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방송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마약왕국을 탈출한 빠삐용’이라는 부제로 문충일 씨 가족의 탈출기를 조명했다.
1995년 6월 10일 서울 한강공원에서는 물 위에 둥둥 뜬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주인공은 5일 전 집을 나갔다가 연락이 끊어진 스무 살의 문철 군. 뚜렷한 외상이나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에 경찰은 자살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지인들과 가족들은 문철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했다. 누군가에 의해 타살되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지목한 용의자는 바로 쿤사. 쿤사는 장치 푸라는 이름의 마약왕으로 태국,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전 세계 헤로인의 약 70%를 공급해온 거대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그렇다면 문철의 가족들은 왜 쿤사가 그를 노린 것이라 여긴 걸까? 사실 문철의 가족은 불과 1년 전 쿤사의 지역에서 극적으로 탈출해 한국으로 왔었던 것이었다. 문철의 가족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는 78년 전 1944년 중국 만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철의 아버지 문충일 씨는 평안북도 용천에서 3년 전 부모님을 따라 만주로 왔다. 일제의 수탈 때문에 떠나온 그의 가족들. 하지만 중국에서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유산계급으로 몰려 살기가 더 팍팍해진 문충일 씨의 가족. 이에 그의 아버지는 남한으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고 남한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 후로 아버지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충일 씨의 두 형들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자진 입대했다. 군인 가족은 혁명 가족으로 우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얼마 못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며 그의 형들은 북한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전했고 아버지처럼 소식이 끊어졌다.
어머니와 홀로 남은 충일 씨. 결국 그의 아버지 월남 사실이 적발되며 반동으로 몰려 핍박받았고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아버지를 찾아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충일 씨는 은밀하게 월남을 준비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밀고로 반혁명 죄로 체포된 충일 씨. 그는 2년 여의 감옥살이를 하게 됐고, 그 후 무려 18년 동안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우연히 만나게 된 아내 사이에서 문철 씨와 딸을 낳았고 핍박 속에서도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들은 충일 씨는 몰래 편지를 보내 남한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에 돕겠다는 답장이 전해지며 충일 씨는 또다시 월남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과 접촉한 사실이 밝혀지며 결국 가족들과 함께 중국에서 탈출해 미얀마로 향할 계획을 세웠다. 겨우 국경에 도착한 충일 씨 가족들은 강 하나를 눈앞에 두고 인근 숲에 숨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200미터 숲길을 나오는데 무려 3시간이 걸린 충일 씨 가족들. 그런데 갑자기 사방이 환해지며 충일 씨 가족들의 앞길을 밝혔다. 이들의 길을 밝혀준 것은 바로 반딧불이. 이에 충일 씨는 “반딧불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을 수 있는지. 반딧불이 덕에 앞으로 걸어갔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릴 돕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무사히 미얀마에 도착한 충일 씨 가족들은 불법체류자 신세로 국경에 위치한 메수야로 향했다. 중국인 난민촌에 자리 잡아. 중국인 교사로 위장 취업한 충일 씨. 그런데 그곳은 알고 보니 쿤사의 관할 지역이었다.
미얀마 정부와 내전 중이었던 쿤사는 툭하면 공개 처형을 했고, 이에 충일 씨 가족은 혹시라도 그들의 눈에 띌까 두려워 숨죽이고 살았다. 그런데 2년 후 조용하던 쿤사 지역에 한국의 사진작가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사회부 에디터.
쿤사 잠입 취재를 위해 등장한 정희상 에디터는 쿤사와의 접촉을 극구 말리는 현지 가이드의 의견대로 포기하고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정 에디터는 쿤사 지역 내에 만주에서 온 한국인이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시도했다. 그가 찾던 한국인은 바로 문충일.
그런데 충일 씨 가족은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될까 두려워 정 에디터를 경계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정체가 발각되면 공개 처형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던 것.
