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다시는 다른 이에게 내 삶을 걸지 않겠다. 쉰이 훌쩍 넘은 지금 더 이상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정희’라는 이름의 진짜 ‘내 인생’을 비로소 시작하려 한다.” -에세이 ‘정희’(2017) 중에서-
서정희가 20년만에 화보 촬영에 나섰다. 1980년대 최고의 모델이었지만 가정에 충실한 삶을 살면서, 한동안 그의 커리어는 대중에게 잊혀졌다. 그런 그가 2015년 홀로서기 후, 무려 20년만에 패션 매거진의 화보 촬영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섰다.
디지털 매거진 지오아미코리아(GIOAMI KOREA)와 프랑스 감성의 패션 브랜드 카티아조(katiacho)의 컬래버레이션 화보를 통해, ‘서정희’라는 이름 석자를 대중 앞에 새롭게 새기는 것. 이번 화보의 컨셉트는 ‘1920년 프랑스 도빌로 떠난 휴가’로, 로맨틱하면서도 심플한 리조트 룩을 테마로 했다. 총 7벌의 의상을 선보인 서정희는 전성기 시절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때로는 꿈꾸는 소녀처럼, 때로는 우아한 발레리나처럼, 때로는 애수와 관능을 간직한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주인공처럼 변화무쌍함을 보여줬다.
화보 촬영이 진행된 네 시간이 ‘순삭’될 정도로, 짧지만 강렬한 여운의 옴니버스 영화를 본 기분이랄까? 이제야 자신을 찾고 세상을 향해 발을 디디는 서정희는 화보 촬영 전, “20년만에 화보를 찍어보는 건데,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올까요?”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는 겸손이자 기우였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너무 예쁘다”라는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것은 물론, “인생이 화보다”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천생 모델’이었다.
장시간의 촬영에 지칠 법도 한데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인터뷰에 응한 그는 “일년을 십년 같이 살려고 해요. 매일 도전하며 감사한 삶을 살 거예요”라며 웃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현재를 살고 있는 서정희의 화보와 인터뷰를 공개한다.
Q : 20년만에 화보 촬영에 나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평소 카티아조 디자이너의 의상을 사랑하고 즐겨 입어요. 마침 카티아조 측에서 26주년 기념 뮤즈로 선정해줘서 화보 촬영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네요. 카티아조 디자이너와의 오랜 인연과 믿음으로 용기를 내서 화보를 찍게 됐는데 정말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Q :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는데, 카티아조 스타일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A :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이란, 누굴 만나거나 집에서 입거나 하니까 일단은 편해야 하잖아요. 거기에 더해 자신의 체형이나 스타일의 장점을 돋보이게 하거나 단점을 가려주는 옷이 오래 사랑받는 것 같아요. 저는 발레를 좋아하는데, 비유하자면 카티아조는 생활 속의 발레와 같아요. 어떤 의미나면, 발레는 오랜 시간을 들여 몸을 길들이는 거거든요. 그런 것처럼 카티아조도 오랜 시간 저와 함께 하며 몸에 길들여지고 제 스타일에 익숙해진 옷이에요.”
Q : 최근 방송이나 책에서 발레를 하는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다소 늦은 나이에 발레를 배우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 발레는 시간이 필요한 예술이에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고통이 필요하죠. 제 몸은 이미 굳은 돌 같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전 발레리나가 되려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냥 발레가 좋았어요. 꽃을 바라보면 좋은 것처럼. 미국에서 발레용품 샵을 지나가다 토슈즈를 만지작거리다가 하나 샀어요. 막 가슴이 쿵쾅거리고 기분이 좋아서 제가 길에서 흥얼거리고 있더라고요. 집안에서 토슈즈를 신고 사뿐사뿐 걸어보기도 했고, 괜히 살짝 뛰어보기도 했고요. 아무도 없을 때 이사도라 던컨이 맨발로 춤추는 것을 흉내내 보기도 했어요. 세르게이 폴루닌의 발레 다큐도 여러 번 보면서 발레에 대한 강한 충동이 일어났어요. 전 튜튜를 좋아해요. 저의 시그니처 스타일 중 로맨틱 튜튜가 가장 많은데요, 전 그냥 ‘뽕치마’라고 불러요. 그런 걸 보면 본능적으로 발레를 좋아했긴 했네요.
