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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800명 지원자 뚫고 국립극단 시즌 단원 합격
“70대까지 연기…남은 10년의 새 출발”
‘이순재의 리어왕’서 ‘켄트 백작’ 존재감…진중함과 귀여움 매력
‘금조 이야기’·’세인트 죠운’ 두편 출연
“늘 배우로…재미나는 연기면 충분해”
[*] 박진희 에디터 = 2022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선발된 배우 박용수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2.01.22. pak7130@1.234.219.163
[*] 강진아 에디터 = “연극 두 편은 확실히 할 수 있잖아요. 남은 10년을, 완성도 있는 국립극단 작품으로 출발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40여년 연기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배우 박용수가 국립극단 시즌 단원에 지원한 이유는 명확했다. 45세라는 나이 제한이 폐지된 올해 그는 66세로 최고령 시즌단원이 됐다. 78세의 오영수, 88세의 이순재 등 노장 배우들의 활약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요즘이다. 무대와 영상을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얼굴의 중견배우이지만, 그에겐 무대가 필요했다.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는 “60세가 넘으면서 출연 의뢰가 굉장히 줄어들었다. ‘나 아직 괜찮은데 왜 이러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라며 “제가 열심히 해도 앞으로 75~76세가 최대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남은 10년을 국립극단 작품으로 출발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800명 몰린 시즌단원…40년차 베테랑 배우도 오디션
사실 지원서 작성부터 그에겐 난항이었다. 익숙지 않은 컴퓨터에 포기도 생각했다. 최대한 뒤로 미뤘지만, 해보자고 결심하고 자녀들 도움을 받아 마지막 날 부랴부랴 접수했다. 젊은 배우들 틈에서 두 차례 오디션도 봤다. 베테랑 배우도 어김없이 오디션은 떨렸다. 뒤돌아보니 그가 오디션을 본 건, 지난 세월 동안 한두 번이 다였다.
“발버둥이죠. 아직 좋은 맛을 보여줄 수 있는데 점점 안 불러주니까 절실했어요. 이건 서글픔을 넘어 위기감이에요. 더 해야 하는데, 자꾸 잊혀 가는 것 같으니까 일을 찾아 나선 거죠. 요새는 기대되고, 꿈에 부풀어 있어요.”
[*] 박진희 에디터 = 2022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선발된 배우 박용수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2.01.22. pak7130@1.234.219.163
지난해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비롯해 국립극단과 예닐곱 작품을 했던 그는 2015년 시즌단원제 시작 당시도 떠올렸다. 2014년 11월 국립극단의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공연을 하고 있었던 그는 당시 김윤철 예술감독에게 30~40대가 시즌단원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돌아보니 “연극은 40대부터인 것 같다”고 그는 웃었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안정적으로 맛을 내는 나이는 40부터가 아닌가 해요. 배우든 연출이든 작가든, 그때서야 맛이 나죠. 돌이켜보면 저도 50대에 가장 왕성하게 많은 작품을 했어요. 20~30대는 그 밑거름이죠.”
800여명이 몰린 이번 시즌단원에는 22명이 최종 선발됐다. 이들은 1년간 국립극단의 다양한 제작 공연에서 활약한다. 올해 개편된 시즌단원제는 각 작품에 맞는 배우 선발을 골자로, 출연작이 정해져 있다. 박용수는 ‘왕서개 이야기’ 등의 김도영 작가 신작으로 3월말 개막하는 ‘금조 이야기’와 10월에 선보이는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3년 만 연출작 ‘세인트 죠운’에 출연한다.
◆’이순재의 리어왕’서 ‘켄트 백작’ 존재감…진중함과 귀여움 매력
박용수는 지난해 12월 폐막한 ‘이순재의 리어왕’에서 충신 ‘켄트 백작’ 역으로 호연을 펼쳤다. 서울대 극예술동문 중심으로 만든 관악극회가 올린 공연으로, 이순재와는 연극 ‘돈키호테’ 이후 11년 만이었다.
