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 며느리 그리고 남편…’
최근 방송가에 흔한 관찰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가 적나라하게 담긴 일상 관찰…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만삭 며느리에 대한 동정론과 함께 남편과 시댁에 대한 비난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MBC 파일럿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이하 며느리)에 출연한 개그맨 김재욱과 그의 아내 박세미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 가정의 일상이었던 이들 부부의 삶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180도 뒤바뀌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제2의 ‘자기야’ 저주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재욱과 박세미는 지난 12일 방송된 ‘며느리‘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은 임신 8개월 차인 박세미가 명절을 맞이해 홀로 시댁을 찾은 모습이 그려졌다.
박세미는 무거운 짐을 홀로 드는 것은 기본, 전을 부치며 제사 음식을 거들어야 했다. 시어머니도 함께 음식을 만들었지만, 둘째를 임신 중인 며느리를 향해 “딸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연달아 말하며 시청자들의 화를 돋웠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20개 월된 아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며 엄마를 힘들게 했고, 시댁 식구들은 편안하게 TV 시청과 오랜 만에 만난 친척들과 덕담을 나누는데만 정신이 팔렸다. 그 누구도 며느리를 돕지 않았다.
특히 늦은 시간에도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가 잠을 못자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박세미는 눈물을 보였다. 그는 “친정에서는 아이가 잘 때는 숨소리도 제대로 안낸다. 집에서는 이것저것 도와주는데…”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괴로운 아내의 고단한 일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 때문에 늦게 귀가한 남편 김재욱은 아내의 고충 토로에도 친척들과 이야기 하기 바빴다. 다음 날 아침만 먹고 친정에 가려는 아내에게 “밥 먹고 어떻게 할거냐”고 되물었다.
만삭의 며느리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시댁 식구들과 ‘착한 효자’ 프레임이 빠져 가족들에겐 한 마디 못하는 남편… 뒷감당은 결국 만삭의 며느리 박세미씨의 몫이었다.
방송 후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김재욱과 박세미의 이름은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고, 각종 커뮤니티에는 김재욱과 시댁 식구를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김재욱의 SNS에 역시 비난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대한민국 시댁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현실적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방송 전까지만 해도 소소하게 일상을 누렸던 김재욱의 가정은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 셈이다.
물론 부조리한 명절 문화와 며느리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왜곡된 관습은 고쳐 나가야 한다. 이는 파일럿인 ‘며느리’의 프로그램 취지와도 맞닿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김재욱과 그의 가족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과 욕설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김재욱과 시댁 가족들은 당분간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김재욱이 방송 활동까지 중단해야 한다’는 집단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프로그램 출연으로 가정의 해체 위기까지 맞이한 셈이다.
제작진의 의도대로라면 제2, 제3의 김재욱 가족이 나와 우리 사회에 건전한 메시지를 던지고, 이를 통해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라면 과연 누가 솔직하게 자신의 일상을 오픈할 수 있을까.
실제로 개인사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피해를 본 부부는 이들 뿐만 아니다. SBS ‘자기야’란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부들이 과도한 사생활 공개로 파경을 맞이하기도 했다. 무려 열 커플이 넘는 이혼에 ‘자기야’의 저주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재욱 가족을 프로그램 이슈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의 가족을 통해 보여지는 며느리의 현실과 왜곡된 문화를 직시하고, 불합리하고 왜곡된 바꾸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진호 기자 caranian@1.234.219.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