토슈즈를 하나 산 후에는 구멍날 때까지 신고 다니고 그 담엔 연습용 토슈즈를 계속 샀어요. 입시용 레오타드도 샀고요. 이 나이에 발레 한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 선물용이라고 하고 구입하기도 했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선물 받은 것이라고 했어요. 발레학원을 알아 볼 때도 ‘나이 많은 딸이 하고 싶다고 하는데 해도 될까요?’라면서 돌려서 물어봤고요. 매번 대답은 ‘이미 늦었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건강을 위해 스트레칭 발레를 권했어요. ‘시니어 발레’는 그냥 요가나 체조 수준이에요. 그거라도 한번 해보기로 하고 레슨을 시작했는데, 개인 레슨을 8회 정도 하고 때려치웠어요. 정말 한 동작 한 동작 다 어렵고, 용어들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음악을 들으며 따라하는 그 순간 만큼은,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그 순간 만큼은, 아주 잠깐이지만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발레에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섯 살 정희의 모습이 보여 눈물이 났어요. 전 발레를 통해 제 안의 소녀를 본 거예요. 꿈을 가졌던 그러나 그 꿈을 펼치지 못했던.
꽃을 그리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한 말이 있어요.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정말이다. 너무 작아서 알아보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라는.
저는 발레와 친구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전혀 반응도 진전도 없는 제 보이지 않는 몸을 인정하고, 탓하지 않고 미세한 1cm의 진전을 즐기기로 했어요. 매일 꾸준히 일상 생활 속에서 발레 동작을 했더니, 자세가 좋아지는 거예요. 뻣뻣하게 올라온 어깨가 펴지고 꾸부정한 허리도 펼 수 있게 되었어요. 1년이 지나서 다리가 찢어진 것처럼, 또 1년이 지나면 저는 겨우 한 동작을 통과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 몸의 반응과 생각은 내가 원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계속 도전할 거고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Q : 오랜 기간 아름다운 외모와 스타일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 비결이 있을까요?
A : 스타일이라는 게 보여지는 것에만 있지 않잖아요. 물론 패션, 뷰티, 헤어스타일,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거지만, 더 본질적으론 어떤 사람의 생활습관과 만나는 사람들, 시간을 보내는 방법, 그리고 내면의 가치가 더해진 그 사람만의 향기를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외모를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제가 쓴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제가 걷고 있는 길을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대중들한테 사랑받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죠.
Q : 그렇다면 서정희 만의 생활방식이나 생활습관 같은 건 무엇일까요?
A : 첫째는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아무리 바빠도 저한테 주어진 시간과 환경에 감사하는 시간을 꼭 따로 가져요. 저의 기도생활이죠.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나가노 시골로 들어가 50년 넘게 살고 있어요. 겐지가 말하기를,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어요. 맞아요 독해야 해요. 혼자 살려면 말예요. 그래서 저는 독한 마음을 갖기로 했어요. 더 이상 의존하지 않기로 했어요.
살다 보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혼자 있으면 외로워지고요. 저는 어느 날부터 ‘외롭다’, ‘슬프다’ 이 말을 제 머리 속에서 금지시켰어요. 대신 기도를 했죠. 외롭기 싫고, 슬퍼하는 내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기도를 했더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부정적인 일도 뭔가 잘 될 거 같더라고요.
두 번째로 저만의 생활습관을 꼽으라면, 손발이 부지런한 편이에요. 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부지런함이죠. 집안에서 가만히 있지를 않아요. 화분에 잎이 마르기전에 물도 주고, 햇볕 드는 창가로 옮겨주고, 꼼지락꼼지락 자수도 놓고, 펜을 잡고 글씨도 써보고. 뭐라도 하다 보면 창의적인 것들이 떠올라요. 삶의 의욕도 생기고요. ‘꽃들이 또 피었어요’라고 제가 쓴 시가 있는데요, 하루 아침에 되는 건 없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꽃들에 사랑을 주면, 오랜 시간을 들여 쳐다보고 느끼고 만지고 입만춤도 하면, 꽃들도 저를 사랑해준다는. 타샤 튜더 할머니 말처럼 ‘하루 아침에 정원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인생의 의미를 마음에 담았어요.
Q : 중년의 나이에도 발레, 성악 등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것 같은데요, 솔로로 새 출발하면서 이런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됐나요?
