇따라 잡혀왔고 며칠 후 보안사는 총 48명을 잡았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보안사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보안사는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한 윤석양에 대한 시선을 바꾸었다.

이후 보안사는 윤석양에게 함께 일하기를 제안했고, 윤석양은 보안사의 기밀문서에까지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다다른다. 그리고 윤석양은 보안사의 기밀문서들이 관리되는 분석반에서 의문의 캐비닛을 발견한다.

윤석양은 캐비닛 속에 가득한 의문의 번호가 붙은 자료들을 포착하고 크게 놀란다. 그 자료에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익숙한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이는 바로 1천303명의 신상 기록 카드였다.

유명 정치인부터 언론인, 변호사, 종교인, 학생들까지 다양한 위치의 이들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카드 옆에는 이들의 모든 정보가 담긴 수십 장의 플로피디스크가 발견됐다.

정부에 반하는 이들의 정보가 모아진 것을 발견한 윤석양은 이를 세상에 알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가 택한 방법은 바로 탈영. 그는 모든 자료를 들고 목숨을 건 채 탈영을 감행했다.

윤석양의 탈영으로 비상이 걸린 보안사는 윤석양을 찾기 위해 그의 가족들과 지인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윤 이병은 위장을 위해 파마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에 윤석양은 지인을 통해 한겨레신문의 김종구 에디터와 접촉한다. 그리고 김종구 에디터는 윤석양이 가진 자료들과 그의 이야기에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김종구 에디터는 이를 세상에 밝히기 위해 윤 이병을 보호하며 에디터회견을 준비했다. 특히 그는 지명수배 중인 윤석양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KNCC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보안사의 감시는 KNCC에까지 닿았다. 이에 김종구 에디터는 이들이 방심한 틈을 노렸다. 10월 4일 연휴의 마지막 날 기습 에디터회견을 진행했고, 윤석양은 “보안사가 동향 파악 대상자를 분류해 주요 활동을 감시, 매달 동향 관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군에서 가지고 나온 자료까지 모두 공개했다.

당시 보안사는 동양 파악 대상자에 요원을 1명씩 배정해 집중 감시했고 관찰 대상자에 등급을 매겨 분류했다. 그리고 이는 모두 청명계획의 일환이었다. 유사시 정부에 반하는 인물을 즉각 검거하기 위함이었던 것.

에디터회견 다음날 대한민국은 발칵 뒤집히고 보안사 불법 사찰 규탄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에 국방부 장관이 물러나고 보안사령관도 경질됐다. 그러자 이제 시선은 대통령에게 향했다.

에디터회견 8일 만에 국민 앞에 선 노태우 전 대통령. 그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물타기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보안사 민간 사찰을 잊히고 말았다.

이에 윤 이병의 도피 생활이 시작됐고 KNCC 목사님들은 발 벗고 그에게 도움을 줬다. 윤 이병은 일각에서는 양심선언을 한 정의로운 자, 또 다른 곳에서는 변절자로 비쳤다. 폭로만 홀가분할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었던 것.

너무나 혼란스러웠던 윤석양은 먼 시골로 내려가서 낮에는 농장 일을 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고민은 풀리지 않고 더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어느 날 지인의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만남을 가진 윤석양. 그런 그 앞에 보안사 수사관이 다가왔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그동안 줄곧 윤석양의 지인들을 미행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도피 생활이 끝나고 윤석양은 특수근무이탈 혐의로 2년 형을 받고 육군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그는 교도소에서의 생활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2년 후 출소한 윤석양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미친 듯 책을 읽으며 어느 날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장 큰 고통은 구분하기 어려운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선악과를 먹고 선과 악의 구분이 더욱 어려워진 아담이 먹는 것은 곪은 사과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이중적인 존재로 서빙고 분실의 나약한 윤석양과 양심선언한 윤석양 둘 다 자신이며 그 어떤 것도 지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최근 제작진을 만난 윤석양은 자신이 했던 양심선언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벼랑 끝에 선 청년이 살기 위한 일일 뿐이라며 삶엔 무수하게 잡다하고 복잡한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있지만 그 안에 분명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고 나쁜 것과 덜 나쁜 것이 있다고 전해 큰 울림을 자아냈다.

과거 친구의 밀고로 구속됐던 그의 친구는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이야길 해주고 싶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가 나올 때까지 고문을 가할 것이고 그 종착역은 죽음이거나 실토 아니겠는가”라며 “말한 내 친구가 아닌 그렇게 시킨 권력이 잘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친구를 원망해선 안 된다”라고 친구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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