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겨울이면, 여지없이 등장하는 핫 아이템이 야상이다.
가장 남성적인 옷 같은데, 여자가 입으면 희한하리만치 섹시하다. 이젠 패션피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소장하고 있는 필수품이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한데, 야상을 한차원 끌어올린 셀럽이 있다. 전지현 이효리다. 전지현은 럭셔리하게, 이효리는 섹시하게 야상을 소화해 “역시 반전의 패션센스 소유자”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쉽게 쓰는 용어지만, ‘야상’이 어디서 유래됐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이들도 많다. 누구나 만만하게 생각하는 야상은 영어로 밀리터리 필드 재킷(Military Field Jacket)이다. 한국에서는 슬프고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전쟁 때 본격 등장했다. 전투복의 한 종류이며 처음엔 산과 들 등 야외 전투에서 입던 군복이란 의미다.
정확하게 해석하면 ‘야전전투상의’지만, ‘야전상의’로 불렸고 그리고 다시 ‘야상’으로 줄여서 불리우게 됐다. 전쟁 후유증으로 가난하던 1960~70년대, 많은 일용직 근로자, 예비역, 복학생 등이 야상을 입고 다녔다. 이 모습은 당시 TV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투영돼 있기도 하다.
본래 군인용 옷이지만 견고하고 실용적이며, 어떠한 스타일과 매치하더라도 잘 어울리는 것이 야상의 미덕이다. 하지만 그 종류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이들이 많다. “거기서 거기”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 오리지널 야상의 종류를 제대로 알아 두면 이를 변형한 스타일리시한 야상을 고를 때 탁월한 안목이 생긴다. 기본적인 야상의 종류 세가지 정도는 알아두도록 하자.
허리 아랫단이 없는 M-1941 필드 재킷은 낮은 보온성, 군복답지 않게 밝은 카키색에 가까운 색상, 쉽게 헤지는 내구성, 바닥에 가까운 수납성 등이 문제였다. 이를 보완, 개량해 M-1951이 탄생됐다. 한때 일본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의 주인공인 아오시마 슌사쿠가 입고 나와 대히트를 쳐, 아시아 전역에서 ‘아오시마 코트’로 불리기도 했다.
M-1965 Field Jacket(줄여서 M-65)은 미군이 제작한 가장 대중적인 야전상의다. M-1951이 단순히 분리된 두건을 탈착하는 방식인데 반해, M-1965는 두건을 말아서 목 뒤에 있는 주머니에 넣어둘 수 있도록 개량됐다. 또한 옷깃과 소매 부분에 벨크로 접착포가 달려 있다.
M-1965 야전 상의는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군이 널리 입었는데 남베트남의 중부 고원 지방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유용하게 쓰였으며, 스콜 뒤에 오는 추운 날씨로부터 병사의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역할도 했다. 본래는 올리브 그린 색상으로 제작됐으나, 요즘은 우드랜드 위장, 초콜릿칩 사막 위장, 타이거스트라이프, 검정, 네이비 블루, 유니버설 카모플라주 패턴 등 다양한 무늬로 생산되고 있다. 현재 가장 흔한 야상의 형태이자, 실용성이 가장 높은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G-1이라 불리는 항공점퍼를 들 수 있다. 영화 ‘탑건’의 톰 크루즈가 입고 나오면서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이 야상은 가죽으로 된 겉감과 대비되는 부드러운 안감이 큰 매력이다. 여기에 부대를 상징하는 심볼과 엠블렘이 디자인적으로 멋스러워 항공 점퍼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야상 외에도 헷갈리는 군복 관련 패션 용어들이 많다. 군복 패션을 통칭하는 밀리터리 룩의 하나인 트렌치 코트, 그리고 밀리터리 룩을 상징하는 패턴 카무플라주 등이 그렇다. 우선 트렌치 코트(trench coat)의 유래를 살펴보자면, ‘trench’라는 말은 ‘참호’를 의미한다. 즉 참호에서 입는 코트를 일컫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 속 영국군과 연합군이 혹독한 겨울 날씨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트렌치 코트가 처음 만들어졌다. 통기성과 내구성, 방수성이 뛰어난 기능성 소재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트렌치 코트는 전쟁이 끝난 후, 클래식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토머스 버버리가 레인코트로 이 트렌치 코트를 개발해 지금은 ‘버버리(burberry) 코트’라고도 불린다.
카무플라주(camouflage)의 경우, ‘위장’이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다. 얼룩덜룩한 군복 무늬를 통칭한다. 요즘은 야상 재킷은 물론 워커, 모자, 벨트, 가방 등 카무플라주를 활용한 패션 아이템들이 무궁무진하게 나오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색이나, 모양을 달리해 군대 느낌보다는 마치 얼룩말이나 표범 같은 느낌의 연출도 가능해 인기다.
야상은 과거 전쟁으로 인한 아픔, 가난의 단면 등으로 인식되며 서민적인 옷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런데 이러한 히스토리가 점차 잊혀진 1990년대 이후에는 패션의 한 아이템, 섹시한 사파리 의상 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급기에 최근에는 ‘신 등골브레이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등골브레이커’란 ‘자녀들에게 옷을 사주느라 부모의 등골이 휜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로 한때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고가의 패딩을 입는 게 서열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이 때문에 학생들이 부모에게 노스페이스, 캐나다구스, 몽클레어 같은 수백만원대 패딩을 사달라고 졸랐던 것이다. ‘캐몽’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작년 캐나다구스와 몽클레어는 200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임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최근에는 고급 야상이 새로운 등골브레이커로 대두되는 추세다. 발단은 ‘전지현 야상’이었다. 작년 말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에서 전지현이 입고 나온 야상은 눈처럼 하얀 여우 털이 인상적인 고가의 브랜드였다.
이 제품은 이탈리아 고급 아우터 브랜드 미스터&미세스 퍼의 신상품이다. 미스터&미세스 퍼는 ‘천송이 야상’으로 입소문을 탔고 가격대가 500만~700만원대다. 모피의 종류에에 따라 최고 1000만원대를 호가하지만 지난 겨울, 한달에 열벌 이상 판매가 됐다고 한다.
야상의 본질은 보온성과 실용성이다. 한 소비자협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가의 패딩과 중저가 패딩의 보온성 차이는 거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중저가 제품이 더 낫기도 하다고 한다. 야상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입는 사람의 애티튜드와 감각에 따라서 색다르게 표현되는 것이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고가의 브랜드를 앞세워 패션피플 소리를 들으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천민 자본주의의 폐혜이자 단면이 아닐까 한다.