A : 인스타에 올린 사진들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고, 많이들 물어보세요. 발레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 원래 관심이 있었는지. 그런데 뭐든 처음 시작할 땐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잖아요. 저는 뭔가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어요. 저는 무엇을 하건 몰입하는 편이에요. 꽃꽂이를 할 때, 책을 읽을 때, 시를 쓸 때, 음악을 들을 때, 묵상을 할 때…. 이것이 나한테 무엇을 주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깊이 몰입하는 순간을 사는 것은 제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었으니까요. ‘얼마나 그러고 있었어?’라고 사람들이 물으면, ‘한 30분 지났나?’ 하고 시계를 보면 3시간째예요. 몰입을 한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는 거예요. 나는 몰입을 나의 사는 방법으로 선택했어요. 어려운 시기에, 말씀과 기도와 묵상은 저한테는 몰입의 도구였어요. 이 시간 만큼은 모든 힘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무아지경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거예요. 무아지경에 빠질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요.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교하게 되어 진 것들이 있어요.
하나의 책이 나오고, 묵상집이 나오고, 꽃이 다시 탄생하고, 그림이 글이 다 그랬어요. 난 항상 무언가에 빠져 집중하고 있어요. 몰입이 꺼지는 순간은 끝없이 절망하죠. 그러면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또 몰입을 하구요. 몰입을 통해 저의 자아는 해방감을 느껴요. 한 사물을 한 순간을 한 시점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관찰, 응시, 집중을 반복하면서 제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변화되었어요.
Q : ‘정희’라는 이름을 내건 에세이를 출간하고 난 후로, ‘정희’라는 아이콘, ‘정희’ 스타일이 더욱 대중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책 ‘정희’를 출간하게 된 계기나 그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A : 제가 아주 힘들어 고통에 빠졌을 때, 몸무게는 37kg밖에 안 되고 앉아 있을 기력조차 없을 때였는데요, 그저 앉아서 글을 쓰고 싶었어요. 책을 내기 위해 시작하지 않았지만, 글쓰는 시간을 정해놓고 새벽마다 글을 썼어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떠오르는 것들을 적기 시작했고, ‘정희’ 책이 나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건강도 돌아오기 시작했구요. 그 시기에 쓴 글인데요,
2017년 5월1 일. <정희> 책이 나오기까지를 추억하며 느꼈던 감정이 오늘 다시 새롭게 불붇듯 일어나는 아침이다. 오늘 나는 다시 새 마음으로 공명이 일어난다.
동주야!
결국 엄마가 해냈다.
엄마 가슴판에 새겨진 이름
<Jesus =Life=Light =love >
이혼은 폭풍의 밤이었다. 그후 트라우마로 심장이 멎는 것 같은 밤들이었다. 한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베개 밑에 손을 꾸겨 넣고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워 안정감을 갖고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안 오고 자꾸 눈물만 났다. 이 나이에 힘든 거는 사실이다. 아픈 것도 사실이다. 죽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난
아주 거뜬히
이겨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던 스칼렛 오하라의 말처럼.
그 말처럼 ᆢᆢ
지금의 나는
어제의 그 태양이 아니지만.
어제의 그 소녀도 아니지만,
엄마의 가슴엔 무엇인가가 떠오르고 있다.
‘스칼렛’은
진한 붉은색이다.
소설의 스칼렛 그녀의 삶에 대한 열정은 장미보다 더 붉고, 태양보다 더 뜨거웠다. 턱을 꼿꼿이 치켜드는 그 눈빛 때문에 발레를 시작했던 것처럼
현실과 맞서는 당당함을 따라하기로 했다.
엄마는 그 눈빛을 닮기로 했다.
장미보다 붉고,
태양보다 뜨거운, 열정을 닮기로 했다.
엄마 안에 숨겨있는 스칼렛을
엄마는 발견해야만 한다.
매일 소설을 읽고
울면서 센치하게 음악을 듣던 그 시절로 돌아가진 못해도,
난 오늘도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오늘 이 아침도 어릴 때 읽던 영화 보던
그 감정은 여전히 같다. 이제 추억 저편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인생 같지만,
그러나
엄마에게는 미래적 현실로 다시오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 안의 스칼렛은 미첼이 되어,
용기가 되어,
기쁨이 되어,
열정이 되어,
뜨겁게,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곧 세상에 떠오를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이제
또 .
다른 태양이 떠오른다.
