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오락관’ 몇대몇”…이상룡, 어떻게 ‘국민 MC’ 허참이 됐나

by Idol Univ

[*]

기사내용 요약


73세를 일기로 1일 별세…”간암 투병, 주변에 숨겨”

작년 11월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하며 방송 열정 불태워



associate_pic

[*] ‘가족오락관’ 허참. 2022.02.01. (사진 = 뉴시스 DB)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이재훈 에디터 = 1970년 전설의 명 DJ 이종환(1937~2013)이 운영하던 종로 음악다방 ‘쉘부르’. 막 제대한 이상룡은 취직하러 상경했다. 군대에서 각종 행사·공연의 MC를 보며 입담을 뽐내던 그는 DJ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곳에 들어갔다.

손님석에 앉아 있던 이상룡은 행운권 추첨을 위해 다방이 나눠준 탁구공에 적힌 숫자가 당첨돼 무대로 나갔다. MC가 이름을 묻길래 일부러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는데, 진행자가 “허, 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상룡은 “아 기억났다. 내 이름은 허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종환으로부터 발탁이 됐고 그때부터 이상룡은 허참이 됐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의 명 MC 허참(이상룡)이 73세를 일기로 1일 별세했다. 그는 편안한 입담과 항상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국민 MC로 통했다.

허참은 1984부터 2009년까지 무려 26년 동안 ‘가족오락관’ MC자리를 지켰다. 첫 회부터 최종회까지 고정이었고, 그가 자리를 비운 건 1980년대 중반 교통사고로 입원한 일주일뿐이었다.

그와 함께한 역대 여성 진행자는 무려 21명이다. PD는 31명이 거쳤고 방청객은 11만명이 다녀갔다.

‘가족 오락관’에서 탄생한 게임 코너만 450개가 넘는다. 특히 ‘대결! 뿅망치’ ‘이구동성’ ‘고요 속의 외침’ ‘스피드 게임’ ‘내 여자의 남자’ ‘도전 릴레이 노래방’ 등이 국민 게임으로 통했다. 허참이 게임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우렁차게 외쳤던 “최종점수 몇 대 몇”은 전국민이 아는 유행어다.

허참은 쉘부르에서 활약을 발판 삼아 1972년 TBC(동양방송) ‘7대 가수쇼’ MC로 정식 데뷔했다. TBC, KBS, MBC 등에서 수많은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associate_pic

[*] 허참. 2022.02.01. (사진 = 뉴시스 DB)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허참은 ‘가족오락관’이 막을 내린 이후에도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도전! 주부가요스타’ ‘젊음은 가득히’ ‘지붕뚫고 하이킥’ ‘빙글빙글 퀴즈’ ‘잉꼬부부 재치부부’ ‘트로트 팔도 강산’ ‘골든 힛트송’ 등이다. ‘싱글벙글쇼’ ‘푸른 신호등’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2017년 MBC TV ‘일밤-복면가왕’에 복면가수로 출연하는 등 말년에도 활발하게 활약했다. 고인은 2003년 ‘추억의 여자’로 데뷔한 가수이기도 했다. 1976년 이미 ‘왜 몰라주나’를 발표한 적이 있다. 2019년에 ‘아내는 지금’을 발표하는 등 꾸준히 노래 활동도 했다. 작년 KBS 1TV ‘가요무대’에도 종종 출연했다. 

마지막 출연 프로그램은 작년 11월 KBS 2TV ‘불후의 명곡- 전설의 명MC 특집’이다. 허참은 친한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간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방송과 주위 사람들에게 유쾌한 모습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TV진행자상(2005), ‘KBS 연예대상’ 공로상(2006)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지오아미 코리아 realpaper7@1.234.219.163

You may also like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