[*]배우 박용수. 연극 ‘리어왕’ 공연 사진. (사진=관악극회 제공) 2022.01.22.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어떤 분이 평하는데 88세의 이순재, 76세의 최종률, 66세의 박용수 세 늙은 배우가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고 하더라. 그중 제가 제일 힘이 달린다. 최종률 형님과 이순재 선생님은 청년처럼 뛰신다. 공연이 세시간 반이었는데, 힘들더라. 다 해내는 이순재 선생님 때문에 넉 달 동안 힘들다는 소리도 한마디 못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솔직히 ‘켄트 백작’은 과거 공연을 보고 인상이 깊게 남은 역은 아니었다. 연습 첫날, “켄트 백작은 재미없다. 그렇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한 그는 무대에선 충신의 진중함과 하인으로 변장한 귀여움을 오가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귀여움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 공’을 하면서 체득했다고 했다.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이 다시 함께하자고 했을 때, 그는 ‘에스트라 공’을 하겠다고 답했다.
“20년 전에 했던 포조를 기대하신 것 같은데, ‘에스트라 공’을 하겠다고 했어요. 맨날 박용수는 점잖은 역만 하는데, 50대에 욕심을 낸 거죠. 놀란 눈으로 보더니 일주일 동안 답을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많은 대사를 하면서 최대한 어떻게 귀여울 수 있을까 탐구했고, 성공했죠. 어릴 때부터 발산 못 시킨 제 속의 장난기를 마음껏 펼쳤어요.”
‘리어왕’ 작품으로 박용수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확신도 가졌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인 그는 연기 활동 초반엔 목소리가 오히려 방해된다고 생각했다. 성악 발성처럼 대사하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느꼈고, 이를 없애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배우 박용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단 제공) 2022.01.22. *재판매 및 DB 금지
“잘못된 거였죠. 일부러 만들어낸 목소리가 아니기에 그냥 뱉으면 됐는데 말이죠. 이번에 ‘리어왕’에서 확실하게 벗어버렸어요. 윤기 있고 울림 많은 제 목소리로 연기하면 된다고 확신했죠. 마침 대극장이니까 (목소리를) 마음껏 신나게 뿌렸어요.”
◆”‘사단장’ 전문 배우 벗어나고파…사투리 쓰고 애환 있는 역할 원해”
배우로서 또 한 번 껍질을 벗은 건 2011년 연극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때였다. 당시 56세였던 그는 이 작품으로 처음 연기상을 손에 쥐었다.
부산이 고향인 그가 사투리로 연기한 첫 작품이었다. “고향 말을 쓰니까 너무나 자유로워졌다. 내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이 튀어나왔다”고 회상했다. 그가 처음 이 길에 섰을 땐 배우에게 표준어를 못 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고, 사투리를 고치느라 무척 애를 썼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했지만, 역시 마음 밑바닥에서 열리지 않은 억눌린 부분이 있구나 깨달았죠. 그때 칭찬도 많이 들었고 상도 처음 탔어요. 그런데 지금도 사투리 쓰는 역할은 잘 안 줘요. 정말 더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데 말이죠.(웃음)”
[*] 박진희 에디터 = 2022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선발된 배우 박용수가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2.01.22. pak7130@1.234.219.163
‘검사, 판사, 의사, 변호사,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사단장.’ 그의 연기 인생에 채워진 배역들은 소위 점잖고 많은 것을 소유한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사단장 역할은 그만하고 싶다. 심지어 병사 역할도 해본 적 없다”며 “남은 인생은 이제 점잖은 역 말고 서민적인 애환이 있는, 사람 사는 맛이 더 나는 재밌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1978년 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해 1980년대부터 무대와 영화, 방송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영화 ‘접속’,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여고괴담’, ‘효자동 이발사’, ‘공공의 적2’, ‘화려한 휴가’ 등과 드라마 ‘토지’, ‘대왕세종’, ‘아테나 : 전쟁의 여신’, ‘가면’ 등 다수 작품에 출연했다.
앞으로의 10년을 더 기대하고 있는 그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생생한 반응을 들을 때면 여전히 짜릿하다. “늘 배우로 살고 있구나 하는 정도면 된다”며 “이제 진짜 맛이 나오는데, 재미나게 연기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속도감은 느려질 수 있지만, 더 섬세해져요. 묘한 맛을 음미해보는 재미가 점점 생기죠. 그래서 젊은 배우가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요새 연기가 훨씬 재미있거든요.”
◎지오아미 코리아 akang@1.234.219.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