이 글처럼 에세이집을 낸 것은 저한테 큰 의미였어요. 더구나 책 제목을 딸 동주가 ‘엄마 이름으로 하는 거 어때’라고 했을 때, 그 책이 저에겐 잊어버린 정희 이름을 찾은 것 같은 의미가 된 거 같아요.
Q : SNS나 TV프로그램에서 보면 딸 서동주 씨와는 친구 같은 관계로 보여 부럽던데요.
A : 하나님 빼고는 딸과의 관계가 가장 깊지요. 동주와는 떨어져 있어도 항상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저한테 위로도 되고요. 서로 수다로 밤을 새기도 하고요. 성격이 다른 것 같지만 서로 닮아가는 점도 있어서 상생이 되는 관계 같아요. 딸이 쓴 글 두 편을 소개할게요. 딸한테 엄마가 아닌 여자로 이해받는 게 어떤 건지 그 기쁨을 알았어요.
‘그동안 엄마는 참 힘들었을 거야. 매일 홀로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들은 너무 길고 외로웠을 거야. 엄마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이해하잖아. 작년에 엄마와 며칠을 지내고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참 무거웠어. 꼭 초등학생 딸을 집에 혼자 두고 나온 기분이 들었거든. 이상하게도 언제부턴가 내가 엄마를 오히려 엄마처럼 걱정하고 생각하게 되었네~ 신기하지? 하지만 엄마가 매일 보내주는 묵상과 기도를 듣고 읽다 보니 최근 들어서 엄마가 많이 강해졌다는 걸 느꼈어! 이제는 덜 걱정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 엄마도 봤지? 주인공의 시간이 거꾸로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육체는 어려졌었잖아! 그런데 엄마를 영화로 만든다면 <정희의 시간은 멈췄다 다시 간다>라는 제목이 아닐까 싶어. 열아홉 살의 멈추어진 엄마의 시간은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 엄마는 참 다재다능하고 애기처럼 여리도 그러다가도 갑자기 장군처럼 강하고, 새침데기처럼 앉아 있다가도 장난꾸러기가 되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기분 좋아지는 귀여운 엄마이기도 하지! 그런 엄마가 이제 한 여성으로서 세상에 발을 내딛고 새로운 시작을 도약하게 된 걸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하해!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잘 해낼 거라는 사실을 믿어. 그러니 엄마도 힘든 순간들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살다 보면 원래 그런 거잖아. 혼자 사는 게 어려운 순간들도 있고, 즐거운 순간들도 있지~ 모든 것들에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다져서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자! 나도 내 자리에서 열심히 엄마를 응원할게. 우리는 모녀이기도 하지만 인생을 함께 가는 파트너이기도 하니까! 사랑해 엄마!♡♡♡♡♡♡♡♡♡♡♡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마의 딸 동주가’
작년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딸이 써준 글이에요.
소개할까요?
Local Edition
“소녀 엄마”
엄마가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나의 목표는 최대한 엄마가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경험들을 선물로 주는 일이었다. 엄마를 데리고 매일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예쁜 카페, 라운지 바, 레스토랑, 클럽 등을 누비고 다녔다. 엄마는 소녀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소녀 ‘그 자체’라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웃고 떠들며 즐겨 주었다.
사랑해 본 사람은 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줄 때
자신이 좋아하는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바라봐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성심성의껏 들어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가서 행복해 할 때
얼마나 기쁜지.
Local Edition(로컬에디션)은 좀 클래식한 분위기의 바인데, 보통 라이브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다. 재즈나 스윙 풍의 음악을 자주 연주하는데, 엄마와 함께 갔던 날도 그랬다.
스윙 음악이 바를 가득 채우자 사람들이 한둘 일어나 스테이지 가까이로 가 둘씩 짝지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춤이 젬병이라 가만히 앉아 고개 정도만 까딱거리고 있었는데, 자칭 댄스퀸 우리 엄마는 흥에 겨워 어깨가 들썩였다. 저~쪽에서 엄마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남자가 엄마에게 다가오더니 한 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춤을 청했다.
May I have a dance?
엄마는 부끄러운지 손사래를 치며 한국말로 “이 남자 왜 그래? 창피하니까 저리 가라 그래!”라고 했다.
