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산 감만동에서 발생했던 사건의 진실은 무엇?
5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질주 속 의문의 시그널’이라는 부제로 2016년 부산 감만동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혹 사건을 조명했다.
지난 2016년 8월 2일, 부산 감만동에서 일어난 급발진 의혹 사건. 이날 한무상 씨는 아내와 딸, 그리고 손자 둘과 함께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솔개다리 부근을 지날 무렵 타고 있던 차량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제어가 되지 않는 차량은 점점 무서운 속도로 달렸고 14초간의 질주 끝에 갓길에 정차해있던 트레일러에 그대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한무상 씨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고 그를 제외한 차량에 탑승해있던 일가족 4명은 모두 사망했다.
1989년에 운전면허를 취득해 27년째 운전을 했던 한무상 씨는 영업용 화물 트럭을 10년 넘게 몰았고, 사고 당시 택시 운전도 하고 있었기에 그를 포함한 가족들은 사고의 원인이 차량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를 목격한 주변 차량 운전자들이 충돌 직전까지 사고 차량의 브레이크등이 켜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진술과 사고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작동한 사고 차량의 브레이크등을 확인하고 운전자 한무상 씨의 과실로 가족들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한 운전자의 과실이라 판단했던 것.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운전자 한무상 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의 실험 결과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계속 밟았다면 추돌 시 속도가 100킬로 이상 되어야 하며 그런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계속 밟는다는 것은 경험칙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또한 국과수 검사 결과는 사고 이후 훼손된 차량을 검사한 것이라 사고 당시 상태와 다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운전자의 치사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2017년 7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 후, 유가족들은 사고 원인에 대한 진실이 알고 싶었다. 이에 유가족은 사고 차량의 제조사를 상대로 1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사고가 있고 몇 달 후 국회에서는 이 사고에 대해 운전자 과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익 제보로 인해 박용진 의원은 사고 차량의 부품 결함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봤던 것. 그가 제보자를 통해 입수한 것은 사고 차량의 제조사 내부 문건이었다. 내부 문건에 따르면 해당 모델 차량의 경우 고압연료펌프 누유로 인해 경유가 엔진오일과 섞이게 되고, 이것이 다시 연소되면서 이른바 ‘오버런(엔진이 정상 회전수보다 더 높은 속도로 회전하는 상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이를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유가족은 바로 이 오버런 문제로 인해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며 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4년 반 동안 이어진 법적 공방 끝에 지난 1월 재판부는 유가족 측이 차량 결함에 따른 사고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며 패소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포기할 수 없었고 다시 항소했다. 그날 무엇이 가족을 모두 잃게 했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제작진은 그날의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했다. 이에 박성지 전 국과수 교통사고 분석과장은 “페달 에러가 발생하는 경우는 브레이크 페달로 옮겨 밟는 것밖에 없다”라며 사고의 운전자의 과실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또한 하종선 변호사는 운전자가 급발진 상황에 있을 때 회피 동작을 했느냐가 급발진을 구분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라며 경적을 울리는 것도 회피 동작이라고 운전자가 경적을 울렸음을 강조했다.
재판부 역시 운전자가 회피 반응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재판부는 사고 직전 도로 위의 행인을 보고 핸들 조향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날 사고 차량을 피했던 목격자는 “나를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충돌 직후 운전하시는 분이 의식이 없었던 거 같다. 그러다가 정신이 차려졌는가 무의식적으로 경적을 계속 울리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확실한 회피 반응인 브레이크 작동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운전자의 주장과 달리 국과수는 차량의 브레이크등이 꺼져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당시 국과수는 사고 목격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토대로 브레이크등 점등 여부를 분석했으나 브레이크등이 켜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사고 차량과 동일한 모델로 동일한 조건에서 블랙박스로 녹화했다는 국과수. 하지만 자료 분석 결과 사고 당시와는 다른 환경에서 해상도가 동일하지 않은 블랙박스로 영상을 녹화한 것으로 드러나 이를 가지고 사고 당시 브레이크 점등 여부를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고 당시 교차로 인근의 매장에서 근무했던 제보자는 당시 사고를 목격하고 급발진 사고라고 느꼈다고 했다. 이에 제보자는 “브레이크를 안 잡은 상태가 아니었다. 브레이크 등은 내가 봤다. 충돌하는 순간에도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 있었다”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제보자는 목격자들 중에 자신처럼 브레이크등을 본 이가 있다고 생각해 사고 당시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최근 민사 소송의 결과가 알려진 뒤 어쩌면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제보를 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재판부가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 증인으로 참석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취재 중 제작진은 경찰이 운전자의 과실 근거로 내세운 진술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시 주변의 차량 운전자들은 경황이 없어 브레이크 점등 여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설명을 했지만 경찰은 트레일러와 충돌하는 순간까지 브레이크등이 켜지지 않았다는 수사 보고를 남겼던 것.
해당 사건 이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동일한 차량을 운전하며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글이 게재됐다. 그리고 글쓴이는 이를 고압연료펌프 때문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차량 제조사 측은 공학적으로 볼 때 이 같은 주장은 오해라고 했다. 또한 엔진 오버런 현상과 브레이크 시스템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엇갈렸다. 제조사 측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했고, 반대의 의견을 내기도 했다.
2015년 사고 차량과 동일한 차종으로 오버런을 경험했다는 제보자는 “증상이 일어나기 전에 전조가 있었다”라며 “소음이 심해지고 차체의 떨림이 심해졌다”라고 했다. 그런데 차량의 진동은 부산 사고 차량에도 있었다. 사고 발생 약 10분 전 “차가 왜 갑자기 이리 떨리노”라며 이상 현상에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던 것.
그리고 제조사 측은 오버런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인 백연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사고 차량의 경우 오버런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주장했다.
취재 과정 중 한 전문가는 제조물 책임법 소송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표현했다. 소비자가 제조사를 상대로 제조물의 결함을 입증하기는 너무나 어렵고, 특히 3만 개가 넘는 부품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의 경우에는 더더욱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자동차 결함을 확인할 수 있는 기관은 국과수와 자동차 안전 연구원 정도인데 감정 의뢰 자격은 개인에게 허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방송은 해외처럼 자동차와 관련된 범죄만 국가의 수사기관이 전담하고 교통사고나 차량 분석과 관련한 감정은 국가가 공인한 자동차 전문 기관이 전담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아쉬워했다.
또한 재판이 시작되기 전 소송의 당사자들이 서로의 증거나 정보를 공개 요청해 수집하는 제도인 디스커버리 제도가 국내 법정에도 적용됐다면 어땠을까라며 “원고와 피고, 소비자와 제조사 모두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공적 기관과 제도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