결국 얼마 못가 한국인인 것이 들통난 문충일 씨 가족.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중국인 지인은 빨리 도망가라고 일렀다. 이에 충일 씨는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방콕행 비행기 표를 구해 은밀하게 공항으로 떠났다. 그런 그들 앞에 나타난 누군가. 이는 바로 그들에게 도망가라고 알려줬던 중국인 지인이었다.
그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급히 무언가를 건네도 떠났다. 그가 전한 것은 바로 태국 돈. 본인의 목숨이 위험한데도 끝까지 친구를 걱정했던 것. 이에 충일 씨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온 게 못내 한이 된다고 했다.
무사히 방콕에 도착한 충일 씨 가족. 그 시각 메수야는 발칵 뒤집혀 그의 지인들을 닦달하고 협박해 충일 씨 가족의 거처를 추궁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뗐고, 이에 쿤사는 어디든지 꼭 찾아가서 죽여버린다는 이야기를 반드시 그에게 전하라고 했다.
같은 시각 서울의 정 에디터는 충일 씨 지인으로부터 그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곧바로 방콕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렵게 접선한 충일 씨 가족과 정 에디터. 정 에디터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남한행을 도왔다. 그는 관계 당국에 충일 씨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관계 당국은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
이에 정 에디터는 난민 자격을 인정받아 난민으로 망명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난민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중국의 박해, 쿤사 위협에 대한 증거 필요했고, 이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정 에디터가 생각한 방법은 여론에 호소하는 것. 그는 여러 보도를 통해 충일 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정을 밝혔고 이에 시민들은 서명 운동을 펼치고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그렇게 난민 심사 3개월 만에 난민 자격을 얻은 충일 씨 가족.
이에 1994년 8월 12일 무려 53년 만에 충일 씨는 고국 땅을 밟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를 찾는 일. 하지만 백방으로 찾아도 소식 한 자락이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인민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큰 형이 현재 남한에 있다는 것.
이 소식에 바로 형을 만나러 가려던 충일 씨. 그러나 그의 큰 형은 그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북에서 내려온 남파간첩이었던 그의 큰 형은 한국 정부의 전향 요구도 거부한 채 28년 간 감옥살이를 했었던 것.
그의 형은 “나의 조국은 오로지 북한뿐. 어떻게 조국을 버릴 수 있겠는가. 남한은 그에게 조국 통일을 방해하는 미국의 앞잡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동생은 조국을 버린 배신자였던 것.
그러나 이후 밝혀진 형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북한에 아내와 두 딸을 두고 남한에 홀로 떨어진 그의 큰 형. 한시도 가족들을 잊은 적 없던 그는 언젠가 북으로 다시 돌아가 가족을 만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북한을 배신한 동생을 만난 것이 북에 전해지면 가족들의 안전이 위협당하는 상황이었던 것. 이에 큰 형은 동생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충일 씨가 남한에 온 지 13년이 흐른 어느 날 그의 형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을 만나러 오라는. 지인의 설득에 마음을 돌린 큰 형은 동생 충일 씨와 만났다. 그런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너무나 달랐던 두 사람은 반가운 마음에 잡은 손을 두고 서먹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충일 씨는 그 후 몇 달에 한 번씩 형을 만나러 갔고 그때마다 그의 형은 가족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그의 형은 88세가 되던 해 끝내 고향의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올해 84가 된 충일 씨. 누구보다 파란만장했던 삶을 산 그는 “고비 때마다 귀인이 나타나 도와주고 오랜 세월 포기 않고 왔더니 좋은 날이 왔다”라며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믿는다”라고 자신을 도왔던 많은 이들을 떠올렸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야기 친구들은 “부끄럽다. 우린 조금만 힘든 일 있어도 포기해버리는데. 우리도 다 아는 말인데. 난 왜 그러지 못할까”라고 본인들의 삶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사람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도움을 받는 것 같다. 나만 잘 살고 있다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곳에서 길을 밝혀줄 반딧불이 같은 존재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라며 내 인생의 반딧불이는 누구일까 생각했다.
(연예뉴스 정은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