(마음은 소녀인데 말투는 아줌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유후~거리며 엄마더러 남자의 신청을 받아주라고 재촉했다. 원래 미국사람들이 좀 오지랖이 넓다.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일어난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안데르센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두 발에 이끌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라빛 로컬에디션 조명 아래 소녀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의 격려와 박수를 받으며 춤을 추었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한 곡이 끝나고 자리로 겨우 돌아온 엄마가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또 다른 남자가 엄마한테 춤을 신청했다.
그래, 맞다.
딸인 내가 봐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는 진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시선과 관심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당신 없는 세상에
당신 없이도 해가 뜬다면
나는,
내 기억 곳곳에 있는
당신과의 추억을
하나 하나 찾아내고
꺼내고
찾아내고
또 꺼내어,
그 조각들을
당신의 분홍빛 볼처럼 발그레진
저녁 하늘 아래 펼쳐 놓고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매일 생각할거야.
Q : ‘정희’는 지금 인생의 어디 즈음에 와 있을까요?
A : 지금 가만히 저를 생각해 보면 ‘고립무원’이 떠올라요. 지난 시간의 어둠을 느껴요. 외로움을요. 우린 모두 외로워요. 저도 ‘고립무원’을 늘 느꼈죠. 열아홉의 나는 기회도 가져보지 못한 채 갇혀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에요. 오히려 어린 나이에 밖으로 나갔다면 재능이 발견되거나 개발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고립무원의 골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몰입할 것을 찾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다양한 것들을 했던 걸 거예요.
살림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양하고, 꽃꽂이도 하고, 바느질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나갈 수 없으니까~ 아이들을 기다리며 배웅하고 맞이하고 또 준비하고….
사람들이 저한테 재능이 많다고 하지만, 그런 소리도 짜증나던 순간이 있었고요.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되는 순간들이 있었죠.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탁월하거나 똑똑한 아이는 분명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잠재적으로 포텐을 갖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고 해도 인정할 만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꽃꽂이도 글쓰기도 그림도 인테리어도 배운 적이 없지만, 고립된 나를 일으키기 위해 싸웠던 ‘고립무원’ 시간이 만들어준 결과일 뿐이죠. 솔직히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킬(?) 정도지요. 그런데 제가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지금은 나를 많이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지요.
Q : 정희라는 브랜드, 정희라는 이름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갈까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A : ‘정희’라는 이름을 생각하곤 해요. 한동안 너무 싫었던 이름 ‘정희’.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내가 이름을 되찾고 이제야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것일지도 몰라요. 너무 늦었지만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남양주 별내 살 때, <정희> 책에서도 썼지만 한동안은 음식도 엉터리로 먹어보고, 꾸미지도 않고 살아봤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건 제가 아니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건 외적이건 내적이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도전적인 모습이니까요. 악플러들은 저의 이런 모습을 싫어하죠. 얼마 전 악플러들을 고소했어요. 고소가 진행 중이구요. 진술도 하러 갔었죠. 마음도 비참하고요. 그들도 다 외롭고 힘들어서일 거예요. 그렇다 해도 거짓 글을 올리면 안 되죠. 저 착하지 않아요. 더 이상 참지 않아요. 이제야 그것들을 포기하기 싫어졌지요. 그래서 지금은 ‘정희니까’ 하고 생각해요.
‘정희니까’ 하고 나를 받아들여져요. 나의 독특한 부분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감사해요. 그래서 저의 삶을 나누고 싶기도 해요. 나누지 않은 것, 그것들을 후회하지 않게 더 예뻐지게 노력할 거예요. 더 많이 도전할 거고요. 1년을 10년 같이 살 거예요. 남은 날이 아까우니까요. 무척 바빠질 거예요. 저를 살게 하고 저를 지켜주고 일으키게 하는 건 제 신앙이지요. 주님에 대한 믿음이에요. 힘들 때마다 주님과 함께여서 견딜 수 있었어요. 이렇게 견딘 것들을 나누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좋은 멘토도 되고 싶구요.
이 땅의 연약한 엄마, 아내가 아닌 당당한 여자가 되고 싶어요.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바로 이런 서정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화보와 인터뷰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화보 총괄기획=이기오 편집장, 의상 협찬=카티아조, 헤어 및 메이크업=허지수(진끌로에), 포토=이준영 실장(스튜디오다운), 글=이인경 기자, 영상=박예슬(유니콘비세븐), 장소 및 인테리어 협찬=아츠아크, 소품=ff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